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산티아고의 날, 축제의 날

LOS ARCOS ~ LOGRONO, 8th Day

by 이작


어느덧 걷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첫날 시작된 온 몸의 고통은 아직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익숙해 지는 것도 없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아직 자고 있는 윤식씨를 뒤로하고 먼저 길을 나선다.


건물 1층 출구 앞 테이블에 많은 빵들이 포장된 채로 올려져 있다. 마들렌 정도의 크기에 형형색색으로 만들어진 빵이었다. 출발시간이 모두 제각각 이다보니 대부분의 알베르게에서는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원봉사자(오스피탈레로)에게 물어보니 오늘이 산티아고의 날이라고 한다. 산티아고는 성경에 등장하는 성 야고보(st. Jacob)의 스페인식 발음으로, 스페인에서는 매년 7월 25일을 산티아고의 날로 지정하여 축제를 벌인다. 이날을 기념하여 숙소에서는 순례자들을 위한 아침을 준비 하고, 달력에는 붉은 글씨로 오늘이 국경일임을 알리고 있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작은 빵 두 개를 챙겨 넣고 출발했다.


오늘 걸어야 할 곳은 중간에 마을도 거의 없는 30킬로미터 정도의 흙길이다. 작은 마을을 지나 유난히 새가 많았던 또레스델리오(Torres del Rio)의 언덕길에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음 마을인 비아나(Viana)까지는 10킬로미터가 넘는 꽤 먼거리라서 이곳에서 한번 쉬어 가기로 하고 배낭의 음식과 물을 점검했다.

2nd_19.jpg





비아나(Viana)에서는 이미 시끌시끌하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이 흰옷에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커다란 인형들이 도로에서 행진을 하며, 성당 앞 광장에서는 작은 장난감들을 대포에 넣어 하늘로 쏘아 올리는 행사가 이미 진행 중이었다. 대포 주변에서 그 장난감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좋다.


퍼레이드를 볼 수있는 바에서 식사를 하며 쉬어가고 싶었지만 그런 좋은 자리는 이미 만석이다. 마을 사람뿐 아니라 수많은 순례자 들도 함께 참여하고, 구경하다 보니 거리 양쪽 바의 외부 테이블은 물론 건물 안쪽 자리에서도 비어있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거리가 좀 떨어진 주변의 바로 들어가 간단히 또르띠야와 카페콘레체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멀리서나마 지나가는 축제의 행렬을 볼 수 있으니 이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nd_14.jpg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잠깐 벗어둔 장갑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찾아 봤으나 보이지 않았다. 배낭 위, 테이블 위, 아래, 옆 의자 등을 찾다가 결국 가방을 내리고 뒤지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두고 갈 수 없는 아버지의 소중한 유품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몇 번이고 더우니 장갑을 벗으라고 해도 그냥 웃고 지나쳤던 소중한 장갑이다. 가방을 두 번째 뒤질 무렵 바텐더가 지갑을 잃어버렸느냐며 장갑과 함께 건네 준다. 그제서야 지갑도 함께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음식을 주문 하며 내려 놓은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지갑 안에 들어있던 여행비 전부와 신용카드를 한꺼번에 잃어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음식 주문 시 값을 치르던 나를 빤히 봤을 텐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다시 찾은 것에 감사하며 길을 나섰다.


좁고 울퉁불퉁한 돌길 골목에서는 한참 축제가 진행되고 있어서 시끌시끌하다. 시끄러운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져 돌아보니 시커먼 소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 수많은 아이들이 따라왔고 소는 나를 향해 곧바로 달려왔다. 급작스러운 일로 당황했지만 그 소가 바퀴 달린 모형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스페인의 투우를 연상케 하는 놀이였다. 정교하게 제작된 검은 소의 모형을 어른들이 밀고 달려오며 아이들이 그 뒤를 바짝 따라 왔다. 내 곁을 아슬아슬 지나친 소는 다시 뒤로 돌아 아이들을 쫓아 간다. 돌 바닥에서 덜컹거리는 바퀴는 우다다하고 커다란 소음을 냈고, 즐거워 하는 아이들은 비명과 함께 뛰어 도망갔다. 행복해 보였다. 별 것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축제로 만들어 내고 함께 즐기는 모습은, 나는 그 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건 이었다.


이곳에서 하루 묵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의 느낌을 함께 공유하며 만끽하고 싶었지만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다음 마을로 떠나기로 한다. 다음 도시가 워낙 큰 도시이니 더 큰 축제를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을을 빠져나가려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팻과 새라가 위치 좋은 바의 바깥의자에 앉아 웃으며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음 마을까지 12킬로미터를 더 걸어야 해서 빨리 출발해야 한다고 하니 그들은 이 축제를 즐기며 하루 묵고 갈 예정이라고 한다. 난 식사로 늦춰진 시간을 만회라도 하듯 간단히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마을을 빠져 나가는 동안에도 그 검은 소는 큰소리와 함께 마을의 처음부터 끝까지 뛰어다니며 아이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스페인 라리오하(La Rioja) 주의 주도이며 대학도시인 로그로뇨다. 스페인 최고의 포도 재배지역이며 커다란 로그로뇨대학이 있고, 그 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하는 도시라고 한다. 로그로뇨까지 역시 뜨거운 햇빛과 그늘이 없는 밀밭이 어지러웠다. 마을 입구에서 쉬고 있는데, 윤식 씨가 뛰어오는 것이 보인다. 비아나에서의 파티도 즐기지 않고 부지런히 뛰어 두 시간을 따라 잡은 것이다.


윤식씨와 함께 숙소에 등록하는 중에 작은 적포도주 한 병과 어른 손바닥 보다 큰 조개 모양의 빵을 하나씩 나눠 준다. 산티아고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한 뭔가를 바쁘게 준비 하듯 순례자 접수를 받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안팎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책상과 의자를 나르고 세팅하는 모양새가 마치 무슨 큰행사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저녁 미사 후 마당에서 모든 순례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파티를 하니 꼭 참석하라고 한다.

2nd_7.jpg


시내 구경을 나서다가 마침 바로 몇 블럭 앞에 로그로뇨 대학이 있어서 세요를 받으러 들렀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기다릴까 하다가 이것도 욕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순례자여권에는 굳이 받을 필요 없는 대학의 세요를, 난 좀더 많은 도장을 위해 마치 전리품을 모으듯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자고 해놓고도 아직 세상을 의식하고 그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어떻게 해도 여태까지 살아온 삶을, 그 관성을, 한꺼번에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인가 보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이미 녹아 있는 과거가 습관이 되고 그 무게로 가속도가 붙고 있었다. 이런 하찮은 것까지 세상을 의식하고 나 자신을 포장하려고 하는 모습과 만나게 되니 다시 이곳에서 발가벗겨진 느낌이었다. 이런 비참하고 부끄러운 삶을 하나하나 깨뜨려 봐야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해 본다.


몇 번의 모퉁이를 돌아 중심가로 보이는 커다란 광장에 다다랐다. 로그로뇨 광장이다. 학생들로 보이는 수백의 무리가 몇 겹의 커다란 원을 만들며 음악에 맞추어 돌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겹겹의 강강수월래를 보는 느낌이었다. 비장한 음악이 연주되며, 원을 그리고 있는 무리는 한쪽으로 서너 발자국 걷다가 반대로 한발자국을 걷는 동작을 반복했다. 원 한가운데에 기타와 건반악기등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그룹이 있다. 어림잡아도 3~4백명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비장한 음악에 맞춰 함께 움직이며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의 수는 점차 늘어났다. 산티아고의 날을 기념하는 축제였다. 그 무리에 끼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한 발짝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불쑥 눈앞에 시커먼 얼굴이 나타났다. 일본인 조와 아이들이었다.

2nd_18.jpg


앞뒤로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고 말할 기운도 없다는 표정으로 쪽지 한 장을 내 눈 가까이 내밀었다. 우리가 짐을 풀고 나온 알베르게의 주소였다. 숙소를 찾지 못해 헤메다가 아이들과 이 시내 한 복판까지 들어와 버린 것이다. 우린 아이들의 가방 하나씩을 받아 들고 길을 안내 했다. 휴고와 라이치는 힘들어도 자기가 가방을 들겠다고 패기를 부렸지만 그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하여 거의 뺏다시피 받아 들었다.


숙소에는 많은 의자와 책상이 마당으로 나와 있었고 아직까지 바쁘게 움직이며 무언가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후에는 조와 항상 함께 다니던 크리스가 가방을 메고 들어온다. 그는 갈색 곱슬머리를 가진 마른듯한 체구에 커다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녔고 가슴에는 텔레비전의 예능프로그램에서나 보던 작은 카메라가 항상 달려 있었다. 자동으로 1분에 한 장씩 사진을 찍어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각오였다. 그의 가방은 달팽이가 집을 짊어지고 다니듯, 마치 몸이 딱 들어갈만한 집 한 채를 업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안에 많은 카메라 장비들과 더불어 그의 꿈도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꿈을 잃고 이 길을 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조나 크리스와 같이 그들만의 꿈을 가지고 이 길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당의 임시무대에서 미사가 시작됐다. 옆 성당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사제가 어느새 내려와 미사를 진행했고, 전통 악기연주와 노래공연이 펼쳐졌다. 공연을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즐거움과 생기가 넘쳤고 삶의 무료함과 고단함은 찾을 수 없었다.

2nd_16.jpg


미사 후 산티아고의 날을 기념하여 타파스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의자들을 모두 치우고 커다란 테이블 위에 직접 만든 수백개의 타파스가 올라간다. 타파스는 바게트 빵을 동그랗게 잘라 그 위에 쵸리죠나 야채, 치즈, 안쵸비, 연어 등을 얹어 한입거리로 만든 스페인의 전통음식이다.

2nd_15.jpg


함께 제공된 포도주를 마시며 이 숙소의 순례자를 포함해 밖에서 지나가던 누구라도 함께 자유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음식들로 나와 윤식은 마음껏 배를 채웠고 다른 이들과 함께 한껏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술에 속하는 포도주였지만 이곳에서는 단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음식이었다. 한국처럼 포도주의 브랜드와 종류, 따르는 방법등은 그 누구도 따지지 않았고, 편안하게 음식과 함께 즐기면 그만이었다. 배고픈 순례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인 자리이다 보니 음식들이 금방 동나버리지만 바로 다시 채워졌다. 사람들이 많아 움직이기 불편해도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도 없다.


난 최근 들어 머리가 뻐근하고 아팠지만 이들과 함께 어울려 보기로 했다. 며칠째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던 차에 겁이 나긴 했지만 일년에 한번 열리는 축제였고, 길에서 가난한 순례자로 살다 보니 마다할 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뻐근하던 머리가 점차 지끈거리기 시작하고 마치 배터리가 방전되듯 처음과는 다르게 힘이 떨어졌다.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지만 일단은 식사 후 충분히 휴식을 취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