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민낯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단어가 있다. 어이없게도 ‘마사지’라는 말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어깨라도 주물러준다는 건가 싶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너무나 초라하거나 보잘것없기에,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위장하라는 은밀한 지시였던 것이다. 아마 이런 단어를 들어보지 못한 순진한 영혼들도 많으리라.
“부장님, 이번 분기 실적 보고서 말인데요… 좀 어렵게 됐습니다.”
박 대리가 잔뜩 굳은 얼굴로 보고서를 내밀었다. 김 부장은 보고서를 슬쩍 훑어보더니, 익숙한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흐음… 예상은 했지만, 역시 쉽지 않군. 박 대리,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알지?”
“네… 마사지해야죠.”
박 대리의 대답에 김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마사지 실력은 이미 회사 내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좋아.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안 되는 이유를 좀 더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해.”
김 부장은 펜을 들고 보고서의 숫자들을 동그라미 치기 시작했다.
“여기, 매출 감소율이 15%지? 이걸 그냥 ‘시장 경쟁 심화로 인한 일시적 조정’이라고 쓰면 너무 밋밋해.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후퇴’라고 바꿔. 어때? 훨씬 있어 보이지?”
박 대리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비용 증가 부분은… ‘미래 성장을 위한 과감한 투자’로 포장하고. 특히 R&D 비용은 강조해야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 동력 확보’… 좋아, 아주 훌륭해.”
김 부장의 현란한 손길이 보고서 위를 춤췄다. 그는 능숙하게 뺄셈은 덧셈으로, 실패는 도전으로 둔갑시켰다.
“마지막으로, 긍정적인 부분을 최대한 부각해야지. 비록 목표 달성률은 낮지만, ‘새로운 고객층 확보’라든지, ‘신규 시장 진출의 발판 마련’ 같은 문구를 적절히 배치해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야. 마치 벚꽃처럼 화려하게!”
김 부장의 설명을 듣던 박 대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의 보고서는 순식간에 부정적인 내용보다는 긍정적인 가능성으로 가득 찬, 멋지게 ‘마사지’된 결과물로 탈바꿈했다.
다음 날, 김 부장은 경영진 앞에서 화려한 언변으로 실적 보고서를 발표했다. 물론 실제 숫자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그의 능숙한 ‘마사지’ 덕분에 경영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발표가 끝난 후, 한 임원이 김 부장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역시 김 부장이야. 보고서 아주 훌륭했어. 비록 어려움은 있었지만, 가능성을 보여줬어!”
김 부장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의 ‘마사지’ 비법이 또다시 통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박 대리에게 윙크하며 말했다.
“봤지? 진실은 때론 민낯이라 민망하지만, 약간의 ‘마사지’와 ‘사쿠라’ 같은 포장술만 있다면, 얼마든지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거야.”
일본에서 오래 산 이탈리아인 친구는 비슷한 뉘앙스로 ‘사쿠라(벚꽃)’라는 표현을 썼다. 폭설처럼 화려하게 피었다가, 흔적도 없이 덧없이 사라지는 벚꽃. 벚꽃은 실재보다 풍성하고 화려하게 꾸미는, 데코레이션의 느낌이 강한 꽃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을 듣는 순간, 직장에서 들었던 ‘마사지’라는 단어와 절묘하게 겹쳐졌다.
시험을 기다리는 시간의 지루함과 긴장감처럼, 직장에서 실적 발표를 기다리는 순간은 늘 묘한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결과가 신통치 않을 때면, 있는 그대로 보고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마사지’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보고되어야 할 숫자는 살짝 감추고, 부족한 부분을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덮는 기술. 마치 민낯을 감추고 ‘크리스털 화장법’으로 감쪽같이 변신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사실은 눈에 보이는 현상이지만, 진실은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진실은 때로는 아름답기보다 민망하거나 추하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포장의 기술을 연마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벚꽃처럼, 한순간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그들은 오늘도 ‘마사지’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