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한계에 다다른 육체의 길과 나무 십자가

LOGRONO ~ NAVARETTE, 9th Day

by 이작


눈을 떴다. 역시 새벽이다. 주위는 캄캄하다.


모든 것들이 다른 날과 같았지만 몸 상태가 좀 이상하다. 분명히 걷고 있지만 마치 구름 위를 떠 있는 기분이다. 두 손으로 찬찬히 꼽아보니 벌써 이 길이 9일째였다. 일주일을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걸어왔다는 것만도 내게는 사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10년이 넘도록 운동이라곤 해본 적이 없었다.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에 스포츠는 관심도 없었고, 일도 바빠서 어떻게든 시간을 내 움직여야 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어제까지야 이 악 다물고 버텨 왔지만 오늘 아침은 결국 몸과 마음이 모두 방전 돼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힘이 모두 빠져버린 상태로 구름 위를 터벅터벅 걷고 있는 느낌이다. 독한 감기약을 먹은 듯 온 몸의 신경들이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무뎠고 별 것 아닌 것들에도 짜증이 난다.


결국 눈으로 책자의 코스를 따라가 보다가 하루 일정을 반으로 나누기로 했다. 노트북이나 캠코더, 사진기로 쓰고 있는 핸드폰까지 가지고 있는 모든 전자기기들도 마치 내 몸과 같이 방전 돼 있었고 가방도 정리 돼있지 않았다.


하루 코스를 반으로 나누니 걸어야 할 거리가 13킬로미터가 조금 넘었다. 달갑진 않았지만 조금은 짐을 덜은 기분이다. 그것 만으로도 걸음이 한결 가벼워지며 수월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언제부터 하루에 13~15킬로미터를 18킬로그램이 넘는 짐을 지고 걷는 것이 가벼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는 거리 였는지 생각하며 힘 빠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몸이 건강해진 건지 아니면 무뎌진 것인지. 실실 웃으며 다시 땅만 바라보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다음 마을에 다다를 때쯤 넓은 포장 도로를 따라 걷는 코스가 나타났고 그 길의 끝에 높지 않은 언덕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차도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인도를 따라 설치된 철망에는 나무나 철조각들로 거칠게 만들어진 수백개의 십자가가 붙어 있었다. 나와 닮아있는 순례자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길 끝 커다란 나무까지 손으로 십자가들을 느껴가며 걷다가 되돌아오길 두 세 차례 반복 했다. 얼마나 많은 순례자들이 얼마나 많은 소망을 안고 이 길을 걸었었는지, 내 십자가를 걸어둘 작은 공간조차 찾기 어려웠다.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약간 높은 위치에 다른 것들과 겹쳐서 작은 십자가를 완성했다. 기분이 괜찮았다.


그 자리에서 사진도 찍고 태양이 늘려놓은 그림자를 밟는 놀이도 하면서 철망 끝 나무를 지나갔다. 하지만, 끝인 줄 알았던 그 나무 뒤부터 수천, 수만의 십자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빽빽하게 이어져 있었고 이후로 30분 이상을 더 걸어서야 겨우 그 끝이 보였다. 그 긴 철망에 빽빽하게 채워진 십자가 들은 순례자들의 간절한 소망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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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들을 지나 중요한 역사의 현장처럼 보이던 순례자 병원 터를 지나서야 숙소에 이르렀다. 하지만 짧은 거리에 너무 일찍 출발한 탓인지 숙소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문득 클레어가 나타났다. 그녀도 이곳에 묵을 예정이라고 한다. 잠시 후에는 어김없이 윤식씨도 나타났다. 이들과 숙소 앞에서 함께 레몬주스를 마시며 문 열기만을 기다렸다. 윤식씨는 한국으로 돌아갈 날짜를 짧게 잡고 와서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기가 부담스럽다고 한다. 아쉽긴 하지만 늘상 있는 일이다 보니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짐을 풀고 무었이든 배부르게 먹고 싶어서 주변 식당의 순례자 메뉴를 주문했다. 이곳에서는 포도주 대신 맥주도 주문 가능하다고 한다. 가장 먼저 맥주가 나왔고, 샐러드와 스파게티가 나왔다. 게눈 감추듯 모든 음식을 뱃속으로 밀어 넣고 나서야 온몸이 나른해 짐을 느낀다. 하지만 시에스타 시간이 되기 전에 내일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주변에서 음식을 구입할만한 곳을 찾았지만 역시 다른 마을들처럼 작은 상점 이외에는 찾을 수 없었다.


식사 후 밖으로 나왔던 잠시 동안 공기 중의 습한 비 냄새가 빠르게 퍼지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바로 옆의 작은 상점으로 들어갔다. 규모가 너무 작아 고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지만 그곳에서 장을 보고 있자니 하늘이 캄캄해지며 후두둑 굵은 소나기가 쏟아졌다. 난 음식을 가슴에 품고 숙소로 뛰었다. 잠깐 동안에 빗방울이 더욱 굵어진다.





비 때문에 순례자들 모두가 어쩔 수 없이 모여있던 숙소에서 방 한가운데에 짐을 모두 꺼내고 정리 시작했다. 충전이 필요한 것들을 한꺼번에 모아 콘센트에 다닥다닥 꽂아두고, 옷가지 들과 음식을 정리했다. 마침 바늘과 실이 눈에 띄어 그 동안 날 괴롭혀 왔던 발바닥의 물집도 하나하나 뚫어 나갔다. 바늘귀에 파랑, 빨강등 색색으로 실을 꿰고 물집을 통과해 5센티미터 정도의 길이로 잘랐다. 발바닥 여기저기에 다섯색의 실이 알록달록 했다. 보기에도 나쁘지 않고 걷기도 수월했다. 하지만 왼쪽 두 번째 발톱의 검은 피멍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이제는 다시 가방을 손볼 차례. 난 가방을 뒤집어 아예 바닥으로 쏟아내고 하나하나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문득 주변의 시선들이 따갑게 느껴져 둘러보니 모든 침대에서 반짝이는 두개의 눈들이 턱에 손을 괴고 쳐다보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눈이 마주치자 흥미롭다는 듯 입을 뗀다.



너 미친 거 아냐? 무슨 짐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다녀?


그는 칸이라고 했다. 엔지니어였고 대부분의 엔지니어가 그렇듯이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이다. 나도 엔지니어라고 하자 관심을 갖는 말투다. 스페인 내에서는 요즘 엔지니어들이 직업을 갖기 힘들어 유럽연합에서 주최하는 유명 대학의 특별 코스를 수강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사실 미친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저렇게 많은 필요없는 짐을 메고 여기까지 절뚝절뚝 걸어왔을까? 다른 사람들은 대략 10킬로그램 이하로 배낭 무게를 맞춰 걷고 있는데 내 가방은 음식과 물의 무게를 합치면 20킬로그램을 넘어버렸다. 순례자들의 짐의 무게는 본인이 버리지 못한 세상의 무게라고 한다. 가슴은 퍽퍽한데, 버리지 못할 짐이 온몸을 짓누르고 있어서 더 이상은 버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칸의 옆 침대에는 첫날 숙소였던 오리손 알베르게에서 만났었던 캐나다인 이자벨도 있었고, 핀란드에서 신학을 전공하는 안나는 그 침대의 2층에서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쳐다 보고 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이 미친 순례자와의 대화에 끼어들었고 소나기가 거세지는 것도 모르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했다.


각자 나름의 상처가 있고,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크든 작든 상관없었고 언어도 상관없었다. 이 작은 공간에서 모두가 서로의 감정자체를 공유하고 있었다. 문득, 이 시간이 마치 꿈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 어디에서 이런 사람들이 자기의 쉽지않은 결정과 의지로 같은 공간에 모일 수 있을까? 또 어느 곳에서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며 가감 없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서로의 말은 못알아 듣더라도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가장 적극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려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모두 인정하고 바라는 것 없이 도와 줄 수 있을까?


창밖엔 천둥과 번개까지 동반한 소나기가 내린다. 스페인에서 처음 보는 소나기는 무척 어둡고 두렵기 충분했다. 창문 밖 골목길을 타고 위부터 쓸어 내려가는 엄청난 물의 양을 보니, 내일 일이 막막하다. 몸이 지칠수록 생각도 없어지며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날이었지만, 결국 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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