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파랑새를 찾다가 길을 잃다

PUENTE LA REINA ~ ESTELLA, 6th Day

by 이작


어제 들어왔던 이 도시,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는 ‘여왕의 다리’로 유명한 곳이다. 이 다리는11세기 여왕의 지시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여왕의 다리’라고 하며 이 마을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마을을 빠져나갈 때 어차피 이 다리를 지나야 해서 일부러 찾을 필요는 없었다.


안정감 있는 구도를 가진 이 유명한 다리를 보기 위해 조금 늦게 출발 했다. 다리를 건너 마을을 뒤돌아 보는 화면의 구도가 오래된 건물들과 잘 어울리며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마침 태양이 건물 위에 걸쳐지자 하늘과 산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몇 시간만 있으면 다시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뜨겁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참 아름답다. 풍경뿐 아니라 마음 속까지 뚫고 들어오는 빛이 느껴 졌다. 답답했던 마음에 어느새 붉은 빛이 깊게 들어와 있었다.

2nd_10.jpg





처음 도착한 마을에서 카페콘레체(Café con leche)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하지만 안내책자마다 극찬을 아끼지 않는 그 맛이 궁금했다. 난 순수한 커피에 다른 것들을 첨가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냥 커피의 그 쓴 맛과 향이 좋다. 내게 좋은 커피는 좋은 양주와 닮아 있어서 그 향기롭고 부드러운 목 넘김을 잊을 수 없다. 커피에 우유나 설탕, 심지어는 한여름에 얼음을 넣는 것도 싫어한다. 단순하지만 그 맛은 가장 아름답다. 하나의 맛인듯 싶지만 내 감정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그 매력에 끝없이 빠져들어 이외의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수십 가지 감정으로 가득 찬 마음 때문인지, 새로운 맛을 느끼고 싶었다. 간단한 식사를 위해 의자에 걸터앉아 카페 콘 레체를 주문하고 바게트 빵과 하몽을 꺼냈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보니 커피에 우유를 부어서 내는 카페라떼였다.


찻잔 옆의 각설탕 두 개를 모두 넣었다. 오랜만에 보는 녀석들이다. 각설탕이 무너져 커피에 녹아 들어가며 철없던 학생시절 커피의 멋을 따라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티스푼에 각설탕을 올려 놓고 술을 부어 불을 붙인 후 그 모습을 멋있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불의 신비로움 때문인지 아주 오래 전부터 불에 대한, 정형적이지 않은 존재에 경외심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듯싶다. 내 존재의 탐구에서 비롯된 것 같은 신비로운, 정형화 되지 않은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설탕이 다 녹을 때를 기다려 한 모금을 마셨다. 달콤하다. 많이 움직여서 인지 지금은 이 달콤함 자체가 좋았다. 더 이상 나를 복잡하게 하지도, 질리게 하지도 않았고 단지 이 느낌 하나면 충분했다.






건기인 요즘은 뜨거운 태양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따라다닌다. 그늘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이 곳에서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산을 넘고 밀밭을 지나 ‘별’이라는 뜻을 가진 에스테야(Estella)에 이르렀다. 마을 입구에서 그늘을 찾아 쉬고 있을 때 역시 윤식씨가 나타났고, 남아있는 과일을 함께 먹고 에스테야로 들어섰다.

2nd_22.jpg


진입로의 좁은 강을 지나 마을외곽 골목 안에 알베르게가 있었다. 짐을 풀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카메라를 들고 마을로 나선다. 광장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스페인인지라 역시 시내로 들어서니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광장의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난 그 옆을 지나 시내를 돌았다.


다른 마을과는 다르게 사람들도 많고 복잡하다.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각종 과일과 빵등을 사고 중국인이 운영하는 잡화점 몇 군데도 들렀다.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돌아가기 위해 알베르게 쪽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한참을 걸어도 아는길이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마을의 끝에까지 다다랐다. 마침 주변에 호텔 건물들이 있었고 그 중 제일 큰 곳으로 들어가 길을 물었다.


숙소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길이 없어서 오늘 걸었던 길을 반쯤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허탈하게 돌아오는 길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항상 그랬다. 목적지의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짐을 풀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몽유병 환자처럼 무턱대고 걸어 다닌다. 상점에 들어가 물건들을 보고, 사람들을 보며 이게 아니라는 듯 다시 돌아 나온다. 그냥 오늘을 숙소에서 마무리 하려면 아쉬움이 남았고 그것을 채워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새로운 마을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느끼고 만지고 보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거실에 앉아 아무 목적 없이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던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만날 수 없는 파랑새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한, 소문만 무성한 그 파랑새. 숙소로 돌아오는 내 손에는 어김없이 과일 몇 가지와 내일을 살기 위한 음식이 들려있을 뿐이다. 아쉬움과 절망이 다시 느껴 진다.



난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