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ELLA ~ LOS ARCOS, 7th Day
오늘은 떠나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걸어야 할 거리가 산길로 23킬로미터였고 중간마을부터 다음 마을까지는 약 12킬로미터나 된다. 그 사이에는 물을 채울 수 있는 작은 마을조차 없다. 어제까지 며칠간은 조금 늦게 출발 했었지만 오늘은 아침 일찍 길을 나선다.
약 2시간 만에 다다른 곳은 포도주로 유명한 이라체(Irache)지역 이었다. 사실 포도주로 유명하다기 보다는 포도주가 나오는 수도꼭지로 순례자들에게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서는 순례길 옆 포도주 회사에서 제공하는 수도꼭지 두 개를 볼 수 있다. 아침 8시부터 운영되며 하나는 포도주, 다른 하나는 물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난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애매한 시간에 그 장소에 도착해 버렸다. 물이건 포도주건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보통 까미노에서 순례자 메뉴를 주문하면 기본적으로 비노(VINO; 포도주)가 포함되어 나온다. 한 명이 주문 하더라도 한 병을 통째로 가져와 부담스럽게 바로 앞에서 병을 딴다.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같은 가격에 백포도주와 적포도주를 모두 주문한 적도 있다. 순례자 메뉴는 보통 10유로 정도이지만, 도시에서는 보통 싼 음식 한 가지를 주문해도 20유로가까이 지불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훨씬 싼 가격인데도 불구하고 그 메뉴에 포도주 한 병이 포함돼 있다. 그렇다 보니, 그 지역에서 생산된, 상표가 붙어있지 않은 저가의 포도주가 제공된다. 메뉴를 주문할 때마다 이런 포도주를 마시다 보니, 제법 유명하다는 이곳 포도주 맛이 궁금해진다. 혹시나 하고 약간은 떨리는 맘으로 수도꼭지를 돌려보지만 물이건 포도주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잠시 고민하다가 대낮의 뜨거운 태양과 오늘 걸어야 하는 거리가 부담되어 포도주를 포기하고 다음 마을로 향했다.
걷는 중 8시부터 포도주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늦게 알게 되어 다시 되돌아오는 무리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스페인의 태양은 오늘도 역시 버티기 힘들 정도로 뜨겁고 건조하다. 아침 일찍 나섰으나 해가 떠오르자 말로만 듣던 메세타 지역을 미리 느껴 보는 것 같다.
12킬로미터를 걸어 작은 마을을 만났지만 물을 채우고 간단한 식사 후 바로 출발했다. 길의 양쪽으로는 마른 흙과 추수가 끝난 밀밭이 계속 이어졌고, 나무 그늘조차 없는 길이 어지러웠다. 태양이 너무 뜨겁고 눈이 부시다 보니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다 잃어버린 선글라스 생각이 간절하다. 순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이번에 가져온 선글라스는 비상용 렌즈가 포함돼 있는데, 스포츠용렌즈이다보니 렌즈의 양쪽으로 작은 홈이 파여 있었다. 그 비상용 렌즈를 꺼내 노란 고무줄로 엮어서 안경위에 걸쳤다. 완벽했다.
선글라스를 통해 보면 마치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는 느낌 이었고, 어디를 가든 몸으로 직접 느끼고 부딪히는 게 더 좋은 투박한 사람이다 보니 평소에는 선글라스가 있어도 잘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선글라스없이 걷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곤하고 어지러웠다. 고무줄로 엮은 선글라스를 쓰고 얼굴을 비춰 보니 이제서야 차츰 순례자다워 지는 모습이었다.
로스아르코스에 거의 도착 할 무렵, 나무 두 그루가 다정하게 붙어 있는 그늘을 용케 찾아서 오늘 처음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과를 먹으려고 꺼내는데, 멀리서 윤식씨가 손을 흔들며 뛰어온다. 이 사람은 항상 어딘가에 앉아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나타난다. 밝고, 먹을 복도 많은 사람이다. 그늘 아래에서 사과를 나눠 먹으며 수도꼭지 포도주 맛을 봤는지 나에게 묻는다. 시간이 너무 일러서 그냥 왔다고 하니, 자기가 포도주를 받아왔다며 며칠 전 사서 마시던 커다란 요구르트 병을 쑤욱 내민다. 요구르트 병을 비우고 포도주로 채운것이다. 맛이 궁금하던 차에 햇빛에 뜨끈하게 데워진 요구르트 향 포도주를 맛봤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포도주로 품질도 썩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잠시 포도주이야기를 하며 앉아있는 동안 며칠 전 파스타를 나누어 줬던 스페인 가족들이 그늘을 찾으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난 그들을 그늘로 불러 앉히고 윤식씨와 함께 마을로 들어갔다. 뜨겁지만 않았다면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은 구간이다. 산길도, 높은 경사도 없었고 단지 그늘이 없다 보니 쉬어갈 수 없을 따름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시내 구경을 나선다. 커다란 성당도 있고,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이다. 시에스타를 하지 않는 수퍼마켓을 찾아 마을을 한 바퀴 돌았지만 겨우 작은 상점 하나만을 찾았을 뿐이다. 아쉬운 대로 필요한 빵과 과일만 구입하고 돌아오는 길에 헝가리에서 온 마첵트와 함께 걷고있는 그의 여자친구 아냐를 만났다.
아냐는 집에서 매일 10킬로미터씩 조깅을 한다고 한다. 그런 여자친구의 걸음을 따라다니느라 힘들다는 푸념이다. 마첵트와 헤어져 돌아가는 길에 팻 일행과 훌리오가 야외 테이블에 앉아 함께 음료를 마시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합석하게 됐다. 새라와 클레어는 발바닥에 잡혀버린 커다란 물집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었고, 훌리오는 양쪽에서 새라와 클래어가 투덜대고 있으니 사방에서 영어로만 이야기 한다고 머리가 아파 죽겠다며 엄살을 부린다. 항상 같은 대화지만 이곳에 왜 왔는지, 다리는 괜찮은지, 음식은 어떤 게 맛있는지, 이런 평범한 질문들로 시간을 보냈다
숙소에는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좁은 복도를 통해 이어지는 두 방은 마치 병원의 그것처럼 흰색 벽으로 둘러쳐져 있고 나무로 된 바닥은 사람들이 발을 디딜 때 마다 삐걱거린다. 벌써 집을 떠난 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가방은 오히려 음식과 물로 점점 불어나고 있다. 몸이 좀 편해지려면 배낭을 빨리 비워야 하는데, 달리 방법이 없다.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풀고, 싸고를 반복했지만 단 하나도 버린것은 없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들도 아닌데, 내 마음이 잡아두는 것이 많아 그 영향을 몸이 받고 있었다. 누구의 탓을 할 수도 없는 것이, 이것은 온전히 내 선택과 계획으로 이루어진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옆으로 뭔가 후다닥 지나간다. 잘못 봤나 싶었지만 이내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은 오렌지색 바지와 검은 티셔츠를 입은 시커먼 동양 어린아이였다. 이런 곳에 동양 아이라니. 짧은 스포츠 머리에 삐쩍 마르고 영구치가 새로 났는지 커다란 앞니가 도드라졌다. 잠시 후 똑 같은 옷을 입은 아이와 똑 같은 옷을 입은 어른 한 명이 더 나타났다. 이곳에 묵게 된 일본인 조(Joe)와 10살, 11살의 두 아들 라이치와 휴고라고 한다. 셋은 똑 같은 모양의 오렌지색 가라데 코스튬으로 맞춰 입고 이 길을 함께 걷고 있었다.
이들의 등장은 사방에서 힘들다고 투덜거리던 사람들의 입을 동시에 막아버렸다. 아이들이 컨디션만 유지해 준다면 어른들도 힘든 800킬로미터 이상의 이 길을 걸은 후 다른 나라까지 여행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날씨가 너무 덥고 사람이 많아서 걷기 힘들다던 7, 8월의 스페인 여름을, 저렇게 어린 아이들이 즐겁게 도전하고 있는 모습은 참 밝고 당당해 보인다. 특히 오늘은 뜨거운 태양으로 어른 조차도 걷기 힘든 날이었다. 그늘 하나 없는 밀밭을 쉬어갈 마을도 거의 없이 걸어야 했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오늘 길을 걸으며 더위를 좀 먹은 것 같다고 하여 난 반사적으로 가방을 뒤져서 비상용으로 준비해 간 스포츠 음료 가루를 찾아 조에게 건네 주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이야기를 듣고 뛰어와 어디서 배웠는지 한국말로 연신 “고맙습니다.”를 외쳐 댔다. 그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어느새 가슴이 따뜻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