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의 남자 주인공을 그리며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전산화되어 이제는 손 안의 휴대폰 없이는 인간관계마저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인의 아버님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을 때,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몰라 지인들께 부고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고인이 남긴 휴대폰이지만, 통신사나 제조사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벽에 막혀 잠긴 비밀번호를 쉽게 열어주지 않습니다. 이제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내 디지털 정보에 대한 준비까지 미리 해두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이처럼 투명하게 기록되고 거짓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사람의 마음을 교묘히 파고드는 피싱 범죄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89년 하반기, 우리 회사 입사 동기는 총 74명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코스모스 졸업생도 있었고, 대부분은 학사장교나 ROTC 출신이었습니다. 혹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전년도 공채에 지원하지 않았던 '숨은 보석'들도 있었죠. 그렇게 '동기'라는 아름다운 이름 아래 건장한 사내들이 모였습니다. 여자 동기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똑똑한 여성 인재들은 이미 전년도 그룹 공채에 합격해 선배가 되어 있거나, 애초에 대졸 여사원을 선호하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룹 공채 교육을 마친 뒤였습니다. 하반기 공채 인원 전체가 2개 조로 나뉘어, 각 조당 12대의 관광버스에 올라 3주 동안 전국의 계열사 공장과 사업장을 순회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같은 회사 동기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전자나 화학처럼 대규모 인원을 채용하는 계열사 동기들이 대부분이라, 소수 인원을 뽑는 우리 회사 동기들과 마주치기는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룹 교육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마치 육군 병장처럼 기세등등했던 우리 동기들은 여의도 사옥에 모여 자사 교육을 받게 된 첫날, 다시 어리숙한 이등병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서로 어색하게 자기소개를 마친 후, 부산, 대구, 제천, 대전 등 지방에서 올라온 동기들은 금세 의기투합하여 영등포 근처에서 합숙을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깊은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매일의 고된 교육이 끝나면, 우리는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영등포의 밤거리를 누볐습니다. 갓 상경한 시골 청년들의 눈에 비친 영등포는 그야말로 불야성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글로 다 표현 못 할 사건 사고도 많았지만, 모두 풋풋한 시절의 추억일 뿐입니다.
정들었던 3주간의 교육이 끝나고, 동기들은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습니다. 부산과 대구 출신 동기들은 고향 근처 지점으로 발령받아 내려갔고, 제천과 대전에서 온 동기들은 서울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되었습니다.
3주간의 자사 교육 기간 중, 유독 눈에 띄는 동기가 있었습니다. 대구 출신의 그는 (물론 영등포에서 함께 합숙했던 동기는 아닙니다) 누구보다 활달하고 리더십이 넘쳤습니다. 훤칠한 키에 호남형 외모 덕분에 동기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았습니다.
비록 저희 '영등포 4인방'은 아니었지만, 같은 지방 출신이라는 유대감으로 몇 번 밤거리를 함께 어울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교육 2주 차에 접어든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인사팀의 호출을 받고 간 그는, 그 길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UFO에 납치라도 된 것처럼, 우리 곁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가 사라진 진짜 이유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인사팀으로 발령받은 동기를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충격적 이게도, 우리가 알던 '그'는 진짜 '그'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영화 <화차>의 여자 주인공처럼, 다른 친구의 이력서를 통째로 위조하여 그 사람 행세를 하며 입사했던 것입니다. 그룹 연수는 물론, 자사 교육까지 버젓이 받던 중에 모든 것이 발각되었습니다.
회사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냈는지 자세한 내막은 아직도 모릅니다. 다만 학력 조회를 하던 중 진짜 이력서의 주인에게서 이의가 제기되었다는 소문만 무성했을 뿐입니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물던' 순진한 시절,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20대 청년들에게 그의 증발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자대에 배치받은 후에도 여전히 먹지를 대고 손으로 기안서를 쓰던 아날로그 시대였기에 그런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에서조차 이런 일이...?' 하는 의심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가 발령받아 간 공장은 천여 명의 직원들이 내수와 수출을 책임지며 구슬땀을 흘리는, 그야말로 산업의 현장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고졸 출신 사무직이 많았고, 공장 내 새마을금고는 그런 직원들의 피와 땀이 밴 월급을 관리해 주던 소중한 곳이었습니다. 시중 은행을 대신해, 과장 한 명과 사원 한 명이 그 모든 것을 도맡아 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금고에서 일하던 그 사원은 저와 나이는 비슷했지만, 사회생활은 4-5년 먼저 시작한 선배였습니다. 비슷한 또래였기에 우리는 금세 친해져 함께 어울리며 술잔을 기울이고 노래방도 가면서, 나의 20대의 마지막 1년을 함께 보냈습니다.
공장에서 1년 남짓 근무한 후, 저는 서울로 발령받아 정신없는 막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그 새마을금고 직원이 거액의 공금을 횡령해 외국으로 도망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늘 조용하고 바르게만 보였던 친구였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정말이지, 사람은 겪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의 20대 직장생활은 그렇게 두 번의 거짓된 만남과 충격적인 인연으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 수십 년이 흘렀지만, 이력서를 위조했던 그 동기와 돈을 훔쳐 달아난 그 친구의 소식은 흐르는 바람결에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문득,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다가도 지금 이 시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사람을 감쪽같이 속이는 피싱이 판을 치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여러모로 수상한 시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