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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새 Jan 31. 2022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2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으면 했던 말.

제 소심한 성격은 제 인생의 두 번째 터닝포인트를 통해서 확실히 고쳐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군생활이었습니다. 저는 군대를 슬픈 마음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입대 당일에도 그냥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고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목표는, 군대에 갔더니 사람이 바뀌었구나 하는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반장 한 번 못해본 제가 군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군대에서 만큼은 제 속의 소심함을 이겨내고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습니다. 첫 도전은 훈련병 시절 소대의 대표(소대장) 가 되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조교가 제 소대원들을 모아놓고 소대장 지원할 사람을 모집하였는데, 솔직히 손을 들 엄두조차 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래도 이게 나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고 정말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번쩍 들었었습니다. 7~8명 정도가 지원을 했었고 자기소개와 소대장으로서의 소신과 향후 계획을 순서대로 발언하는 시간을 가지며, 소대원들의 투표를 진행했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과반수 이상이 저에게 투표를 해주었고 저는 소대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믿음을 가지고 손을 들어주었다는 그 사실이 너무 기뻐서 온몸에 소름이 돋고 목이 메었었습니다. 저는 그 감사한 마음에 힘을 입어 정말 열심히 소대원들을 챙기고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을 받았었습니다.


한창 훈련을 받던 도중 소대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제 모습을 좋게 보았던 조교가 대대의 대표(대대장) 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를 했고, 저는 흔쾌히 수락을 했었습니다. 소·중대장 10명 정도가 지원했었고 대대장 면접을 보았는데.. 제 기억상 10명을 일렬로 세워두고 다짜고짜 소리를 막 지르라고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대대장이 되어보고 싶다는 활활 타는 눈빛으로 피 토하듯 소리를 지른 덕분이었는지 대대장 면접까지 합격하게 되어 저는 1000명가량을 대표하는 훈련소 대대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깨에 빨간 훈장을 달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며 정말 잘하고 있다고 제 자신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1000명가량을 직접 통솔하기도 하며 대표로 군간부들에게 보고도 드리는 쉽사리 겪을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많은 이들과 교류가 있다 보니 점차 인간관계가 괜찮아지고 있고 점점 남들에게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군대에서 만큼은 여태까지 하지 못했던 것들과 앞으로도 밖에서 경험하기 힘든 것들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바뀌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무언가 특별한 것을 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조교를 하겠다는 선택은 제 일생에서 두고두고 만족스럽고 현명한 선택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조교 면접은 정말 엉망이었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는 처음이었거니와 소심한 성격에 워낙 말주변이 없었던 터라 생각하는 바를 제대로 말 한마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훈련받아 온 것이 좋게 보여서 그런지 합격은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ㅎㅎ 제가 조교로서 주로 맡은 일은 총검술과 각개전투를 위한 포복 등을 직접 훈련병들에게 시범을 보이고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훈련병 앞에 서기 전엔 한 달가량을 골방에 틀어박혀서 몸에 피멍이 들고 손에는 피를 흘려가며 총검술 시범 연습을 하는 연성 기간을 거쳐야 했으며 연습의 결과를 선임들과 간부들이 둘러싸인 강당의 무대 위에서 홀로 총검술 시범동작을 목이 터져라 직접 설명하며 선보여야 했고, 선임들과 간부들 대다수의 인정을 받아냈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한 번에 합격을 했고, 조교의 상징인 빨간 모자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조교가 되고자 연성 기간을 임하였기에 처음 빨간 모자를 썼을 때의 그 황홀함과 그간의 기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빨간 모자를 쓰게 되면 바로 훈련병 총검술 수업 현장에 투입이 되었었는데, 현장 투입 첫날의 기억 역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총을 들고 하는 수업이라 굉장히 위험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감을 유지시켜 줬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훈련병들에게 윽박을 지르며 질서를 잡아야 했습니다. 선임들은 곧 잘 수업을 이끌어 나갔지만 저는 소심한 성격 탓에 훈련병들을 휘어잡는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선임들에게 목소리가 왜 이렇게 작냐며 굉장히 혼이 많이 났었고 오랜 기간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고 총검술 시범만큼은 여태까지의 선임들보다 훨씬 잘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정말 쉴 틈 없이 연습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몇 달, 1년도 넘게 총과 한 몸이었던 선임들을 뛰어넘기란 쉽지가 않았고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고 잘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을까.. 하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정말 오랜 기간을 보냈었습니다. 잘 해내기가 너무나도 어려웠고 또다시 제 자신이 한없이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한 선임이 편지를 써주었고 그 안에는 위로의 말들과 제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끔 만들게 하는 말들이 있었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손편지였습니다.


편지를 받아보고서 저는 다시 자신감을 가지고자 하였고 동시에 손편지에 대한 매력을 크게 느꼈습니다. 손편지의 힘은 대단했다는 걸 느꼈었기에  그날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새로운 후임들이 들어올 때마다 저 역시 손편지를 써주었습니다. 주변 동기들이나 친구들은 무슨 손편지냐 오글거린다 하였지만 저는 오글거리기에 그것이 진심이라 하였고 손편지의 위대함을 전파하고 다녔었습니다. 제게 편지를 선물한 선임의 성원에 힘입어 더욱 잘하고자 노력하게 되었고 제 시범 실력은 나날이 눈에 띄게 발전하였습니다. 연중행사와 같은 느낌으로 간부들 주관으로 개최하는 총검술 경연대회를 하곤 했었는데 조교들 전체와 간부들까지 참여하여 총검술 실력을 뽐내고 그중 1위를 가려내는 작은 행사였습니다. 선임들보다 잘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연습했던 제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당당히 1위를 하게 되어 상장과 휴가를 받아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간부들은 제 시범을 진심으로 인정해주었고 저를 항상 믿어주었습니다. 그 믿음 역시 헛되지 않았고 간부들의 추천으로 군 방송국에서 찾아와 제 시범을 직접 카메라로 찍어 교육영상으로 만들게 되었던 일생일대의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교로서 점점 익숙해지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훈련병들 앞에서는 것이 익숙해졌고 점점 조교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었습니다. 수업을 진행하다 쉬는 시간이 되면 틈틈이 훈련병들과 잡담도 많이 나눴고 그런 모든 경험들이 제 성격을 바꿔갔습니다. 수십 명, 수백 명 앞에서 당당히 서서 큰 목소리로 집중을 유도하고 통솔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과거에 낯선 사람에게 말 한마디 못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정말 크나큰 발전이었습니다. 저는 자만하지 않았고 겸손함 속에 자신감을 가진 채 군생활을 했고, 후임들에게 제가 똑같이 겪고 이겨냈던 경험을 토대로 가르침을 주기를 좋아했고 다그치지도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왜 후임들에게 혼을 내지 않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친절함으로 충분히 리드할 수 있었기에 저만의 방식을 믿어왔던 것도 있으나, 예전부터 저는 제가 겪은 악한 경험들을 남들은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재밌고 다가가기 편한 선임이 되기로 했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 감사함을 느꼈는지 전역한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후임들에게 꾸준히 연락이 오고 있고 편하게 술도 한 잔 할 수 있는 관계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ㅎㅎ 전역하는 당일까지 행복한 군생활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아쉽기도 할 정도 였습니다. 군생활 어땠냐 물어보면 남들은 다 힘들다고 할 때 저는 또다시 돌아갈 의사가 있다고 하곤 하는데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군생활은 제게 선한 영향을 많이 끼쳤고 인생의 가르침도 많이 배워갔던 시기였습니다. 군대에서는 제가 이루고자 했던 거의 모든 것을 제 노력으로 이루어냈고 그로 인해 자신감이 생기고 비교적 밝은 성격이 되었으며 과거의 아픔을 점차 씻겨 내려줬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제가 정말 싫어하는 말입니다. 물론 남을 바꾸고자 한다면 저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말이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바뀌고자 수많은 노력을 했고 결국에는 바뀔 수 있었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든, 성격을 개선하든, 새로운 일을 시도를 하든, 저희는 어떤 방향으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넌 바뀌지 않아..라고 하는 것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눈 질끈 감고 도전하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성장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저는 자존감, 자신감이 정말 밑바닥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과거의 제 모습을 회상하며 남들에게 웃으며 내가 이랬었다~ 하면 거의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만큼 제 자신이 많이 바뀌었다는 증거겠지요. 제 경험을 토대로 항상 남들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주며 힘이 돼주고자 합니다. 자신을 싫어하고, 계속해서 자책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저는 다 지나간다고, 언젠간 바뀔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본인이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남들이 뭐라 한들 본인이 노력하지 않는 이상 무엇이든 간에 변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고, 노력하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간에 변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 짧은 경험담을 읽어주신 독자분들이 이 글로 인해 힘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변화를 이룩할 수 있는 영향력을 받아간다면 좋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저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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