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말레이시아

다시, 말라카

by 소피아
말라카 Vintage Green Cafe @ The Daughter

2024년 11월의 어느 날, 운명이 허락한다면 돌아온다는 말라카의 풍경은 더할 나위 없다. 습한 온기를 그대로 머금은 찌뿌둥한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걸음걸이만큼 여유로운 그들의 미소와, 부시게도 진한 빛은 잠깐씩 눈을 찡그리게 한다.

나의 두 번째 말레이시아

리버 크루즈는 여전했지만 한 번의 산책은 역시나 모든 것을 바꿨다. 옛것의 향수가 진하게 풍겨오니 다시 맡게 된 것에 감사함을 전한다. 말라카의 어느 한인교회에서 드린 예배와 거닐며 느낀 여유를, 6시간 이상의 비행으로 얻을 수 있는 건 효율을 따지는 내 인생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순이다. 내 안의 여유를 느껴 본다는 건 역시 아직 멀었구나. 이 또한 족히 고생하고 땀을 흘려야만 얻어지는 여유였다.


그렇게 2년 전의 없던 기록을 떠올리며.


2024년 11월의 어느 날, 로한과 북적이는 펍에서.

나의 두 번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다시 가니 옛 친구 로한이 떠올랐다. 술을 끊은지는 2년이 넘었지만, 기억을 떠올리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로한을 떠올리니, 웃프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여자는 이쁘고, 남자는 돈이 많으면 된다!’라는 농담 섞인 로한의 말. 친구라지만 역시나 터무니없는 단어들 천지다. 내가 성내는 게 즐거웠던 건지 우스갯소리로 날 귀찮게 했다. 룸메이트 언니가 내 옆에 있었다면, 로한은 아마 절대 고개를 들지 못했겠지.

로한은 마치 자신의 말대로 따라오면 큰 행복을 거머쥘 수 있다는 위대한 가정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통계는 매력적이지만 수상하기도. 확실한 건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전부 자신이 운영하는 노트북 사업에 대한 위대한 나열이었다. 그 당시 왜 이렇게 가볍게 흘려들었는지, 헤어질 시간만 고대하며 졸린 눈동자만이 로한을 향했다.

지금 떠올려보니, 사업의 규모는 놀랄 만큼 굉장했으며,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로한이었다. 어떤 환경에서 시작했든, 뭐든지 한 수 앞을 보는 사람이 주도하기 마련이다. 로한이 갖고 있던 자원 역시 상대적이었다. 각국의 많은 사람들이 비즈니스를 하지만, 그 팀을 운영하는 사람은 사실 한두 명에 불과하다. 로한은 자신의 실력과 미래를 높게 평가했지만, 그에 따르는 고난과 역경 역시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었다.

사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없던 추억들이 떠오르는 것은, 삶에 우연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나만의 것을 만드는 역량을 위해, 다른 감각들도 서서히 익혀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사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없던 추억들이 떠오르는 것은, 삶에 우연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나만의 것을 만드는 역량을 위해, 다른 감각들도 서서히 익혀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라셸의 피카커피 로스터스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어느 날,

말레이시아는 내게 인연이 깊다. 많은 인연이 깃든 곳,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자주 방문했던 카페들, 그중 라셸이 운영하던 피카커피 로스터스는 단연코 최고의 안식처였다. 히잡을 두른 친절한 여직원이 한국말을 잘했기에, 따로 말하지 않아도 항상 내 주문을 받았고 소소한 대화도 나눴다. 한국인은 거의 없는 곳이었기에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다. 훤칠한 키가 인상 깊었던 사장 라셸은, 내가 쓰던 글을 정리하고 카페를 나설 때쯤 항상 같이 따라 나왔다. 못다 한 말이 있는지, 내겐 그저 몇 분 안 되는 시시콜콜한 대화였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보니, 라셸의 자연스러운 친절이었다. 그 대화들은 늦은 밤길 나를 위한 배려였으며, 내 맞은편에 서서 뒤로 걸으며 이야기를 건넨 것은,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나에 대한 존중이었다. 밝은 등이 그만 보일 때쯤, 라셸은 자신의 카페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라셸의 마지막 모습이다.


커피의 맛은 그다지 기억나진 않지만, 작은 규모의 이곳은 항상 북적였으며 편안했다. 내가 항상 이곳으로 걸음을 옮긴 이유는, 라셸과 직원들의 친절이었겠구나. 무언가를 만들려고 한다고 해서 브랜드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격언과 악수를 나누고 싶은 심정이다.

무언가를 꾸준히 계속 잘 해나갈 때 사람들은 볼 것이며, 얘기할 것이고, 그게 브랜드가 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매번 누군가의 친절을 보았다.

다음 추억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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