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성장시킨 타인과의 만남

5. 세상에 하나뿐인 아들과 커리어 전성기 종료

by 웃픈녀

세상에 하나뿐인 아들!! 이 아팠다.

그냥 아픈 게 아니고, 원인불명의 수면뇌전증(간질)이었다. 아들 나이 4세 때...

처음 시작은 침대 모서리에 엎드러져 있는 아이를 바로 눕히려고 안았는데, 눈동자가 돌아가고, 몸을 떠는 것이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하는 병치레 중 하나(경기)라고 생각하였고, 몇 차례 반복이 되면서 열이 나지 않는데 “경기” 하는 것은 위험한 거라고 하여 병원을 찾게 되었다.

그때, 병원예약도 어려울 정도로 아픈 아이들이 많다는 걸 알았고, 담당 의사 선생님께 야단맞은 게 아직도 생각이 난다.

아이는, 수면(잘 때만) 경기였다. 때문에, 의사 선생님이 증세를 볼 수 없어서 약처방도 어렵다고 했고, 아이가 예민하여 수면유도제가 듣지 않아 검사가 너무 어려운 상태였다.

사정사정하여 검사도 하고 약처방을 받았으나 선생님은 이렇게 아픈 아이를 두고 무슨 엄마가 직장을 다니냐고 하시면서 당장 그만두고, 아이한테는 공부든, 운동이든 아무것도 가르치지 말고 무조건 쉬게 하고 스트레스를 절대로 주지 말라는 거였다.

나는, 그때부터 약 4년을 밤에 잠을 편하게 잔 적이 없었으며, 아이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었다.

아이가 움직이기 기만 해도 깨야했고, 증세를 기록해 약처방을 받으러 병원을 다녔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인 4세에 우린 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도 여행도 가지 못했고, 한글도 가르치지 못했다.

그래서, 나중에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한글을 모르는 건 우리 아들뿐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낳기만 한다면... 건강하기만 한다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직장을 그만 둘 상황이 아니어서 아이를 데리고 직장옆 원룸으로 이사를 하였다.

다행히, 입학하기 힘든 구립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어서 체계적인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아이한테 잘 맞는 유치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직장이 강남이어서, 병원도 강남으로 옮겼는데, 그곳에서 만난 “의사 선생님“ 은 미국에서 한국에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는지 대형병원 권위적인 유명 선생님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항상 친절하게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고, 미국에서는, 이 정도 증상이면 약처방도 없고, 청소년기 되면(뇌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경우가 많다고 격려해 주셨다.

희망을 갖게 되었고, 온 힘을 다해 아이를 돌봤다.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아이 병상일지.

그 병상일지를 보고, 선생님께서 아들의 병은 엄마의 관심으로 치유되었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때는 모든 게 아이의 건강회복이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아들”의 건강을 위해 나의 인생은 없었다.

오직 직장과 아이 유치원뿐이었다.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만난, 유치원 담임선생님들과의 추억은 내게 위로되었고, 아이의 교육과 성장에도 많은 도움을 받으며 담임 선생님과의 친밀함과 아픈 아이를 맡기는 엄마의 심정이 잘 통하여 아이가 유치원 졸업 때는 “훌륭한 어머니상”을 받기도 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아프고 부족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살기 시작하였고, 그런 엄마로 살면서 배우는 점이 있었다.

아이에 대한 기대와 욕심을 내려놓는 거였다. 그냥 건강하게만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제 유치원을 졸업하면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중대한 결정을 해야만 했다.

아이가 완치되지 않으면, 1년 휴학을 해야 하고, 입학을 하면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하기에 시부모님과 합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바로 전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시댁과 합가를 결정하면서 생활터전이 완전히 바뀌는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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