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로필리아
나는 파피로필리아(Papyrophilia), 즉 종이애호증을 앓고 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구(文具)에 대한 페티시즘에 가깝다. 잉크를 갓 채운 만년필의 묵직한 몸체, 뚜껑을 열 때 ‘딸깍’ 하고 울리는 경쾌한 소리, 그리고 잉크가 번지지 않는 매끈한 미색(米色) 종이의 감촉을 접할 때면 어김없이 소유욕이 발동한다.
디지털이 세상을 장악한 시대에,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의 흔적을 탐한다. 사각거리는 펜촉이 종이 위를 미끄러지며 남기는 궤적, 그 궤적이 모여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어 나의 사유를 붙잡아두는 그 견고한 물질성이 좋다. 어떤 날은 내가 전생에 먹을 갈아 시를 짓던 고고한 선비가 아니었을까 상상한다. 또 어떤 날은 벼루를 깎고 붓을 다듬어 선비의 책상에 올리던 과묵한 장인(匠人)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집요하게 종이와 펜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 오래된 기벽(奇癖)은 종종 나를 낯선 장소로 이끈다. 그중에서도 성수동의 ‘포인트 오브 뷰(Point of View)’는 내게 단순한 편집샵을 넘어, 문구의 영혼들이 모여있는 성소(聖所)와도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내 파피로필리아의 정점을 찍게 한, 그러나 결코 가질 수 없는 완벽한 대상을 만나고야 말았다.
그날도 나는 홀린 듯이 ‘포인트 오브 뷰’의 층계를 올랐다. 나무 바닥이 기분 좋게 삐걱거렸고, 공간은 종이와 잉크, 나무의 냄새로 가득했다. 각 코너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문구들로 아름답게 채워져 있었다. 나는 4층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잉크병에 푹 찍어 쓰는 고풍스러운 딥 펜(dip pen) 하나를 손에 쥐었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펜도, 잉크도 아니었다. 각 코너마다 시필(試筆)을 위해 놓인 거대한 패드북이었다.
A3 용지만 한 넉넉한 크기,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따뜻한 미색, 그리고 한 장씩 뜯어 쓸 수 있도록 제본된 형태. 나는 시필용으로 놓인 만년필을 들어 그 위에 글자를 써보았다. 잉크는 전혀 번지지 않았고, 펜촉은 종이 위를 부드럽게 활공했다. 그 위에는 이미 나보다 먼저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의 설레는 낙서들, 이름들, 비밀스러운 문장들이 어지럽게 겹쳐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수많은 익명의 욕망과 감성이 쌓인 지층처럼 보였다.
‘이거다. 이걸 사야겠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패드북의 한 귀퉁이를 조심스럽게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는 방금 고른 딥 펜을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이 펜 하나 계산해 주시고요, 혹시 저기 있는 시필용 노트 패드는 어디에 있나요?”
직원은 내 물음에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 패드는 저희가 매장에서 사용하기 위해 따로 주문 제작하는 거라, 판매하는 제품이 아닙니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듯한 낙담이 밀려왔다. 판매용이 아니라고? 이토록 완벽한 물건을 만들어놓고 팔지 않는다니. 나는 애써 아쉬움을 감추며 “아… 그렇군요.” 하고 돌아섰다. 딥 펜을 계산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날 밤, 나는 인터넷 세상의 모든 문구 사이트를 이 잡듯 뒤졌다. ‘A3 노트 패드’, ‘미색 뜯어 쓰는 노트’, ‘대형 시필지’ 등 온갖 검색어를 입력했지만, 그와 비슷한 형태의 사물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그 공간을 위해 태어난, 가질 수 없는 존재였다.
나는 결국 그 노트를 갖지 못했다. 손에 들린 것은 위안 삼아 구매한 딥 펜뿐이었다. 처음 며칠은 상실감에 휩싸였다. 어쩌면 나는 종이 그 자체보다, 그 종이가 품고 있던 ‘가능성’을 소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설렘을 안고 첫 획을 그었을 그 공공의 캔버스, 완성되지 않은 채 영원히 시작의 순간만을 기록하는 그 자유로움 말이다.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나는 그 낙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소유할 수는 없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음으로써 그 완벽함을 유지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그 노트를 샀더라면, 그것은 곧 나의 글씨와 생각으로 채워져 평범한 ‘내 노트’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질 수 없기에, 그 노트는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수많은 사람들의 설렘이 깃든 이상적인 종이로 남아있게 되었다.
나는 책상 위, 그날 사 온 딥 펜을 만져본다. 이 펜은 이제 내게 단순한 필기구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가장 원했지만 가질 수 없었던 것에 대한 기억의 증표다. 나는 잉크를 찍어 하얀 종이 위에 글씨를 쓴다. 비록 그 꿈의 시필지는 아니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역설적으로 내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파피로필리아는 그렇게, 낙담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