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불교방송 원영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을 듣는다. 잠 못 드는 밤의 위로이자,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시간이다.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우리가 세상을 받아들이고 느끼고 생각하며 의지를 다지는 이 모든 과정(五蘊)이 결국 공(空)하다는 가르침. 머리로는 어렴풋이 이해가 가지만, 내 삶의 구체적인 감각과 기억, 관계들 앞에서 이 ‘공(空)’이라는 개념은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등바등 살아내다 결국은 소멸(滅)하는 것이 인생의 여정이라면, 그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인연(因緣)들은 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이 풀리지 않는 질문을 안고, 나는 매일 아침 습관처럼 헬스장으로 향한다. 경전 속의 ‘공’과는 너무나 다른, 땀 냄새와 쇳소리, 그리고 온갖 ‘색(色)’으로 가득한 현실 속으로.
그곳에는 매일 아침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분은, 스스로 ‘여기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고 공언하시는 여든넷의 노인이다. 서울시 공무원 출신이라는 이력 덕분인지 목소리는 우렁차고 발음은 또렷하다. 그는 매일 정확히 같은 시간에 나타나, 딱 네 가지 기구만을, 각 30분씩 사용한다. 문제는 그 네 가지 중 세 가지가 나와 겹친다는 점이다. 나는 그의 굳건한 루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눈치를 보며 빈틈을 찾아 운동해야 한다.
“허허, 그 중량을 어떻게 하시나, 무릎이 괜찮은가요?”
가끔 말을 걸어오실 때면, 나는 내심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상냥하게 대꾸한다. 내 표정이 워낙 근엄한 편이라 남들이 쉽게 말을 걸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의 대화 주제는 주로 늙어버린 자신에 대한 한탄과 헬스장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이다.
“내가 9월까지만 하고 그만둘 거야. 여기 영 마음에 안 들어.”
그렇게 말씀하신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지만,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나타나 같은 기구 위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샤워실에서도 우리는 늘 마주친다. 내가 후다닥 씻고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그는 아주 꼼꼼하고 느긋하게 몸을 닦고 옷을 입는다. 그 꾸준함과 집요함. 어쩌면 저것이 그가 ‘공’ 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色)를 확인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반야심경은 말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色)은 결국 공(空)하며, 그 공(空)함 속에서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이론은 명쾌하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헬스장의 그 노인은 내게 살아있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교본과 같다. 그는 자신의 늙어가는 몸(色)을 느끼고(受),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불만을 생각하며(想), 매일 같은 운동을 반복하려는 의지(行)를 가지고, 이 공간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識)한다. 그만두겠다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모든 것이 공하다는 진리 앞에서도 우리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색(色)’에 집착하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귀찮은 마음을 애써 감추고 웃으며 대꾸하는 나의 모습 역시 하나의 ‘색(色)’이다. 그 노인과의 짧은 만남과 스침이라는 인연(因緣) 속에서, 나는 여전히 ‘공(空)’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채 수많은 감정과 생각에 휘둘린다.
어쩌면 ‘삶의 의미’란, 공(空)함을 완벽히 깨닫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색(色)의 세계 속에서, 그 모든 것이 결국 공(空)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 그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무거운 아령을 들어 올리며, 텅 빈 마음을 향한 고단한 수행을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