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두 아이를 부양, 180CM 117KG 직장인
주담대없는 40평, 25년차, 집 있고, 차있고, 아내와 두 아이를 부양, 180CM 117KG 직장인
직장은 유통기한이 존재한다. 정년은 사라졌고 회사에서 희망퇴직으로 각종 유통기한을 단축시키고 있다. 예전에는 통조림으로 영구보존도 가능했지만. 현재는 한번 들어오면, 30, 40.50대 모두,.. 오늘이 지나면, 할인택이 붙는 언제 폐기될지 모를 신선식품이 되었다.
N사(유통회사)(유통회사)의 분위기는 여전히 지옥 같았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되는 회의와 밤새 울리는 카톡의 업무지시와 보고, 1이 지워지지 않고 대답하지 않는 사람은 그 다음날 바로 갈굼당하는 문화, 대형 마트에서 경력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12시간영업하는 곳에서도 힘들었는데, 온라인이 24시간 영업을 하면서 사건 사고가 24시간 터져서, 업무시간이 24시간이라고 한다.
“여기가 이런 곳이었지” 잊고 살았었다. 그래도 2년간 경험하면서 뿌리내렸던 여기가 옮겼던 W사보다는 나았다. 매시간 마다 보고해야 하는 실시간 매출, 매일 돌아가면서 해야 하는 전단행사 및 타임 할인, 행사 와중에 챙겨야 하는 이익률, 이익을 따져야 했다. 전년대비도 아니고, 전월대비 성장을 이루지 못하면, 병신 취급 당하는 이곳에 다시 왔다. 회사를 옮기기로 결심한 것도 이렇게 일할 바에는 스톱옵션이라도 받고, W 회사가 상장되면, 로또라도 당첨된 것처럼 큰 돈, 은퇴 자금으로 챙기고 싶었다. W온라인 영업본부장으로 갔지만, 나보다 훨씬 어린, 미국에서 대학물 먹은 사장과 일하기는 싶지 않았다.
“스톱옵션 받기 드럽게 힘드네, 이렇게 하루 종일 욕먹고, 되지도 않는 일로, 내 건강도, 내 인내도, 내정신도 맨붕이 오는 거 같았다.” 그 꿈은 허무한 도전이 되었다. 퇴직금을 받기 위해서 몇 달은 버티고 싶었지만, 도저히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특히, 자존감이 무너지는 거 같았다. 내가 왕년에 얼마나 잘나가던 사람이었는데..라는 생각만 들뿐이다. 50중반이 내 나이에 갈 곳이 있을까? 지금은 30, 40대도 희망퇴직을 받고, 50대 인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아직도 중학생, 고등학생인 딸과 아들이 있는데. 편의점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택배. 무릎도 아픈데. 내가 그래도 연봉 1억이야.
3번의 이직으로 연봉 1억을 달성, 월 수령액은 680만원. 초봉이 150만원 넘었고, 주 5일근무를 했던 그 시절에서, 20년이 지난, 난난난 난 현재 6배의 월봉을 받고 있다. 50대 평균 연봉 6000만원이라고 하던데, 그들보다, 4000만원정도 더 벌고 있으니, 이 정도면 성공 한 거 아닐까? 근데, 지속성이다. 많으면 많은 돈이지만, 내 남은 인생, 내 식구들이 현재 수준으로 살수 있을 만큼 여유롭고 저축을 할 수 있는 돈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한참 돈 많이 들어갈 중 N사(유통회사)에서는 돈 버는 만큼 일을 했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서울은 아니지만, 살기 좋은 아파트가 모여 있는 하남에 자리 잡았고, 시세 11억(5호선 전철도 뚫렸다)하는 40평 아파트 한 채와 신형 풀옵션 캘리그래피 블랙익스테리어 그랜저를 가지고 있다. 이 집도 사실, 15년전에 아내가 이제는 전세 싫고, 이사 가기도 싫다면서, 아파트를 사야 한다면서 동네 아줌마들하고 놀러 간 미분양을 덜컥 계약을 한 거다. 계약금이 500백만원이었고, 당시, 4억 분양가 아파트였다. 지금 와서는 시세차익 7 억으로 괜찮은 투자였다. 심지어 이런 생각도 한다. ‘그때 한 채를 더 샀어야 하는 건데. 지금 생각에는 아들 딸 한채 씩 물려줄 생각으로 2채를 더 살수도 있을 거 같다.’ 근데 그때 그런 배포가 있었을까? 투자도 다 배포가 있어야 한다.
하남 아파트를 계약한 당일, 아내와 대판을 했다. 그날은 회사에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도 안 나지만, 스트레스를 엄청 받고 온 날이었다.
“미분양 되는 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우리한테까지 기회가 올 거 같어.” 하면서 있는 있는 신경질 없는 신경질을 다 냈다.
결혼 전 2년정도 직장생활을 한 후, 생전 큰돈을 모아 본적도 없던, 아내도 자기가 무슨 정신에 모델하우스를 가서, 혹해서 계약을 하고 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빌라전세 2억을 살고 있는데, 계속 집주인이 전세금을 5000만원을 갑자기 올려 달라는 게 화근이 되었다. 난 회사 전세자금 대출과 은행의 전세자금 대출을 알아보고 있었고, 수중에 가지고 있는 알토랑 같이 모았던 2000만원있었고 그나마 이율이 낮은 회사 대출로 1000만원, 나머지 1000만원은 은행대출로 할려고 했다. 이렇게 회사근무를 하면서, 수시로 전화를 하면서 알아보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집, 빌라도 아니고 아파트를 미분양 계약을 해 온 거다.
“거기 버스도 없고, 신도시라서 교통도 안 좋고, 난 그럼 출퇴근을 하남에서 버스 타고 잠실이나 천호로 나와서 또 갈아타고. 영등포가 회사인데, 도대체 출퇴근에 왕복 4시간을 쓰라고 하는거야. 어떻게 다니라고 하는 거야.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아무리 세상물정 모르고 살림만 했다고 해도, 내가 당장 2억이 어디 있어? 당신이 돈 있어? 친정에서 도와준대?”
“그게 중도금대출도 되고, 잔금도…….” 울먹이면서 말하던 아내, 자신의 아킬레스건, 도와주지 못할 친정얘기를 하자마자, 그만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거래처였던 회사의 사무보조를 보던 아내는 항상 내가 가면 믹스커피를 내주곤 했다. 이후에 알게 되었지만, 나만 주는 게 아니었다. 커피를 내오는 문화가 없었던 첫 직장에서, 이쁘지는 않지만 풋풋한 아가씨가 달달한 믹스커피를 내 주는 건, 그 동안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나에게는 ‘내가 좀 멋있어 보이나, 나도 결혼할 때가 되었나.’ 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었다.
내가 좋아라 하는 것을 눈치 챈 아내의 상사였던 하청업체과장은 나와 소개팅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같이 저녁과 술을 먹고, 의정부 끝자락에 사는 아내를 택시로 데려다 주었다. 택시를 잠깐 세우라면서, 근처 편의점을 들려서, 차가운 여명과 따뜻한 꿀음료, 사탕을 사다가 손에 꼬옥 쥐어줬다.
“술 드시고 담날에 속이 아플까봐요” 하면서 소리 없이 활짝 웃는 모습이 참 이뻤다.
회사에서 대졸이라고, 언어 연수도 갔다 오고, 해외에서 좋은 대학 나왔다고 싸가지 없고, 꼬박꼬박 대드는 여자들보다가, 아내의 숫기 없이 해맑게 웃는 모습은 너무나 참해 보였고 나의 뒷바라지를 잘 하고, 내가 가정을 꾸려도 별탈이 없을 거 같았다.
집안 사정도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던 장인 어른댁에서는 결혼준비도 별로 못해주셨고, 예단도 100만원을 주셨다. 그리고, 딸년 여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래도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면서, 어떻게 알아주는 튼튼한 외국계 칫솔 회사를 다니는 남자를 꼬셔나면, 내가 있는 데서, 자기 딸을 무시를 했다. 그렇게 듣고 자라선지, 그 말에도 그렇게 화도 내지도 않고 오히려 칭찬으로 받아 들였던 거 같았다. 아내는 2년정도 다니던 회사의 받던 월급을 모아서 혼수 준비를 하고, 결혼하자 마자 일을 관두었다.
집 분양을 덜컥 하고 온 후, 가장 좋은 점은 아내가 그래도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아침에 맡긴 후에 남는 시간에 돈을 벌기 시작 한거다. 마트 캐셔부터, 빵집/반찬가게 포장 알바, 마트 시식코너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제야 좀 돈의 크기, 경제관념이 생기는 거 같다. 자신이 저지른 분양에 갚아야 할 2억이라는 돈의 크기를, 마트에서 하루 종일 서서 캐셔를 하면서 얼마를 모아야지 가능하고, 반찬 포장을 얼마나 해야지 되는 돈이라는 것을, 이제 좀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하는 걸까? 이 남편이 나가서 하루 종일 고생을 하고, 비위 맞추가면서 벌어다 주는 그 달콤함을. 자동이체로 매달 항상 들어오는 돈이 아니, 자기가 벌어서 쓰는 돈의 소중함을 좀 알까?
분양 받아서 새집으로 이사 오면서, 그리고, 주변 환경이 개선되고, 집값이 하루 자고 나면 1000만원이 오르고, 전철 개통이 되면서 몇 억이 오르자, 아내의 입지는 변했다. 그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회 물을 먹고, 돈을 벌면서 좀 기가 세졌다고 하나, 이제는 내가 머라고 해도 눈물은 커녕 귀퉁도 안듣다.
“당신이 머를 알어? 회사만 다녔지. 그때 이 집 안 샀으면 우리가 어디 살수 있었겠어. 빌라에서 전전긍긍하면서, 돌아다녔겠지. 영등포 근처, 거기 아직도 구도시라서 여기같이 애들 키우기 좋은 환경이 되지도 못하고, 여긴, 한강도 가깝지, 공원도 조성이 잘되었지. 아파트 대 단지고 새아파트라서 다들 맞벌이, 내 알바 하기도 싶고, 아파트 단지애들 등하원시키고 밥챙겨 먹이면 월 150~200은 벌잖아. 그러니, 애들 학원비 200~300만원, 애들 사달라고 하는거 실컷 사주지. 솔직히 실컷은 못되지 그냥 유지”
“당신 먹고 산 거, 그동안 생활비, 대출금 누가 다 갚았는데, 알았어, 알았어. 자기가 잘해서 여기까지 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