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구석, 가장 손이 닿지 않는 높이의 책장에 그 책이 꽂혀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 『푸코의 진자』.
손을 뻗어 책을 꺼내자 회색 먼지가 부옇게 일어났다. 콜록거리며 책 등을 쓸어내렸다. 23년이라는 세월은 종이의 가장자리를 누렇게 태우고, 빳빳했던 표지에 잔주름을 만들어 놓았다. 삼십 대 언저리에 살 무렵, 지적 허영심에 들떠 샀던 책이었다. 당시 나는 이 두꺼운 양장본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뭔가 심오한 진리에 다가선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허영심의 유효기간은 짧았다. 정확히 3장(章)까지였다.
나는 먼지 묻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23년 만에 다시 첫 장을 펼쳤다.
역시나, 에코는 불친절했다. 기호학자이자 소설가, 철학자이며 능글맞은 풍자가였던 그는 첫 페이지부터 독자를 시험에 들게 했다. 알지도 못하는 중세의 역사적 사실들이 툭툭 튀어나왔고, 난해한 라틴어 범례들은 독서의 속도방지턱처럼 시시때때로 나타나 흐름을 끊어놓았다.
보통의 소설이나 드라마는 이렇지 않다. 플롯은 심플하다. 사건이 터지고, 주인공이 고군분투하고, 속 시원한 결말(혹은 찝찝한 열린 결말)로 치닫는다. 사랑과 배신, 복수와 돈이 오가는 뻔한 구성. 우리는 그 익숙한 서사의 롤러코스터 위에서 안전하게 감정을 소비한다.
하지만 에코는 달랐다. 그는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수도사들이 웃는 것을 막기 위해 살인까지 불사하는 종교적 확고함을 그려냈던 위인이 아니던가. 그는 쉽게 읽히는 것을 경멸하는 듯했다.
20여 년 전의 나는 이 책의 앞부분 3장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패배했다. 그때 나는 이 책을 소설, 즉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치 거대한 백과사전이나 암호문처럼 대했다. 모든 단어의 뜻을 알아야 하고, 모든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다음 장으로 넘어갈 자격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러니 진도가 나갈 리 만무했다.
"기호란다, 기호."
누렇게 바랜 책장을 만지작거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 와서야 에코가 말장난처럼 늘어놓은 이 난해 함들이 하나의 거대한 ‘기호 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독하려 들지 말고, 그가 펼쳐놓은 기호의 숲을 그저 거닐어보면 어떨까. 어쩌면 이번에는 3장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에서 잠시 눈을 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호. 문득 우리의 삶도 에코의 소설만큼이나 난해한 기호들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감성이나 감정을 우리가 알고 있는 기호, 즉 ‘언어’ 이외의 수단으로는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가끔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거나, 반대로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복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딱히 무엇이라 규정할 단어를 찾지 못하면, 우리는 그 감정을 '없는 것' 취급하거나 그저 "대략 난감하다"는 뭉뚱그린 표현으로 덮어버린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나는 종종 나의 일천한 단어 실력을 탓하곤 했다. 내 안의 복잡 미묘한 우울감을 표현할 단어가 '우울하다'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언어가 만능은 아니다. 때로는 묵묵히 건네는 따뜻한 밥 한 끼나, 말없이 잡아주는 손길에서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깊은 정성이나 사랑이 전해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시기나 질투, 원망이나 애증처럼 끈적하고 복합적인 감정들은 언어라는 깔끔한 기호로 포장되는 순간 오히려 그 본질이 왜곡되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들은 종종 답답하다는 듯 외친다.
"말을 하지 않는데 그 속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아?"
그 대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얼마나 기호에 사로잡힌 존재들인가. 말(기호)로 내뱉어져야만 비로소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기호의 감옥에 갇힌 수인들.
에코는 어쩌면 그것을 비웃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언어라는 기호로 쌓아 올린 거대한 탑(그의 소설)을 보여주며, 동시에 기호가 가진 허망함과 한계를 풍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다시 『푸코의 진자』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라틴어는 까막눈이고 중세 역사는 안갯속이다. 하지만 23년 전보다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이 난해한 기호의 미로 속으로 발을 들여놓기로 했다. 내가 나의 복잡한 감정을 다 설명할 수 없듯, 이 책 또한 다 이해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저 읽는 행위, 그 기호 작용 속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