4. 올드미스의 결혼과 제2 전성기
1990년대의 여자나이 35세이면 정말 올드미스였다.
주변 친구들은 이미 10년 전에 모두 결혼을 했고, 나 혼자 남아 있었으니 언니에게 골치 아픈 동생이었다.
나중에 알았다.
그 당시에는, 소개나 중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별히 내세울 것 없고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게 큰 단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언니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를 내세우지 못했었다는 것을~
언니한테 결혼할 사람을 소개했을 때, 눈물을 보이셨다. 내식하지 않았지만, 내심 큰 짐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상대 남자는 동갑에 초혼이었고, 집안도 단출하고 부모님과 출가한 누나만 있는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화목한 집안이었다.
늦은 결혼이었기에 상대방 집에서 1개월 만에 결혼 이야기를 하였으나, 언니 입장에서는 너무 당황했었고 사실 형부는 이 결혼을 반대했었다. 이유는 나중에 살아보니 현실이 되었다.
올드미스를 시집보내면서 언니가 해주고 싶은 게 있었는데 바로 “약혼식”이었다. 약혼식은 전적으로 신부의 몫이었음에도 호텔에서 해주었으며 부모 없어도 언니의 뒷배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언니의 바람대로 나는, 결혼생활 내내 대우받으며 잘살았다.
시어머니가 깐깐하긴 했지만 경우가 있으신 분이었고, 결혼하자마자 (아동복) 회사에서 콜을 받아 든든한 직장과 아들까지 낳은 워킹맘으로 살면서 시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는 고마운 며느리였다.
그곳에서 만난 고마운 사람.
나의 제2 전성기를 만들어 준 아동복 회사 결혼과 동시에 입사하여 10년을 다닌 회사였다.
H**님. 그녀의 삶은 남편의 도박으로 인해 불행했지만,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아들 덕분으로 열심히 사는 정말 억척스럽게 사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동복 회사를 그만두면서 헤어졌지만, 그로부터 7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내가 빈털터리로 집을 나왔을 때, 묻지도 않고, 보증금을 보내주며 (나를 아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라는 말로 내게 힘을 준 고마운 사람이다.
세상을 살면서, “좋은 사람 기준은” 뭘까? 그냥 내게 잘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못해주면 나쁜 사람 일 것이다. 맞다. 모든 게 나의 기준에서 오는 좋고 나쁨일 뿐이다.
하지만, 본질이 선한 사람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H**님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항상 희생적이고 열심히 산 보람이었는지 지금 H**님은 재혼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나의 제2 전성기 시대는, 10여 년을 다닌 아동복 회사를 그만두면서 종결되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겠지만 이후의 나의 삶은 경제적 고난의 시대가 되었고 모든 게 사라졌다.
점점 찌들어 가는 나의 삶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언제까지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