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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슝이모 Nov 07. 2022

보고 싶었어, 얘들아!

여기는 태국 고등학교. 2학기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2학기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방학 후 첫 수업을 하기 위해 교실로 향하던 그때의 마음이 어땠는가 하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연인을 만나러 가는 설렘과 흡사했다고나 할까.

심장박동이 묘하게 빨라지고 마음이 일렁거렸다.

마음이 한 달 이상 보지 못한 학생들을 다시 만난다는 반가움이 이렇게 클 줄이야.



다양한 특성을 가진 여섯 개의 반을 가르치다 보니 감정의 들쭉임이 심한 이 새내기 교사는

감정 처리가 미숙해서인지 한번 더 보고 싶은 반이 있고, 들어가기가 꺼려지는 반도 있는데

방학 후가 되니 감정이 초기화가 되었나.

모든 반이 다 반갑다.     



나를 여전히 내외하는 반, 친구 같은 반, 얌전한 반, 극성스러운 반 등등 반마다 고유한 특성들이 있다.

그 특성의 발현은 2학기 첫 시간에도 확연히 달랐다.


내가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갔을 때의 반응.

나와 내외하는 반은 내가 교실에 등장해도 하던 수다를 마저 떨고 자던 잠 계속 자고 보던 유튜브를 계속 청취한다.

극성스러운 반은 “꺄약!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라며 소리치고 환호하며 일어나서 두 손을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친구 같은 반은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선생님, 까매졌어요. 어디 갔었어요?”라며 다정하게 물어본다.

얌전한 반은 내 등장에 그저 더 조용해진다.     


너희가 어떤 반응이든지 간에 나는 너희들이 너무너무 반갑구나.     


2학기 수업 첫 시간은 여섯 개 반 모두 바로 공부에 들어가지 않고 워밍업 활동을 했다.     

이름 꾸미기.

한글 이름을 예쁘게 꾸민 후 공책에 붙이도록 했다.

이 활동에는 한국어를 공부할 때마다 자신이 예쁘게 꾸민 이름을 보면서 한국어 공부할 맛이 나기를 바라는 교사의 작은 바람이 담겼다.      


음.

방학동안 그새 한글을 까먹었구나 얘들아.

여전히 자기 한글 이름이 낯선 학생들이 있다.

이름꾸미기 하는 종이 위에서 승희는 승히가 되고 연화는 연하가 되고 소아는 소마가 되어 있었다.

공책 맨 앞에 써놓은 낙서가 자기 이름이라 생각하고 그걸 적는 학생도 있다.

모음과 자음이 서로 자리를 바꿔 쓰여있거나 받침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외떨어져 있는 이름을 보니 아찔하기까지 하다.     

'아직 한글 못 깨친 학생들이 이리 많으니 어쩐담.'

초초한 마음이 되었다가, 다시 생각을 고쳤다.

학생들을 기다려주자고.     



언젠가 선배 한국어교원에게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몇 개월간 한글 자모만 가르쳤는데도 여전히 자모를 못 읽는 학생이 많아서 고민이에요. 태국 학생들, 너무 공부를 안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자 선배 교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음, 장 선생님, 난 이렇게 생각해요. 학생들이 공부에 흥미가 없거나 몇 개월이 지나도 별반 발전하는 모습이 안 보인다면 일차적으로 그 책임은 가르치는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장 선생님만이 아니라 다른 교원들도 그리고 저도 그런 고민을 많이 하지요. 왜 태국 학교 학생들은 이토록 공부를 안 할까. 그런데요, 그렇게 학생들을 탓한다고 바뀌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 원망할 시간에 내 수업 방식을 고민해보기로 내 생각을 바꿨어요. 그리고 정말로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도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지켜보게도 되었고요."     


그 선배 교원의 말은 내게 큰 교훈으로 남았다.

애들이 발전하지 않는 이유에는 일차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그 말이 특히 뇌리에 박혔다.   

수업이 재미없고, 교사의 가르치는 방식에 흥미로울 것이 전혀 없는데, 가뜩이나 배우고 싶은 학문도 아닌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 학생들 처지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의욕이 생기겠는가.     

그 선배와의 대화 이후 나는 학생들 탓하기 전에 내 수업 방식을 살펴보고 더 고민해보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려 노력 중이다.

자고로 남탓은 쉽고 내탓은 억울한 법이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 없더라.

내 생각을 바꾸는게 정답 아닐까.


”선생님! 이거 어때요? 예뻐요? “

”선생님! 선생님! “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을 내게 직접 듣고 싶었는지

여기저기에서 선생님을 불러 댔다.

참새가 짹짹거리듯 ‘선생님, 선생님’ 부르는 그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들려왔다.     


학생들이 직접 꾸민 그림들처럼 알록달록 채색될 2학기가 이렇게 활기차게 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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