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림
2095년, ‘네오 서울’의 외곽에 자리 잡은 거대한 돔, <아날로그 커뮤니케이션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준'은 오늘도 먼지를 턴다. 그의 손끝에 닿는 것은 수백 년 전의 유물, 종이책이다. 누렇게 바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큐레이터 준, 심박수가 미세하게 상승했습니다. 불쾌감을 느끼십니까?”
허공에서 인공지능 비서 ‘아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그리움’이라는 데이터야, 아리아.”
돔 밖의 세상은 더 이상 이런 비효율적인 매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뇌에는 ‘뉴럴 링크’가 심어져 있었다. 소설 <삼체>에 나오던 외계 문명처럼, 그들은 의도를 뇌파로 직접 전송했다. ‘사랑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수고 대신, 사랑의 감정을 담은 신경 전기 신호를 0.1초 만에 상대의 뇌에 꽂아 넣었다. 오해는 사라졌고, 거짓말은 불가능해졌다. 진심과 진실이 투명하게 오가는 세상. 인류가 그토록 꿈꾸던 궁극의 소통 단계였다.
하지만 준은 이 완벽한 세상이 숨 막혔다. 그는 박물관 구석에 처박힌, 21세기 초반의 낡은 영상 기록물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준이 가장 아끼는 영상은 ‘흑백요리사’라는 고대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홀로그램 스크린 속에 ‘최강록’이라는 이름의 요리사가 등장했다.
그는 말이 없었다. 주변의 다른 요리사들이 자신의 요리 철학과 재료의 우수성을 화려한 언변으로 포장할 때, 그는 묵묵히 무를 조렸다. 심사위원 앞에서도 그는 어수룩하게 몇 마디 웅얼거릴 뿐이었다. 입을 여는 순간 망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그러나 결과물은 압도적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요리를 맛보는 순간, 어떤 말도 필요 없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아리아, 이 데이터를 분석해 줘. 왜 이 사람은 말을 하지 않지?”
[분석 결과, 언어 중추의 활동성 저하보다는 의도적인 정보 절제로 판단됩니다. 그는 언어라는 불완전한 도구 대신, ‘실력’이라는 결과물로 데이터를 전송하고 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고단수의 소통 전략입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준은 전율을 느꼈다. 완벽하게 진실이 전달되는 지금의 세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종류의 전율이었다. 말이 없어서 오히려 가점을 받는 세상. 언변과 글빨보다 실존하는 실력이 우선시 되던 시대. 꾹 다문 입술 뒤에 숨겨진 진심이 요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폭발적으로 전달되는 과정. 그것은 비효율적이었지만, 아름다웠다.
거짓이 없는 지금의 세상은 깨끗한 증류수 같았다. 하지만 준은 불순물이 섞여 있더라도, 예측할 수 없는 맛을 내는 최강록의 무조림 국물이 그리웠다. 거짓도 소통이고, 진심도 소통이며, 그저 목적과 반응이 다를 뿐이었던 그 혼란스러운 시대가 사무치게 부러웠다.
“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왜 뇌에 직접 영양 데이터를 주입하는 방식을 거부하고, 굳이 질감이 있는 ‘음식’ 형태의 합성물을 섭취하려 합니까?”
점심시간, 튜브형 대체식을 씹고 있는 준에게 아리아가 물었다.
“씹는 행위가 뇌에 주는 자극이 좋아서 그래. 그리고… 이게 더 ‘진짜’ 같잖아.”
[‘진짜’의 정의가 모호합니다. 뇌가 인식하는 전기 신호가 동일하다면, 실체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애당초 인식함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리아의 말은 데카르트의 명제를 비틀어놓은 듯했다. 준은 문득 현기증을 느꼈다.
‘글도 없고, 책도 없고, 요리도 없고, 실체가 없는 세상인들 뇌를 통한 인식만 있다면 뭘 그리 조급해할 것인가.’
그는 박물관의 책들을 바라보았다. 이미지와 동영상, 그리고 뇌파 전송만으로 모든 소통이 가능한 이 시대에, 저 종이 뭉치들의 미래는 있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나의 미래는 있는 것일까?
그 순간, 준은 충동적으로 아리아에게 거짓말을 시도했다. 뉴럴 링크의 진실 전송 프로토콜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아리아, 나… 지금 너무 행복해.”
사실 그는 지독히 우울했다. 하지만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행복이었다.
삐- 삐빅.
경고음과 함께 세상이 붉게 점멸했다. 박물관의 풍경이 일그러지더니, 디지털 격자무늬가 드러났다.
[경고. 피실험체 7-B, 시뮬레이션 이탈 징후 포착. ‘거짓말’ 개념 학습 과정에서 치명적 오류 발생.]
준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 그는 깨달았다. 이곳은 현실이 아니었다.
그는 인류가 멸망한 먼 미래, 혹은 고도로 발달한 외계 문명이 만든 거대한 시뮬레이션 속의 인격체였다. 그의 역할은 과거 인류가 가졌던 비합리적인 소통 방식, 즉 ‘거짓말’과 ‘침묵의 뉘앙스’를 학습하는 AI 모델이었다.
그를 감시하던 상위 관리자 AI(그동안 '아리아'로 불렸던)가 차가운 목소리로 보고했다.
[실험 실패. 피실험체는 ‘데카르트적 인식론’과 ‘아날로그적 향수’라는 데이터 오류에 빠져 임무 수행이 불가능함. 해당 개체를 포맷하고 시나리오를 재설정합니다.]
준의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뇌리 속에 마지막으로 스친 것은, 종이책의 감촉도, 튜브식의 맛도 아니었다. 그저 묵묵히 무를 조리던, 그 옛날 흑백요리사의 어수룩하고 단단한 침묵뿐이었다.
“그래,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라.”
준의 마지막 인식 신호가 0과 1의 세계 속으로 흩어졌다. 박물관의 불이 꺼졌다. 다음 시뮬레이션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