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와 그림자
느닷없는 부고였다. 20년을 알고 지낸 후배인데, 그의 아내가 보낸 문자였다. 아내의 이름이 마침 내가 아는 다른 이의 이름과 같아서, 순간 그 사람의 남편이 잘못된 줄 알았다. 잠시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정리되자, 불길한 상상이 뒤따랐다. 그에게 지병이 있긴 했지만 이리 황망하게 갈 병은 아니었다. 나는 우리나라 사망 원인 5위의 그 서늘한 가능성을 떠올렸다.
코로나와 경기 침체로 가게 운영이 힘들다며 하소연하던 그의 얼굴. 지병 때문에 두주불사 하던 술도 끊고 악착같이 살려던 그의 모습. 그 모든 것이 어지러이 뒤섞였다.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응시했다. 배경화면으로 설정해 둔 모델의 사진. 환한 조명 아래 그녀는 정면을 보고 미소 짓고 있지만, 그 뒤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비스듬히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어쩌면 진짜 이야기는 밝은 곳이 아닌, 저 어두운 그림자 속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키의 소설처럼,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결코 온전히 읽히지 않는 꿈과 그림자의 세계를 품고 살아간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어린 시절의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19세기말에 태어나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도, 머리에는 동백기름을, 등에는 꼿꼿함을 잃지 않으셨던 ‘테레사 할매’. 할머니는 내게 늘 말씀하셨다. “남자가 모든 걸 다 해봐도 되는디, 딱 두 가지, 도박하고 여자 때리는 짓은 허는 게 아니다.” 그 단순하고 명쾌했던 가르침이, 복잡하고 불분명한 것들로 가득한 오늘 아침, 유난히 그리웠다. 할머니가 손으로 먼지를 쓸어 모으시던 그 단정함처럼, 나도 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좀 쓸어내고 싶었다.
결국 새벽에 잠이 깨고 말았다. 다시 잠들지 못해 뒤척이다, 팟캐스트를 틀었다. 잠을 청하기 위해 틀어놓은 책을 읽어주는 방송에서, 오늘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 읊조림처럼 흘러나왔다.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
비몽사몽간에 들려오는 그 구절. ‘물질적인 것은 공허한 것과 다르지 않으며, 공허한 것이 곧 물질적인 것이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만화경처럼 하나로 맞춰졌다. 환하게 웃고 있던 후배의 ‘보이는 모습(色)’과, 아무도 몰랐을 그의 깊은 고뇌라는 ‘보이지 않는 공허함(空)’. 조명 아래 빛나는 모델의 얼굴(色)과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한 그녀의 그림자(空). 할머니의 단정한 외양(色)과 그 안에 숨겨진 인고의 세월(空).
보이는 것이 진실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인의 밝은 조명만을 보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착각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언제나 그 너머의 그림자 속에 있다. 후배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나는 감히 그의 삶 전체를 불행했다고 단정 짓지 않으려 한다. 나 또한 내 그림자 속에서 나만이 아는 행복과 슬픔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으므로.
오늘 아침, 하나의 죽음은 내게 살아있는 자들의 수많은 그림자를 돌아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