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처방전만 늘어남
과다 영양의 시대다. 하루 세끼를 넘어 야식과 군것질이 일상이 된 지금, 우리는 비만이라는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20년간 거의 매일 아침 운동을 했지만, 내 몸무게는 요지부동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도에서 두 달을 살며 자전거를 탈 때는 잠시 날렵함을 되찾는 듯했으나, 서울로 돌아온 후의 나태함은 어김없이 각종 대사증후군과 병원 순례로 이어졌다. 관리하지 않으면 몸이 망가지는 건 한순간이다.
돌이켜보면 인류는 수십만 년을 기아와 싸워왔다. 달콤함(설탕)과 짭짤함(소금)은 생존을 위한 필수 에너지원이자, 가장 얻기 힘든 맛이었다. 그 치명적인 유혹의 맛이 유전자 깊숙이 각인된 우리에게, 먹을 것이 넘쳐나는 지금은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다. 생존을 위한 갈망이 이제는 도리어 몸을 병들게 하는 아이러니. 우리는 본능과 건강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문득 김훈 작가를 떠올린다. 나는 그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다. 그는 글을 ‘뼈’로만 쓴다고 했다. 주어, 동사, 목적어, 서술어. 문장의 핵심 골격만으로 의미를 세우고, 화려한 형용사나 부사 같은 ‘피와 살’은 최대한 덜어낸다. 그 뼈대만 남은 문장들은 놀랍도록 단단하고 명징하다.
몸도 마찬가지 아닐까. 뼈가 있기에 몸을 지탱하는 것이지, 피와 살은 그 뼈대를 감싸는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과도한 지방과 군살이라는 ‘피와 살’은 오히려 뼈대를 약하게 만들고 몸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건강한 삶이란, 어쩌면 김훈의 문장처럼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삶의 본질적인 ‘뼈대’만을 남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의사: 안녕하세요 환자분. 지난 몇 달간 고지혈증 약은 잘 챙겨 드셨는데… 이 혈당이 문제네요. 저번에 당뇨 전단계라고 말씀드렸을 때, 약 안 먹고 버텨보시겠다고 꽤 고집 피우셨잖아요.
나: 운동은… 매일 했습니다.
의사: 수치를 보세요. 나아진 게 없어요. 이젠 고집 피우실 때가 지났습니다. 당뇨약도 같이 처방해 드릴게요.
나: 운동만으로는 안 되는 겁니까…
의사: 운동하시는 건 좋은데, 그만큼 또 드시니까 그렇죠. 지금 체중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약은 약이고, 결국엔 체중 조절하고 운동 꾸준히 하시는 수밖에 없어요. 약 먹는다고 끝이 아닙니다. 식단 조절이 먼저예요. 그 달고 짠 것들이 지금 몸에 다 ‘군살’로 붙는 겁니다. 환자분 몸의 뼈대를 지탱해야 할 몸에 필요 없는 살이 덕지덕지 붙으니까 대사증후군이 오는 거예요. 뼈대는 놔두고, 그 ‘군살’부터 싹 덜어내세요. 약 처방해 드릴게요.
진료실을 나서며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탐하고 껴입으며 살아간다. 넘쳐나는 음식, 화려한 수식어, 불필요한 관계들. 그 모든 ‘피와 살’ 속에서 정작 중요한 삶의 ‘뼈대’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훈 작가처럼 군더더기 없이, 뼈대만으로 단단하게 서는 삶. 그것이 글쓰기이든, 건강 관리이든, 혹은 인생 그 자체이든. 나는 오늘부터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비록 쉽지는 않겠지만, 뼈만 남은 삶의 담백하고 명징한 아름다움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