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쌀집이 그립다
면류(麵類)를 너무 좋아한다. 내 두둑한 뱃살의 주범은 필시 이 밀가루 음식일 게다. 수많은 면 요리 중에서도 내 기억에 칼날처럼 날카롭게 박힌 시작은, 바로 그 냉면이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외갓집이 있던 부산 우암동. ‘적기’라고도 불리던, 좁디좁은 골목에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돌면 공동 우물이 있었고, 덩치가 산만 한 외할아버지에 비해 유난히 자그마한 외할머니는 나를 위해 늘 그 골목 어딘가로 마실을 나갔다. 잠시 후, 할머니는 자신의 몸집만 한 커다란 양은 냄비 한가득 냉면을 사 들고 나타나셨다. 어른 한 명이 먹기에도 넉넉한 양이었다. 열 살 남짓한 나는 그릇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면을 빨아들였다. 짭짤하고 달콤한, 차디찬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할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세상 가장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곤 하셨다.
긴 세월이 흘렀다.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이제는 사진 속에만 계신다. 우암동의 구불구불한 골목은 희미한 기억의 풍경으로만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한 음식 방송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화면 속에는 낡았지만 정갈한 냉면집 하나가 소개되고 있었다. 패널은 그 집이 바로 ‘부산 밀면’의 시초라고 했다. 이북에서 피난 온 주인이 고향의 냉면을 그리워하며, 구하기 힘든 고구마 전분 대신 미군의 원조 밀가루로 면을 뽑아낸 것이 그 시작이라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시…?’ 정확히 그 집이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정황상 그 동네에서 그런 냉면을 팔던 곳은 그 집이 틀림없었다. 나는 다음 부산 출장길에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방송의 힘인지, 아니면 오랜 세월의 명성 덕분인지, 식사 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나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밀면 한 그릇을 주문했다. 잠시 후,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밀면이 나왔다. 살얼음이 낀 육수, 고명으로 올라간 돼지고기 수육과 양념장. 어린 시절의 그 냉면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육수부터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면을 크게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달콤 짭짤하면서 시원하고, 쫄깃한 면발의 느낌. 분명 비슷한 맛이었다. 하지만, 그 맛이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내 혀와 뇌리에 각인된 바로 그 맛이 아니었다. 무언가 결정적인 것이 빠져 있었다. 그 후로도 부산을 갈 때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가게를 찾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할머니의 양은 냄비 속 그 맛은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맛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그 빈자리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밀면 한 그릇에는 단순히 밀가루와 육수만 담겨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전쟁과 가난이라는 시대의 공기, 뭐든지 귀하고 부족했던 시절의 허기, 좁은 골목을 누비며 냉면을 사 오셨을 자그마한 할머니의 수고, 그리고 손자가 그릇에 코를 박고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더없는 사랑이 함께 담겨 있었다.
결국 내가 그리워한 것은 음식의 맛이 아니라, 그 맛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었다. 물산이 풍부해진 지금, 아무리 좋은 재료로 옛 맛을 재현한들, 그 시절의 허기와 사랑이라는 가장 중요한 양념을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뱃살 걱정을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면을 끊지 못한다. 다만 이제는 밀면 그릇을 깨끗이 비운 뒤, 텅 빈 그릇 속에서 음식이 아닌 다른 것을 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 그리고 결코 재현될 수 없기에 더 소중한 기억의 맛을. 그것이 내가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추억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