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다에 가고 싶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건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고향에서 먹었던 음식만큼 폐부에 각인된 것도 많진 않을 것이다. 외할머니집과 떨어지지 않은 집에 살았기에 첫 외손주인 나에 대한 사랑은 차고도 넘쳤다. 이북 피난민 출신들이시라 매해 여름이 되면 개장국(지금은 혐오식품이고 저 먼 불란서의 육감적인 여배우 브리지도 바르도마저 파르르 치를 떨었던 바로 그 음식?)을 푸짐하게 끓여서 온 집안과 이웃들이 추렴했고 날이 추워지면 가자미를 무와 버무려 만들어냈던 가자미식해, 가끔 30 여도를 오르내리던 여름날에 노란 양푼이 냄비에 한가득 사 와서 어린 손주 놈에게 들이밀던 그 차가운 국수, 그게 냉면이라고 안 건 한참 뒤 어른이 다 되어서였다. 내호냉면이라는 상호도 서울 가서 온갖 매스컴에 떠들어대고서 뒤늦게 방문해서 알게 된 냉면집이었다. 하지만 그때 맛은 아니었다. 그건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작은 체구에 반비례한 큰 사랑이 제거된 그냥 냉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 와서 처음 기억에 남게 먹은 음식은 부대찌개였다. 7월이나 8월쯤인가 명동에 있는 유명한 부대찌개집에서 인천 출신 회사 동료의 안내로 간 2층에 있는 가게였다. 그야말로 화이트셔츠 부대들이 모두 앉아서 부대찌개를 먹고 있었다. 처절한 생존의 현장이었다. 덥기도 한 여름날에 펄펄 끓여대던 찌개를 모두들 너무나 맛있게 먹고들 있었다. 앉자마자 바로 2인분의 찌개가 가스불위에 올려졌고, 동료는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햄과 소시지를 넣어서 여기에 쑥갓이 가득 올려진 육수에 이윽고 끓기 시작하자 여기 라면 하나요라고 이미 상에 올려진 공깃밥 외에 라면이라. 게다가 햄과 소시지는 어린 날 특식 아니던가. 지금까지 살아온 부산에서는 늘 수중전골이었다. 지금 21세기에서는 그 이름마저 사어가 되었더라. 해물전골의 옛 이름. 그 전골냄비에는 늘 담치와 오징어, 미더덕 등이 푸짐하게 올려져 있어 얼큰하게 소주잔과 동반자적인 관계를 맺었던 녀석. 사실 알고 보면 내용물만 다르지 같은 방식인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국물 음식이 그냥 서민 음식이란다. 어차피 없는 살림살이에 내용물 조금 넣고 국물 푸짐하게 둘러앉아 먹는 음식이 그런 것이리라. 솔직하게 난 그날 국물 몇 방울만 먹고 먹지를 못했다. 그 전날 과음 탓에 속도 울렁거리고 있었기에 기름진 부대의 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곁들이로 나오는 김치 등으로 전날의 위장을 달래기만 했다. 그러고 나서 몇 년을 지나고 나서야 부대찌개를 먹게 됐다. 그날의 충격은 과연 대단했다. 그렇다고 내가 기름진 음식을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됐을까.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해 거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항상성의 사람이라 그런 건가. 여전히 첫 부대찌개의 추억은 날카로운 기억으로 남는다.
어차피 추억의 음식으로 이야기한 김에 몇 가지 음식 얘기를 더해야겠다. 서울에 올라온 지 몇 해가 지난 뒤 밀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온갖 요술을 부려 정보를 수집했다. 저 멀리 퇴촌에 밀면집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식솔들과 함께 행차하였다. 워낙에 찬 음식, 밀가루음식을 싫어하는 와이프는 그 멀리 그 국수를 먹으러 간다고 하니 이미 싫은 기색이 차고도 넘쳤지만, 다행히 그 집은 닭으로 된 음식이 주요리였고 밀면은 곁들임 음식이었다. 하지만 밀면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밀가루로 만든 면이었다. 그 오묘하고 달큼하고 형용키 어려운 육수와 쫀득한 식감의 면이 아니었다. 그냥 하얀 국수였다. 내가 이걸 먹으려고 사흘 밤낮을 설득하여 이 자리에 왔단 말인가. 참으로 낭패였다. 그 처절한 기억으로 몇 년간 경기 서울 지역에서 밀면을 찾지 않았다. 그 이후 신월동에 생긴 밀면집을 가서 주인장에게 서울에서의 밀면 수행에 대한 얘기도 나눠보고 군포 언저리 시장 골목 구석에 앉아 손님 없는 가게의 단골로 몇 번이나 드나들었던 기억들이 있다.
외할머니집에 가면, 사실 외할아버지집이 맞는데,, 외갓집에 가면 어릴 때라 키가 작기도 하거니와 항상 무릎을 꿇고 밥을 먹었다. 겨우 대여섯 살이나 됐을까나. 쌀집을 하던 외갓집이라 하얀 쌀밥에 어린 아귀 같은 손주가 얼마나 귀여웠으면 항상 한 대접 식해 그릇을 나에게 배당하곤 했다. 대체 무슨 맛으로 먹은 걸까. 짜고도 자극적인 맛인데, 어린아이의 입맛이 아닌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게 된 나는 중년의 비만과 당뇨가 기준치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다.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시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이어받은 외숙모의 가자미식해도 그럴듯했지만 모친이 돌아가시고 나서 왕래가 끊겨 그마저도 먹을 데가 없어진 나는 직접 가자미식해에 도전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맛이 없었다는 말이다.
강원도 등 가자미식해를 파는 곳은 많았지만 어디에서든 외할머니의 맛은 없었다.
우리 엄마의 아들이 아니라, 외할머니의 손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