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길의 위로

반가사유상

by 수요일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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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경주(慶州)는 죽은 자들의 도시다.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한 그곳은, 거대한 고분들이 낮은 기와집들을 굽어보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땅이다. 대학 1학년의 풋풋한 봄날, 나는 그 도시를 다시 찾았다. 수학여행의 기억이야 친구들과의 기행(奇行)만 남고 다 날아가 버렸지만, 스무 살의 경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느릿한 상가와 한산한 거리, 그 처연한 아름다움이 꼭 하얀 얼굴을 한 어느 소녀를 닮아 있었다. 그 묘한 여운 때문에 나는 경주를 사랑하게 되었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군자는 큰길로 다닌다지만, 나는 아무래도 군자가 될 팔자는 아닌 모양이다. 나는 언제나 큰길보다 샛길이 좋았다. 북적이는 인파보다 한적한 고요함이, 직선보다 예측할 수 없는 곡선이 좋았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둘은 상대를 배려하느라 피곤하고, 넷은 파벌이 생겨 불편하다. 아무에게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혼자가 편하고, 혹여 둘이 소곤대도 모른 척할 수 있는 셋이 좋다. 이런 나의 기질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것은, 얼마 전 우연히 들른 국립중앙박물관에서였다.


그날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거대한 시장터와 같았다. ‘케이팝데몬헌터스’라는 넷플릭스 콘텐츠가 광풍처럼 유행하면서, ‘케데헌(K-대한민국-헌정굿즈)’이라는 신조어까지 파생하더니 개장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엄청난 인파에 질려버렸다. 박물관 굿즈 코너가 뉴욕 MoMA처럼 활황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군중과 함께 휩쓸려 들어가는 대신, 그 인파를 유유히 바라볼 수 있는 계단참에 앉아 그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강이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인파의 기세가 한풀 꺾였을 무렵, 나는 손선풍기 하나를 든 채 어슬렁거리며 입장했다. 나의 목표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떠들썩한 기념품 가게나 유명한 전시관이 아니었다. 나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가장 구석지고 조용했으면 하는 ‘사유의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인파는 거기에서도 여전했다.


어두운 통로를 지나 방에 들어서는 순간, 바깥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두 점의 반가사유상만이 오롯이 조명을 받으며 고요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번잡함 속에서 처연히, 그러나 완벽한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그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파고들었다. 나는 그 방에서 하염없이 그 미소를 바라보았다. 그곳도 비록 인파로 가득했지만 그 공간에서만은 나랑 반가사유상만이 있었다. 박물관 안에서 나만이 찾아낸 비밀스러운 샛길이자, 완벽한 피난처였다.


박물관 투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또 다른 곳은, 일본의 반가사유상이 있던 곳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다시 한번 발길을 멈췄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선, 모든 것을 덜어낸 듯한 형태. 그것은 ‘단순함의 경지’였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바로 저런 경지가 아닐까.


샛길을 걷고, 혼자이기를 즐기고, 단순함에 끌리는 것. 이 모든 것은 결국 같은 말일 것이다. 나는 세상의 중심에서 환호하기보다, 한 걸음 비켜서서 나만의 방식으로 위로받기를 원한다. 경주의 처연한 아름다움이,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이, 일본 불상의 단순미가 내게 주는 위로처럼.


이 글은 아직 미완성이다. 어쩌면 내 인생도 그러할 것이다. 큰길을 따라 정해진 목적지로 향하는 삶이 아니라, 수많은 샛길을 헤매며 예기치 않은 풍경과 마주하는 여정. 나는 아마 평생 완결되지 않는 이 글처럼, 나의 샛길 위에서 계속 무언가를 발견하고, 또 무언가를 잃어버리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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