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영혼의 고향, 메세타의 새벽

HORNILLOS ~ CASTROJERIZ, 16th Day

by 이작

달이 밝다. 위협적이라는 메세타 지역의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다른 날보다 한 시간 가량 일찍 출발했다. 이곳의 새벽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춥다. 처음으로 긴 팔 옷과 조끼, 점퍼까지 모두 걸치고도 잔뜩 움츠러 든다.


어제 마을을 찾아 내려왔던 높이만큼 반대쪽 길로 다시 올라가야 했다. 밤새 지냈던 마을은 땅 밑으로 푹 꺼져 사라져 버리고 사방으로 지평선밖에 보이지 않는다. 앞에도, 옆에도, 뒤에도 완벽한 지평선이 보인다. 그 넓은 지평선 위로 둥그런 보름달이 떠 있고 달빛 만으로도 사방의 모든 것이 환하게 빛났다. 태양의 열정적인 빛과는 다른 차갑지만 따뜻한 빛이었다. 플래시를 들고도 잘 보이지 않던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추수를 끝낸 밀밭이 달빛을 반사하며 지평선 끝까지 거의 일정한 노란 색으로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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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간접 조명이 설치된 넓은 스튜디오에서 ‘트루먼 쇼’를 찍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인생이 마치 영화처럼 꾸며진 거짓인 것일까? 지금까지 이루려 했던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 어디서부터가 내 삶인지, 그 끝에 진정한 '해피엔딩'은 있는지 궁금하다. '해피엔딩'이라는 것 자체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 사회에서 일관적이고 꾸준하게 지지해 온 그 삶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지, 나 자신은 분명히 그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족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닌 것은 확실 하지만 맞는 것이 없다. 텅 비어버린 삶이 보였다. 더 이상 목적도, 목표도, 즐거움도 없다.


차가운 새벽 공기에 잠시 생각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본다. 추운 새벽인데도 주변이 따뜻하게 밝다. 넓은 외계의 별에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나 혼자만 있는것은 아닌 것 같다. 지평선 위에 크게 보이는 보름달이 기묘하다. 아무것도 없는 이 곳에, 이 새벽에 난 아이러니하게도 온 몸으로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고 있다. 바람에 섞인 달빛인가? 기름종이를 통과한 은은한 조명 불빛같은 것들이 보이는 모든곳에 뿌려지고 있다. 초현실적인 이곳의 시간과 환경에서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며 먹이를 받아먹듯 그것들을 받아 들이며 즐거워한다. 너무 행복해 꿈을 꾸는 듯, 잠을 자는 듯 걷는다. 아픈 두 발은 이제 어떤 무게도 느껴지지 않고, 걷는다기 보다 두 다리를 딛고 날고 있는 듯 하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분석해보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감정의 폭은 너무 좁은데 느껴지는 것은 거대하면서도 아늑하고 포근하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아련하다. 눈물이 핑 도는데 웃음이 난다. 내 정신은 잊고 있던 태초의 고향으로 찾아 들어가고 있었다. 실수투성이인 삶들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어떻게 살았든, 어떤 길을 걷든 모두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바로 그 ‘고향’이었다.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워 눈물이 솟았다.


태초부터 기다려 왔던 것처럼 달빛으로 물든 노란 메세타는 그렇게 나를 온전히 품고 있었다. 지평선 끝에는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같이 점보다도 작은 불빛이 깜박거린다. 실눈을 뜨고 자세히 보니 수평선을 따라 옆으로 세 줄로 뻗어 있다.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점선이었다. 끝없이 이어져 있는 지평선을 따라 바늘 구멍만한 불빛들이 새어 든다. 세 겹 바느질로 하늘과 땅을 기워놓은 바느질 자국이다. 사실 풍력발전기 끝에 붙어있는 불빛이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주변을 마음대로 해석하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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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다. 머리와 몸과 마음의, 끝도 없는 자유를 느낀다. 이상한 별에 혼자 떨어져 있는 듯 했지만 이곳에서 모든 행복의 정의를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마치 태어나기 전부터 그리워하던 곳에 와있는 것처럼 행복했고,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아무도 볼 수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으며 그런 약간의 외로움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고 있었다. 한여름 새벽의 메세타, 이곳은 최고의 꿈 같은 곳이며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였다.


날이 밝을 때쯤 저 멀리 보이는 클레어의 모습도 나와 같이 두 팔을 벌리고 온몸으로 이곳을 만끽하고 있었다.






클레어와 함께 작은 마을 온타나스(Hontanas)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서 하나의 길이 시작되어 마을 중앙을 관통하며 마을의 끝까지 이어진 곳이었다. 양쪽 옆으로 나란히 흙빛의 집들이 들어섰고 두어 개의 바가 이미 문을 열고 순례자를 맞이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 첫 번째 바에서 벌써 팻과 새라가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쉬고 있었다. 그들도 역시 메세타의 햇빛을 걱정하여 좀더 일찍 출발했다고 하는데 그 새벽의 황홀경을 겪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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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함께 출발 해 산 안톤(San Anton) 수도원 터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무너져 외벽만 남아있는 옛 수도원은 남아있는 외벽의 규모만으로도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안쪽 성벽에 의자와 작은 과일들이 마련돼 있고 순례자들에게 무료로 제공됐다.


10살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세요를 찍어주려고 앉아 있었다. 공간의 입구부터 한쪽 벽으로 안톤 수도원을 기념하는 기념품들이 전시 돼있지만 아무도 구입을 강요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일행은 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의자에 앉아 쉬어 가기로 한다.


과일을 입에 넣는 순간 한쪽 구석에 세워져 있는 클래식 기타가 눈에 들어온다. 그 꼬마숙녀도 기타를 조금은 칠 수있다고 한다. 일행들의 박수로 연주를 요청했다. 꼬마 숙녀의 연주는 한 줄 한 줄 조심스럽고 장난스럽게 지판을 짚어 나갔다. 자연스레 아빠의 미소가 머금어지는 연주였다.


기타를 건네 받았다. 다시 한 줄 한 줄 조율을 마친 후 꿈 많은 학생 때 즐기던 곡을 몇 곡 연주했다. 아직도 그 곡들의 운지법을 손가락이 잊지 않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팻과 일행들은 손뼉을 치며 연주를 반겼다. 이것은 학생 때 취미로 했던 ‘놀이’에 불과했다. 그때는 전부로 생각했던 놀이가, 살아가며 심심할 때의 ‘놀꺼리’로 전락했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감성적인 기타연주와 일상의 업무는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아무 상관없는 두 ‘행위’가 서로를 방해했다. 그 사이에서 난 결국 기타를 손에서 놓아 버렸다. 이렇게 좋아하던 ‘행위’들은 사회에 적응하면서 반대로 하나 하나 내 손을 떠나 버렸다. 개인의 마음과 바램을 털어버리고 모든 사적인 것을 놓아 버렸을 때 사회는 나를 더 반겼다. 이렇게 사회에 적응할 수록 나의 조각들은 하나씩 사라졌다. 이곳에서의 서툰 기타 연주는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위로하는 소리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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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과 함께 수도원을 떠나 폐허의 도시가 연상되는 카스트로제리츠(Castrojeriz)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공립 알베르게가 있었지만 일행 모두의 뜻을 모아 길 옆 가까이 있는 깨끗한 사설 알베르게에 묵기로 했다. 겉에서 보기에는 흙을 발라 세운듯한 건물이었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고 깨끗한 분위기의 거실이 나타났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은 2층으로 방 세 개와 거실을 모두 터서 하나의 공간처럼 개조해 놓은 곳이었다. 널찍한 바닥에 모두 함께 넉넉히 앉을 수도 있었고, 열린 창문 밖에서는 건조한 바람이 솔솔 불었다. 앞 건물 지붕 아래에는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들이 떼를 지어 앉아있고 반대쪽 끝으로는 다른 종류의 비둘기들이 있었다. 똑같은 ‘비둘기’라는 이름을 가진 피죤(PIGEON)과 도브(DOVE)였다.


난 팻을 불러 두가지의 차이점을 모르는 척 물어봤다. 팻은 마치 아버지와 같이 자상하게 그 차이를 설명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부러 무엇이라도 물어보면서 조금이라도 더 팻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난 그에게서 아버지를 그리고 있었다. 입으로는 창 밖을 내다보며 묻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어린아이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떼를 쓰고 있었다.


아빠, 어딨어? 아빠 이건 뭐야? 아빠, 아빠..



우리는 빨래와 짐 정리를 마치고 함께 움직였다. 널어놓은 빨래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바닥에 흥건하게 고이고 있었지만 지금 햇빛으로 봐서는 두어 시간 정도면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가까운 식당을 찾아 오징어 먹물 빠에야와 레몬맥주 클라라를 주문했다. 한국의 화려한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를 떠올리며 주문한 음식은 짙은 검은 빛깔만큼이나 짰다. 다른 사람들이 주문한 음식도 마찬가지였지만 내일을 생각해 어쩔 수 없이 모두 비워야 했다.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음식을 잔뜩 먹고 벗어난 이야기를 들려주니 그 다음부터 팻은 음식을 먹기도 전에 내 접시에 덜어주곤 한다. 오늘도 난 팻의 음식을 반이상 먹어 치웠다. 식사를 하며 팻이 또 묻는다. 오늘 컨디션을 표현하자면 1에서 10까지 중 어디쯤이냐고. 거의 매일 팻과 함께 자리를 잡으면 같은 질문을 우리 일행모두에게 하곤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이유을 묻고, 기분이 좋았다면 가장 좋았던 부분을 질문하며 함께 공유했다. 이 시간은 하루를 꼼꼼히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처음엔 하루 한번만 묻던 질문이었는데 이젠 쉬는 자리마다 묻는다. 일행들의 몸까지 말끔히 챙기겠다는 의지였나 보다. 그리고 특히 안 좋던 부분은 여행이 끝나도록 챙겨가며 보살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인 죠와 그 아들 라이치, 휴고를 만났다. 우리보다 조금 늦게 이 마을에 도착했지만 라이치와 휴고는 도착하자 마자 천방지축으로 지팡이를 휘두르며 뛰어 놀고 있었다. 아직 숙소도 잡지 못한 죠는 그 아이들을 보고 웃으며 머리를 휘휘 저어댄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몇 가지 일이 벌어져 있었다. 먼저 우리가 들어간 방에 추가된 한 명이 문제였다. 코골이 일본인, 바로 그가 같은 층에 있다. 아. 낭패다. 그는 도쿄에서 왔다고 한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많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사실 그의 코골이는 두려움의 대상이어서 일행들에게 알리고 모두 귀마개를 준비 했다.

또 한가지는 널어놓은 빨래를 걷으러 나가보니 바람 때문이었는지 클레어가 아끼던 파란색 망토가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찾아 다녔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고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함께 묵던 이탈리아인 순례자는 앞으로의 길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주었다. 며칠만 더 가면 17킬로미터를 쉬는 마을 없이 걸어야 하는 구간이 나오는데 그 곳부터 약 일주일 간은 물이 좋지 않아 반드시 물을 구입해서 먹으라고 한다. 그 근거가 확실치 않아 반신반의 했지만 흘려 들을 수 없는 정보여서 일단은 수첩에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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