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의 공부벌레들'이라는 낡은 미국 드라마가 있었다. 법전(法典)이 아닌 판례(判例)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불문법의 세계. 그 속에서 무시무시한 킹스필드 교수는 서슬 퍼런 '문답법식 강의'로 학생들을 그야말로 때려잡는다. 학생들은 교수의 혹독한 질문 세례에 답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낙오되고, 미약한 성공에 잠시 취하기도 하는, 그 엄혹한 세계를 나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나는 그런 부류의 이야기에 유독 현혹되었다.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할리우드식 공상 인물이 아니라, 현실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것 같은 '일상적인 천재들'의 이야기. 그들은 나와 같은 공기를 마시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날카로운 지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나는 왜 그들에게 그토록 매료되었을까. 문득, 나 스스로 던졌던 잊힌 질문들이 수면 위로 떠 오른다. "자존심이 강한 편이라는 말은, 열등감이 많다는 얘기인 건가?",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에 대한 탐구가, 천재들을 좋아하는 습성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며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꼈다. 그들의 명민함이 내 둔탁함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성취가 나의 게으름을 질책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감정의 끝에는 늘 씁쓸한 질문이 하나 남았다.
"나는 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나를 알지도 못하고, 나를 해하려는 의도조차 없었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세계에서 빛나고 있었을 뿐이다. 킹스필드 교수는 드라마 속 인물일 뿐인데, 나는 왜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학생처럼 움츠러들었던가.
혜능 대사의 일화가 떠오른다.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보고 누군가는 '깃발이 움직인다' 하고, 누군가는 '바람이 움직인다' 했다. 혜능은 말했다. "움직이는 것은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닙니다. 움직이는 것은 바로 그대들의 마음입니다(仁者心動)."
그렇다. 문제는 깃발이나 바람, 즉 천재들이 아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속절없이 흔들린 것은 나의 마음이었다. 나의 자존심이라는 깃발이, 나의 열등감이라는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의 '슬픈 꿈'은, 그것이 '성취되지 못하기 때문에' 슬픈 것이리라.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 내가 도달하지 못한 경지. 그것을 너무나 쉽게 해내는 '일상적 천재'들의 존재는, 나의 초라함을 확인시키는 모욕의 증거처럼 다가왔다.
결국 나는 그들을 동경한 것이 아니라, 그들처럼 되지 못한 나를 질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에 매료된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을 보며 나의 깃발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