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체인간
세상은 늘 무언가로 우리를 정의하려 든다. 한때는 A형이니 B형이니 하며 혈관 속에 흐르는 피로 성격을 재단하더니, 이제는 알파벳 네 글자의 조합인 MBTI가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만능열쇠가 되었다.
“너는 무슨 형이야?”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늘 주저한다. 수십억 인구가 저마다 다른 지문과 홍채를 가지고 태어나듯, 우리 내면의 풍경 또한 단 한 사람도 같을 수 없다는 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 같아서다. 기댈 곳 없는 불안한 영혼들이 서로를 규정짓고 속단하며 찰나의 안도감을 얻으려는, 일종의 슬픈 몸부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분류의 시대 속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변한다.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모습을 바꾸고 틈새로 스며드는 액체(液體)처럼, 때로는 뜨거운 열기 앞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리는 기체(氣體)처럼. 어제의 약속이 오늘의 휴지 조각이 되고, 한때 뜨거웠던 관계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을 목격하며 나는 종종 현기증을 느꼈다. 이 유동하는 세상에서, 나는 과연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까.
그래서 나는 나무를 사랑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씨앗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사계절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그 우직함이 좋았다. 봄이면 새순을 틔우고, 여름이면 그늘을 드리우고, 가을이면 잎을 떨구고, 겨울이면 나목으로 견디는 나무. 폭풍우가 몰아쳐도 가지가 꺾일지언정 결코 뿌리째 뽑혀 나가지 않으려는 그 단단한 고집이 부러웠다. 나무는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숲을 이루고, 그늘을 만들고, 생명을 품는다. 존재 그 자체로 증명하는 삶이다.
며칠 전, 오랜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밤이었다. 꽤 취한 한 녀석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넌 참… 고체(固體) 같은 사람이야.”
순간, 시끌벅적하던 술자리의 소음이 멀어지고 그 말만 귓가에 맴돌았다. 칭찬인지, 융통성 없다는 비아냥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말이 사무치게 고마웠다. 그래, 나는 액체도 기체도 아닌, 투박하고 미련해 보일지라도 변치 않는 고체로 살고 싶었다. 한 번 정한 마음의 틀을 쉽게 깨지 않고, 한 번 맺은 인연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나무처럼 단단한 사람.
사람을 쉽게 믿는 것은 어리석지만, 믿는다고 해놓고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것은 잔인하다. 자본주의가 수많은 계약으로 지탱되듯, 우리의 관계 또한 보이지 않는 믿음의 계약 위에 서 있다. 사랑도, 우정도, 결혼도 결국은 서로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약속이다. 상대방에 대한 깊은 배려는 이 계약의 필수 불가결한 조항이다.
나는 오늘, 이 흔들리는 액체의 시대 속에서 나 자신과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상황에 따라 쉽게 모양을 바꾸지 않겠다고. 나를 믿어주는 이들의 곁을 기체처럼 증발해 떠나지 않겠다고. 나무처럼 깊이 뿌리내리고, 고체처럼 단단하게 나의 자리를 지키겠다고.
비록 세상의 거센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결코 꺾이거나 뽑히지 않는 '고체 인간'으로 남기 위하여. 이것은 나를 지키고, 나의 소중한 인연들을 지키기 위한, 나의 가장 진솔한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