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구름에 달 가듯이

by 수요일엔 비
흩어진 나그네.jpg 석양

나그네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좋았다.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 삶, 내가 다니던 단과대는 버스정류장에서 20여분 이상을 걸어야 하는 산자락 아래였다. 그 먼 길을 매일 걸어 다니느니 정류장 앞에 있던 목로주점에서 조반 겸 반주로 막걸리 한 병 받아 놓고, 신김치에 후다닥 하고 나면 하늘도 교정도 렌즈를 바꿔 끼어 놓은 듯 세상의 사물이 여유롭게 다가왔다.


구로구에서 금천구로 분구된 독산동 시절을 끝내고 압구정동으로 이사한 촌놈은 오렌지도 잘 모르는데, 사실 최근까지 레몬과 오렌지의 구별도 어려운 탓에, 압구정 오렌지족이란 단어는 생소한 과일만큼이나 낯선 문화였다. Culture shock


모퉁이집은 우리들의 서식처였다. 독산동 언덕배기 모퉁이 호프집은 참새방앗간이었다. 외상장부를 놓고서 매월말이 되면 그나마 접대비가 여유가 있던 부장님으로부터 하사금을 받아서 매달의 알코올 정산을 하곤 했다. 부서 모임을 하다 보면 옆부서도 오고 그러다 보면 귀가는 항상 늦었고 구름에 달 가듯이 나그네처럼 훠이훠이 귀가하곤 했다.


압구정은 언감생심, 외상이 통용되는 신용사회가 아니었다. 너의 신용은 오로지 네가 지닌 신용카드의 한도만큼이다라는 철칙만이 먹어주는 엄격한 사회였다. 90년대 중반 신용카드가 서서히 활성화되던 시기고 LG카드가 모객 1위를 캐치프레이즈로 무자격자들에게까지 신용카드를 남발하던 시절이라, 너와 나의 신용은 날로 쌓여만 갔다.


서울나그네, 대개는 지방에서 서울로, 서울 토박이보다는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시골 출신 중 한 명인 나 – 난 부산이 고향이다, 그런데 서울 사람들은 부산을 시골이라고 한다. 서울의 변두리는 부산의 변두리보다 훨씬 낙후된 곳이 많다. 일확천금은 아니더라도 재화가 몰려든 서울에서의 기회가 많기 때문에 시골에서 저마다의 터전을 서울 변두리로부터 얻을 수밖에 없기에 난개발 지역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서울이 좋단다. 지방에서 서울로 발령받으면 영전이기에 주택자금 지원도 없다. 서울에서 지방으로의 근무는 격오지 근무라 주택지원금이 있다. 아이러니다. 집값은 서울이 훨씬 높다. 영전인지는 모르겠으나 삶의 질은 급전직하다.


서울나그네, 토박이가 아닌 이상 객지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서울의 변두리나 안양, 성남, 부평, 의정부 등이 그들의 서울 삶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양복이 가장 편한 유니폼이었다. 같은 옷이라도 넥타이와 셔츠를 바꿔 입으면 분위기도 바뀌고, 요즘 자율복장은 매일매일이 선택의 연속이다.


서울나그네라는 술집을 압구정 뒷골목에서 발견했다. 독산동 모퉁이만큼 푸근하지 않아도 갤러리아백화점 건너편 로데오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하거나 때로는 촌스러운 가게였다. 천성이 나그네였던 탓에 그 상호명은 묘하게 나를 불렀고, 파전이나 막걸리 등도 파는 가게였고 당시에는 칵테일과 닭머리 패션이 난무하던 시절이라 쉰내 나는 그 가게는 서양의 오렌지들이 범접하지 않았기에 거나하게 취할 수 있었다. 조선의 사과는 그렇게 빨갛게 익어갔다.


수중전골 등 해물 위주의 안주에 익숙한 갯가 출신이라 비린 해물에 익숙했던 나는 거기서 닭발도 빨고 오도독뼈도 씹었다. 상사도 물어뜯고 선배에게 대들기도 하면서 고단한 서울의 밤들을 보냈다. 감자탕에 쓰린 속을 달래기도 하면서. 감자는 근데 도대체 뭔가 학설이 난무하다. 다수의 지혜를 모으거나 헌법재판소의 정의가 필요하다. 감자를 넣어서 감자탕이라는 촌놈부터 거기 넣는 돼지뼈가 감자라고 한다는 서울 놈까지.


그날도 서울나그네였다. 늦은 밤 조선일보에 전화했다, 올림픽인지 뭔지 운동경기의 결과에 대해서 여야처럼 날 선 대결을 했다. 인터넷이니 뭐니 하는 정보를 구하기 쉽지 않은 시절이라, 요즘은 다른 말을 못 한다. 그때는 똑똑한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똑똑함의 기준이 많이 다른 듯하다. 잠에 취한 듯 조선일보 당직기자가 받았다.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고 나서 화를 냈다. 술 드셨냐고. 그랬다. 우리는 진실을 알고 싶다고. 하지만 민족일간지 조선일보 기자는 자기도 찾아봐야 한단다. 그날의 정쟁은 무승부였다. 끝내 진실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나그네에서 나그네들은 구름에 달 가듯이 무르익어갔다.


후일담 한 가지, 대학시절 친구랑 내기를 했었다. 연이은 음주를 며칠까지 할 건지, 난 57일 만에 그만뒀다. 60일을 넘긴 친구는 직장을 주류회사로 갔다. 멋진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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