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램핑

by 수요일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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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이 있던 시절이다. 물론 지금도 최저시급은 엄연히 있지만, 그땐 옷을 만드는 회사 직원 대부분의 급여가 시급으로 책정되던 시절이었다. 나는 노무팀 직원으로서 신규 근로자들의 시급을 현장 관리자와 논의하여 결정하고, 일 년에 한 번 노사협의를 통해 정기 인상안을 만드는 일을 했다. 서울로 발령 나기 전, 딱 한 번 그 지난한 과정을 경험했다.

당시는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이라, A2 정도 되는 거대한 모눈종이에 근로자들의 이름과 현재 시급을 빼곡히 적었다. 3%든 5%든 인상안에 따른 조정 시급을 계산해야 했는데, 일괄 인상이 아니라 연차별, 개인별 사정에 따른 차등 지급률이라 그 계산식이 상당히 복잡했다. 지금이야 엑셀로 10분이면 끝날 일이지만, 계산기를 두들기고 모눈종이에 옮겨 적다 보면 눈이 빠질 것 같았고, 왕왕 틀리기도 했다.

밤새운 작업을 부장님에게 가져가면, 그 오랜 작업물을 쓱 일별 하고서는 "틀렸다"라고 하신다. 틀리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그 사실만은 정확하다. 맞추기가 쉽지 않다.

노사협의는 수차례 결렬된다.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이 나지는 않는다. 각각의 입장이 너무 다르다. 한 번에 양쪽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짐짓 화를 내고 노조위원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다음번에는 사측 대표가 그런다. 몇 번의 합(合)을 통해 서로의 내공과 허실을 인정하면서 협상은 무르익어간다.

그 상황에 따라 나는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바빴다. 조율되는 숫자에 따라 전체적으로 조정되는 금액의 변화를 사측 대표인 부사장에게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합의에 이르렀다. 서로 불만은 있지만, 한 해 농사가 마무리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에 노사는 기꺼이 술잔을 기울였다. 사람이 옷을 만들고, 만든 옷을 사람들이 입던 시절. 갈등은 있었지만, 사람 냄새나는 과정이었다.


지금은 우리가 옷을 만들지 않는다. 대부분은 한국에서 기획이나 디자인한 제품을 동남아 등지에서 꿰매고 포장하여 수입한다. 브랜드가 중요한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딱히 브랜드를 따지지 않는다. 고가 명품 외에는 어중간한 브랜드들이 살기 어렵다. 다들 가성비를 찾는다. 점점 사람이 중요하지 않은 시절이 되어가고 있다.


며칠 전, 은퇴한 친구들과 강원도 홍천의 글램핑장을 찾았다. 모두들 이 바닥에서 꽤 오래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는 의류 제조 판매였지만, 이 두 분은 30여 년 이상을 백화점에서 임원까지 지낸 유통의 전문가들이다. 예전에는 갑과 을의 관계였겠지만, 지금은 그저 나이도 비슷하고 취향도 조용한, 중늙은이들일뿐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타입이 아니라 꽤 여러 해 국토종주 자전거도 타고, 종종 차박이나 캠핑을 같이 즐기는 편이다.

나무에 불을 피워 숯을 만들고, 그 숯향을 입힌 목살에 소주잔을 기울였다. 아름다운 홍천강 지류에서 보내는 하룻밤의 정취가 좋았다. 나름 깨끗이 정리 정돈도 하고 마무리를 잘하고 집에 왔다.

그런데 그날 총무를 맡은 분에게 문자가 왔다. 글램핑장 주인이 2만 원 추가 비용을 내라고 한다고. 숯을 피우고 치우지 않았기에 그 청소 비용을 청구한다는 것이다. 3명에 20만 원의 숙소료에 비치되어 있는 장비를 썼는데, 얼마 되지도 않은 재를 치우는 비용을 물린다는 것이었다.

이미 2인실에 1인 추가로 2만 원의 비용을 더 지불한 마당에 주인장의 야박함에 못내 섭섭했다. 나는 잔소리 듣기 싫으니 2만 원을 주자고 했지만, 총무는 단연코 지불을 거절했다. 그 정도의 수고는 주인이 감내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모눈종이 위에 빼곡히 적힌 시급 계산식이 사람 냄새나는 치열한 협상의 증거였듯, 글램핑장에 남겨진 잿더미는 우리가 나눈 즐거운 추억의 흔적이었다.

과거에는 계산기가 틀려도, 노사가 얼굴을 붉혀도 결국에는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과정이 있었다. 갈등조차도 관계의 일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사람 대신 엑셀이 계산을 대신하고, 브랜드 가치보다 가성비가 우선시 되는 시대다. 그리고 2만 원의 청소비 앞에서 즐거웠던 여행의 기억마저 희미해지는 야박한 인심과 마주한다.

글램핑장의 재를 치우는 일은 분명 번거로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손님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나 낭만까지 '비용'으로 계산하려는 태도 앞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사람이 옷을 만들고 사람이 사람을 대하던 시절의 온기가, 저물어가는 홍천강의 노을처럼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만 같아 마음이 헛헛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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