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에게

by 수요일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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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해밀턴 호텔 뒷골목을 걸을 때면, 나는 습관처럼 그 언덕배기 어딘가를 올려다보곤 한다. 헨리(Henry). 그가 아직 그곳에 살고 있는지, 여전히 살아는 있는지 알 길은 없다. 그저 내 기억 속의 그는 항상 그 언덕 위, 낡은 빌라의 창가에서 푸른 눈을 깜빡이며 서 있다.


그와 나의 인연은 회사 회의실에서 시작되었다. 외국계 투자 기업이었던 우리 회사는 직원 복지 차원에서 원어민 영어 강사를 초빙했고, 그가 바로 헨리였다. 일주일에 두 번, 점심시간 전후로 한 시간씩 할애된 수업이었다.

"Hello, everyone. I'm Henry."

첫 수업, 그의 자기소개는 간결했다. 40여 년 전, 거제도의 조선소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한국과 첫 연을 맺었다고 했다. 그때 만난 한국 여자와 결혼했었다는 짧은 과거사도 덤덤하게 털어놓았다. '했었다'는 과거형 시제에서 나는 그의 현재가 혼자임을 짐작했다.

처음의 의욕과 달리 수강생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공짜 점심시간을 쪼개어 듣는 영어 수업보다, 직원들에게는 잠깐의 쪽잠이나 동료와의 수다가 더 절실했을 것이다. 결국 1년 반 만에 사내 강의는 폐강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끈을 놓기 아쉬웠다. 왠지 모를 끌림으로 나는 개인 비용을 지불하고 그를 가정교사로 고용했다.

그렇게 또 일 년, 일주일에 두 번씩 우리는 마주 앉았다. 그는 몇 권의 교재를 추천했지만, 나는 틀에 박힌 문법 공부가 지긋지긋했다.

"헨리, 그냥 사는 이야기나 하죠. 프리토킹으로."

나의 제안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동의했다. 사실 ‘프리토킹’이란 미명 아래, 나는 늘지 않는 영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만 겨우 극복하는 수준이었다. 우리는 더듬거리는 영어와 서툰 한국어를 섞어가며 정치, 경제, 문화를 논했다.


그는 뼛속까지 공화당원이었다. 흔하디 흔한 미국식 이름인 '헨리' 뒤에 붙는 그의 성(姓)은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어딘가 게르만이나 유대계의 뿌리가 느껴지는, 유럽 구대륙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성씨였다. 하지만 그의 사고방식은 가장 보수적인 미국인의 전형이었다.

"링컨과 오바마는 미국의 치명적인 실수였어."

푸른 눈을 번뜩이며 그가 단호하게 말할 때면, 나는 당혹감에 말문이 막히곤 했다. 그 견고한 정치적 신념 앞에서는 어떤 어설픈 반박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늙어가고 있었다. 젊은 시절, 거제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소주와 삼겹살을 즐겼다던 호탕한 엔지니어는 온데간데없었다. 언젠가부터 그는 건강을 이유로 고기를 멀리했다. 그와 함께하는 식사는 늘 풀내음 가득한 샐러드나 담백한 생선 요리뿐이었다. 접시 위의 풀을 씹는 그의 모습은, 거대한 초식동물이 쓸쓸히 풀을 뜯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와의 수업이 끝난 후에도 우리는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 주변에 영어 공부가 절실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뜸해진 지 오래다.


계산을 해보니 그는 이제 여든 줄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 벽안의 노인에게 지난 40여 년간 머문 한국은 어떤 의미로 각인되어 있을까. 공화당을 그토록 사랑하는 그가, 왜 혈육 하나 없는 이 낯선 땅 이태원 언덕에서 고집스럽게 혼자 늙어가는 것을 택했을까.

혹시 그에게도 돌아갈 고향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의 선조가 유럽을 떠나 신대륙으로 건너왔듯, 그 역시 태평양을 건너와 이곳에 정박해 버린 영원한 이방인은 아닐까. 늙고 병든 몸으로 맞이할 마지막 순간, 누가 그의 곁을 지켜줄 것인가.

지금 다시 그를 만난다면, 예전처럼 되지도 않는 영어로 미국의 정치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그의 주름진 손을 잡고 묻고 싶다.


"헨리, 당신의 남은 항로는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사실 그 질문은 이정표를 잃은 채 부유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했다. 이태원의 밤거리가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물들어갈수록, 언덕 위 어딘가에 있을 그의 낡은 창문이 더욱 어둡고 깊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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