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기도

뿌리깊은 나무

by 수요일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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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소년 아톰’, ‘요괴인간’, ‘황금박쥐’. 나의 유년기는 흑백텔레비전 속 그들이 살던 세상과 함께였다. 국내 제작 기술이 없던 시절이라, 이 모든 나의 최애 만화시리즈는 ‘MADE IN JAPAN’이라는 사실도 모르면서 나는 아톰을 보며 내 몸 어딘가에도 인간에게는 없는 기계 장치가 숨겨져 있을 거라 믿었고, 글자도 모르던 대여섯 살 시절에는 동네 만화방 유리문에 붙은 만화 표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림은 다른데 제목의 글자 모양이 같은 책이 두세 권씩 있는 것이 어린 마음에겐 요지경 같았다. ‘상중하’ 권의 개념을 알 턱이 없던, 순진한 꼬마였다.


활자를 깨우친 후 나의 방랑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2원짜리 만화를 보고 또 보던 소년은 어느새 학교 도서관의 위인전과 고전을 섭렵했고, 셜록 홈스를 거쳐 작은 고모 집에 있던 해학 소설 전집에까지 손을 뻗었다. 19금에 가까웠을 ‘배비장전’과 ‘이춘풍전’의 해학과 비틈은 어린아이의 눈에도 흥미로웠다. 결국 이 주체 못 할 활자 사랑은 나를 정규 교육 과정에서 멀어지게 했고, 지금의 ‘요 모양 이 꼴’로 살게 된 근간이 되었다.


“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지금 전 세계에서 난리 난 애니메이션이에요.”

주말 저녁, 아들 녀석이 넷플릭스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요란한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틀었다. 오랜 기간 만화를 보지 않은 내 눈에, 현란한 화면은 그저 정신없는 선과 악의 대결일 뿐이었다.

“이거 뭐, 그냥 잡탕밥이구먼. 김밥에, 국밥에, 선비가 칼 휘두르고… 근본이 없어.”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아들이 신이 나서 대꾸했다. “그게 인기 비결이래요! 외국 사람들이 저 갓 쓴 선비랑 김밥에 열광한다고요. K팝 노래도 나와요.”

나는 시큰둥하게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갓을 쓴 주인공이 칼을 휘두르는 모습 위로, 어린 시절 내가 탐독했던 ‘김삿갓전’의 방랑시인 모습이 겹쳐 보였다. 요괴를 물리치는 장면에서는 ‘요괴인간’의 스산함이, 첨단 무기가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아톰’의 미래적인 감각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이것은 근본 없는 잡탕밥이 아니었다. 내가 평생에 걸쳐 사랑해 온 수많은 이야기의 파편들이었다.


문득, 해외 출장길에 만났던 외국인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한국은 몰라도 북한의 그분은 안다던 그 시절. 위험한 분단국가라는 꼬리표가 전부였던 변방의 작은 나라. 하지만 이제는 세상 구석구석 여행 유튜버들의 영상 속에 한국 라면과 K-문화가 등장한다. 한국을 동경한다고 하는 외국인들이 부지기수이다. 내가 만화방 창밖에 서서 동경했던 일본 만화처럼, 이제 세상 사람들이 한국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차올랐다. 뿌듯했다.

화면 속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이 문득 떠 올랐다.


불휘 기픈 남가ᆞ간 바ᆞ라ᆞ매 아니 뮐싸ᆡ, 곶 됴코 여름 하나ᆞ니。 사ᆡ미 기픈 므른 가ᆞ마ᆞ래 아니 그츨싸ᆡ, 내히 이러 바라ᆞ래 가나ᆞ니。


그렇다. 지금의 이 현상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내가 만화방을 헤매고, 위인전을 읽고,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자라나는 동안,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쌓아 올린 시간의 뿌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깊은 뿌리와 마르지 않는 샘이 있었기에, 이제야 비로소 좋은 꽃과 풍성한 열매를 맺어 거대한 바다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조용히 거실을 빠져나와 내 서재로 향했다. 상업적으로 성공하든, 문화적으로 침투하든, 부디 오래가기를. 주위의 시기나 일시적인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나아가기를.


창밖을 보며 두 손을 모아 본다. 오늘은 너무, 꼰대스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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