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음인이라

by 수요일엔 비
Screenshot-2025-04-23-at-11.07.55%E2%80%AFAM-1.png

바닷가 출신이라 그런지 육고기보다는 해물이 편하고 익숙하다. 계절의 변화는 곧 밥상의 변화였다. 봄바람이 불면 향긋한 멍게로 미각을 깨우고, 가을바람이 선선해지면 고소한 전어와 탱글탱글한 굴을 찾아다니는 것이 삶의 큰 즐거움이었다. 갯내음 가득한 해산물 한 접시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우연찮게 들른 한의원에서, 나의 이 확고한 식생활에 청천벽력 같은 선고가 내려졌다. 동그란 안경 너머로 혈색 좋은 한의사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의 진단은 단호했다.

"태음인이시네요. 체질적으로 바다 음식과 상극입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조개류는 물론, 가을 전어 같은 등 푸른 생선, 낙지나 문어 같은 두족류, 심지어 가끔 특식으로 즐기던 홍어마저 내 몸에는 맞지 않는다고 했다.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너무나 상식적인 그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모든 병의 근원은 결국 입으로 들어와 몸을 한 바퀴 돌고 나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니.


평생 바다의 축복이라 믿고 즐겨왔던 음식들이 실은 내 몸을 서서히 병들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일종의 배신감마저 들게 했다. 입맛은 바다를 기억하는데, 몸은 바다를 거부한다. 바닷가 출신이 바다를 잃어버린 셈이다. 식탁 앞에서 나는 딜레마에 빠진다. 익숙한 즐거움을 좇을 것인가, 낯선 건강을 따를 것인가. 나의 입과 몸은 그렇게 어긋난 채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15년을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이가 있다.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레버넌트> 속 처절한 생존기는 아니지만, 15년이라는 세월은 한 사람이 잊히고 다시 기억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다. 집 나간 탕아의 귀환이라 해야 할까. 어쨌든 금의환향(錦衣還鄕)인 셈이다.

반가운 일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남아있던 사람들이 돌아온 이를 따뜻하게 반겨 맞는 모습은 흐뭇하기 그지없다. 또한,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잊지 않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그의 집념 또한 대단하다.

떠난 자와 남은 자, 그리고 다시 만난 자들. 15년이라는 공백은 그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강산이 한 번 하고도 반이나 변했을 시간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다시 만난 그들의 얼굴에는 묘한 감회가 서려 있었다.


인연이란 참으로 질기다. 쉽게 끊어질 듯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되는 법이다. 15년 만의 귀환을 지켜보며,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깊고 오묘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입맛은 변하지 않아도 체질은 변하고, 사람은 변해도 인연은 이어진다. 바다 음식을 멀리해야 하는 태음인의 운명 앞에서 좌절하면서도, 15년 만에 다시 이어진 인연 앞에서 삶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어쩌면 삶이란, 내 몸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취하려다 탈이 나기도 하고, 멀어졌던 인연이 뜻밖의 순간에 다시 찾아와 위로를 주기도 하는, 예측 불가능한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멍게의 향긋함 대신 채소의 담백함을 배우고, 돌아온 인연과 함께 15년의 공백을 술잔으로 채우며, 나는 오늘도 인생이라는 밥상 앞에 앉아 쓴맛과 단맛을 고루 음미해 본다.

이전 07화푸른 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