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국화
나는 푸른색이 좋다. 찬 겨울의 쨍한 공기 속에서 바라다 보이는 하늘색과, 맑은 바다 모래에 비친 그 색이 좋다. 늘 땅만 보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가끔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꾼다. 그런 꿈을 꾼 날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육교 위에서도 항상 가운데를 걷는 것이 습관이다. 그런 내가 군대에서 우연찮게 차출되어 유격 조교 생활을 1년가량 한 적이 있다. 외줄 담당. 산과 산 사이에 외줄 하나를 걸고 그 위를 기어가는 코스였다. 유격 시즌에는 하루에도 네 번가량 시범을 보였다. 약 150m의 외줄 코스에서 10m가량을 진행하다 돌아오는 시범을 보였는데, 가는 건 줄이 중력에 따라 하강하는 구간이라 쉬웠지만, 돌아오는 것은 카라비너가 한 번 꼬인 상태로 상대적으로 높은 출발 지점을 향해 올라가야 했기에 두 배 이상 힘들었다. 하지만 '폼 나는 조교'의 모습을 지키려면 숨을 끝까지 참아야 했다. 물론 씨벌개진 얼굴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이등병 시절 낙오하여 '고문관'이었던 내가, 그런 체력을 길러 자대로 복귀한 나머지 몇 개월간의 병장 시절에는 10km 단독군장 구보 시 허약한 후배 녀석의 총기마저 들고뛰었으니. 낙오했을 때도, 제대 전 병장 때도 구보 시 하늘은 늘 파랬다. 다른 개념이겠지만, 그 파란 하늘은 나에게 잊지 못할 푸른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연두색도 좋다. 두꺼운 목질을 뚫고 솟아나는 새봄의 그 연두. 그 어린잎이 어떻게 죽어버린 코르크층을 뚫고 나오는지 너무나 신기하고 애처롭다. 어느새 그 연한 연둣빛이 점차 짙은 녹색으로 변할 때쯤이면 살아있는 모든 것이 생동감이 넘친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대지가 다시 숨 쉬는 듯한 활기. 그 연두와 초록의 변화는 삶의 강인함과 순환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옷은 검은색이나 짙은 회색이다. 푸른색과 연두색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채색 계열의 옷만 선호한다. 왜 그런 걸까. '폼'나는 그런 것일까. 2022년 11월 '한국인의 색상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이 좋아하는 색깔은 푸른색이었고, 옷 색깔은 검은색이라고 한다. 나는 가장 보편적인 한국인인 것이다. '백의민족'이라고 하지만 실제 선호도에서는 8위란다. 어쩌면 염색 기술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아 삼베옷 자체를 입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며칠 전, 짧아져버린 가을볕을 아쉬워하며 노란 국화 한 묶음을 사서 화분에 옮겨 심었다. 작은 화분에서 그 많은 국화 송이를 키워낸 원예업자가 놀랍기도 하고, 큰 화분에서 마음껏 송이를 피워내고 있는 노란 국화를 보면 마음마저 따스해지는 느낌이다. 짙은 와인색 국화도 샀지만 송이 개수도 적고 왠지 추워 보였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색깔(파란색, 검은색, 노란색, 초록색, 연두색 순)을 나는 모두 좋아하고 있었구나.
푸른 하늘을 동경하고, 새싹의 연둣빛 생명력을 사랑하지만, 결국 내가 입는 옷은 무채색이다. 강렬한 원색보다는 차분하고 안정적인, 어쩌면 나 자신을 감추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인 표현일지도 모른다. 고소공포증에도 불구하고 외줄 위를 걷고, '고문관'에서 '조교'가 되었던 이등병 시절의 나와, 푸른 하늘 아래 무채색 옷을 입고 노란 국화를 보며 서 있는 지금의 나는 과연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 보편적인 한국인의 모습 속에 숨겨진, 나만의 푸른 하늘과 연둣빛 꿈, 그리고 따스한 노란 국화는 여전히 마음속에서 생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