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 혹은 경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by 수요일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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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크리에이터의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상상도 못 할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는 버스나 지하철에 해먹을 설치하고 그 위에 누워 사람들에게 큰 불편을 주는 한 크리에이터의 이야기가 소개되었습니다. 승객과 안전요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먹을 달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다"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고 합니다. 단지 '좋아요'와 조회수를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의 영상이 4,500만 뷰를 기록하고 15만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옛말이 있지만, 이제는 '관심'과 '조회수'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시대가 된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공공질서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단지 온라인상의 관심을 얻기 위한 수단 앞에 무력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현실이 조금은 당혹스럽게 느껴집니다.


어제 귀갓길에 만난 대리기사님과 나눈 이야기가 내내 머릿속을 맴돕니다. 그분 말씀이, 인간의 모든 행동은 결국 두 가지 이유로 귀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종교와 같은 '신념'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이익'이라는 거죠.

대리기사님과의 대화에서 얻은 '신념'과 '경제적 목적'이라는 두 가지 동기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기사님의 이야기 속에서 더욱 깊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때 그분은 동료 대리기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순수한 '신념' 하나로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무려 3년간 300개가 넘는 영상을 만들었지만, 구독자는 늘지 않았고,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경제적 보상은 전무했습니다. 결국 그 열정적이던 활동을 접었다는 이야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분이 한사코 계정을 알려주지 않으셨지만, 집에 돌아와 찾아낸 채널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오직 대리기사만을 위한 정보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의 콜 정보나 효율적인 귀가 방법 등을 17분이 넘는 긴 영상에 빼곡히 담아 무려 319개나 제작했던 겁니다. 그의 꾸준함과 진심에 존경심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구독자 수는 939명에 불과했고, 그나마 발생한 몇십만 원의 수익마저 커피 쿠폰 이벤트로 동료들에게 전부 돌려준 뒤 채널 운영을 멈췄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는 분명 '선한 정보를 나눈다'는 신념으로 시작했습니다. 만약 그가 더 많은 동료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다소 자극적이거나 흥미 위주의 방식으로 내용을 각색했다면 어땠을까요? 그것은 더 큰 선의를 위한 유연한 타협일까요, 아니면 처음의 순수한 신념에 대한 배신일까요?

더 나아가, 만약 그가 노골적인 '어그로'를 통해 큰 수익을 내는 유튜버가 되었다면, 그것은 그의 신념을 배신하는 행위가 되는 걸까요? 신념으로 시작했지만 경제적 이유로 좌절된 그의 이야기를 통해, 신념과 생존의 경계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흔히 충청도 특유의 화법을 이야기할 때,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고 에둘러 말하는 방식을 떠올리곤 합니다.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이, 핵심을 비껴가며 느긋하게 상황을 보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하지만 예전 직장에 있던 한 충청도 출신 동료는 이런 고정관념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이 확고했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설임 없이 주장하는 직설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오히려 충청도 사람답지 않다고 느낄 때가 더 많았죠.

그의 이런 확고한 신념이 가장 흥미롭게 드러났던 순간은 다름 아닌 중국집에서였습니다. 그는 짜장면이나 짬뽕은 즐겨 먹으면서도, 건강에 해롭다며 단무지는 절대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나트륨이 너무 많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누가 봐도 건강을 최우선으로 챙기는 체형은 아니었기에, 짜장면의 나트륨은 괜찮고 단무지의 나트륨만 문제 삼는 그의 논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들렸습니다. 이처럼 그는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과 논리를 가진, 여러모로 흥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아니면 맑은 눈을 가지지 못해서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걸 수도 있겠지요. 지난 국회 청문회에서 어떤 장관이 한 말이 떠오릅니다. 돼지 눈에는 돼지 밖엔 보이지 않는다고요. 경제적인 이유로 신념이 묵살당하는 시절입니다. 하지만 설익은 신념이 때로는 이 사회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되겠지요.

술을 덜 먹은 날은 오히려 잠을 이루기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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