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ISTA ~ CARRION, 18th Day
프로미스타에서의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이제는 완벽하게 시간표에 적응했지만 여전히 온 몸이 쑤신다. 오늘은 아스팔트길을 따라가는 평평한 도로길이다. 20킬로미터라고 하지만 아스팔트가 깔려있는 길의 20킬로미터는 이제는 안정감을 주는 거리다.
길도 단순하고 목적지까지의 거리도 짧게 느껴져 쉬어가는 기분으로 나섰다.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였을까? 코스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성당에도 잠시 시간을 내서 들르기로 했다. 비야까사르(Villacazar) 마을의 길 옆으로 갖가지 벽화들이 나란히 그려져 있는 골목을 지나 커다란 광장에 이르렀다.
커다란 성당이 보인다. 무대에 오르는 듯한 넓은 광장을 혼자 가로질러 성당의 출입구로 올랐다. 입장료 안내와 각종 안내 글들이 스페인어로 쓰여 있지만 문을 열지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굳이 설명을 보지 않더라도 감동을 전달받기에는 충분했다.
건물을 따라 한바퀴 돌자 벽화골목에서 팻 일행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성당 앞 바(bar)에서 빵과 에스프레소 한잔을 주문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한잔을 모두 비운 후 추가로 한잔을 더 주문했다. 성당이 내뿜는 웅장함, 고요함과 뒤섞인 새벽의 공기는 신선했다. 단지 거리가 짧게 느껴지는 것 하나로 난 어느새 오늘을 즐기고 있었다.
어렵지 않은 길이라서 누구 하나 낙오하지 않고 목적지인 까리온(Carrion)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옛 성당이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알베르게로 개조되어 있었다. 마침 네 명이 사용하는 방이 있어서 팻 일행과 함께 그 방을 잡았다. 샤워 시설은 숙소 공간이 아니라 공동 시설을 이용해야 하지만, 이 길을 걷는 동안 느껴보지 못한 안락한 4개의 분홍색 매트리스 침대가 깨끗하게 놓여 있었다.
발 뒤꿈치에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의 물집이 생겨버린 새라는 들어오자 마자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고 클레어도 침대 속으로 들어가 꼼짝하지 않는다. 나는 팻과 방향을 달리 하여 시내의 양쪽 방향으로 각각 돌아 본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와 정보를 교환하기로 했다.
제법 규모가 있는 도시였지만 성당을 중심으로 한 중심가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성당에서는 멋진 스페인식 결혼식이 진행되고, 건강해 보이는 검은 말 두 마리가 신랑을 태우고 나타났다. 성당문이 열려있어서 외부인들도 함께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성당 안팎으로 파티용 드레스를 입은 하객들이 즐비했다.
성당 주변에는 산악용품전문점 및 작은 가게, 사무용품점과 같은 다양한 상점들도 찾을 수 있었다. 난 작은 수퍼로 들어가 예쁜 돼지 모양의 과자 몇 개와 직접 가게에서 만든 피클 및 식사거리를 구입했다. 시골마을에서 직접 담근 피클을 사먹을 수도 있고 도시에서 살 수 있는 여러 용품점도 한번에 만날 수 있는, 여태까지와는 사뭇 다른 흥미로운 마을이다.
주전부리를 입에 넣으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조와 그 아들들, 라이치와 휴고을 만났다. 그들도 마침 이곳을 지나가는 길이었다. 기쁜마음에 방금 구입한 돼지모양 과자를 꺼내 라이치와 휴고에게 하나씩 쥐어 주고 우리 숙소를 소개 했지만 조는 일정 때문에 이 마을을 지나 다음마을까지 갈 예정이라고 한다.
팻이 커다란 장이 열리는 곳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식사 후 모두 구경을 나가기로 한다. 하지만 순례자 메뉴를 파는 식당을 찾아 다니다가 어느새 팻이 이야기한 시장 입구 식당까지 도착해 버렸다. 간단히 식사를 해 치운 우리는 바로 시장으로 들어가 한바퀴 돌기 시작했다. 초리죠, 치즈 등과 같은 스페인의 특산품부터 포르투갈의 도자기, 조각품들까지 모두 모여있는 제법 커다란 임시 시장이었다. 슈퍼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싸고 종류도 많아 이것저것 맛을 본 후 처음으로 초리죠를 하나 구입했다. 초리죠는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말린 소시지로 여러 가지 다양한 맛이 진열돼 있었다. 훈제 햄 맛과, 매운 맛, 간으로 만든 것까지 다양하게 맛볼 수 있었는데, 한국사람의 입맛에도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숙소로 돌아와 짐 정리와 내일을 위한 준비를 다시 시작한다. 발바닥에 생긴 물집을 터트리고, 가방을 다시 싸고 물을 챙기는 등의 일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새라의 왼발 뒤꿈치에 오백원짜리 동전만한 물집이 생겨 몇 주째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새라는 기필코 터트리는 것도 싫다고 하여 그 아픈 발로 절뚝절뚝 걸었고 그 걸음걸이가 또 다른 부분에 물집을 만들어 냈다. 벗어둔 새라의 신발을 확인해 보니 물집이 생긴 부분에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갈 만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이 같은 부분을 계속 자극하여 오래 전부터 물집이 생겼던 것이었고 원인이 제거되지 않으니 계속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에서 값비싼 등산복세트를 걸치고 개천 주변에서 뽐내듯 산책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여태 걸어온 이 길을 되짚어봐도 등산복과 등산가방, 등산화를 제대로 걸치고 걷는 사람은 나 자신과, 뽐내듯이 걷는 한국인 몇 명 정도 밖에 없었다.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고 부끄러웠다. 한국에서는 주변 한두 명이 조금씩만 달라도 멋져 보이고 그것을 따라가려 하지만 이곳에서는 어디를 봐도 그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꼭 필요하지 않으면 관심조차 갖지 않았고 그 ‘필요’의 기준조차 달랐다. 물질로 채우고자 했던 내 욕심이 여지없이 드러나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 욕심을 위해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거기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다시 채워지지 않는 욕심을 채워보려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차 사라졌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이 가득 차 있었고 그것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삶이 진정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그것으로 인해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새라의 신발을 팻에게 보여주니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팻은 새 신발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뒤꿈치에 끼울 깔창을 하나 구해서 구멍이 뚫려버린 자리에 넣어 주었다. 충격의 연속이다. 수많은 디자인과 브랜드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같은 시대에 저렇게까지 절약하는 모습은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고 반성하게 만들었지만 아직은 그 기준을 실제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내일은 출발 후 17킬로미터를 지나기 전까지는 아무 마을도 없다던 바로 그곳을 지난다. 며칠 전 물이 좋지 않다고 전해 들었던 바로 그 지역이다. 미리 충분한 음식을 준비하고 처음으로 물도 구입해서 배낭에 넣었다.
짐을 싸고 보니 들고 가기에 너무 많이 사버린 것 같다. 벌써 까미노를 반이나 걸었는데도, 아직 거리와 필요한 음식의 양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 아무 계획 없이 그때그때 느껴지는 대로 걷다 보니 마음은 가볍고 편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보면 이처럼 모든 것이 아직도 생소하다.
아침이 되면 일어나 걷기 시작하고, 식사를 하고, 마을을 찾아 숙소에 들어가고, 빨래를 하고, 장을 보고, 10시가 되면 잠이 들어버린다. 이제는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아직 온몸이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손가락 마디 끝부터 피멍이 들어있는 발가락 끝까지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 짐은 남들보다 훨씬 많아 물과 음식들의 무게를 합치면 이젠 20킬로그램이 넘어 내가 세상에 가지고 있는 미련이 얼마나 많고, 아직까지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시 확인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