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RION ~ TERRADILLOS, 19th Day
미리 준비해 둔 음식으로 오늘 아침과 점심을 먹었지만, 이상하게도 가방의 부피는 줄지 않고, 포근한 잠자리에서 쉬었는데도 다시 온 몸이 삐걱거린다. 온몸이 긴장을 놓아버린 것 같다.
이런 상황들을 점심까지 먹고 나서야 깨달았다. 17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중간에 작은 마을 하나가 있었지만, 너무 작은 곳이다 보니 바나 상점은 보이지 않았고, 마을을 지나 아무리 걸어도 지평선 끝까지 이어져 있는 길은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 길을 시커먼 먹구름이 끝도 없이 덮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혼자 걸으며 바라보는 검은 하늘은 여태까지 봐왔던 그 어떤 것보다도 두려웠다. 내 몸이 자연에 대한 두려움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 같다. 어디든 지금 당장 몸을 숨기고 싶다.
햇빛이 쨍쨍한 날이 걷기에는 뜨겁고 더 고통스럽지만, 이렇게 온 하늘에 가득한 검은 구름은 가슴 밑바닥부터의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어느새 일행과 떨어져 주변에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무거운 하늘은 한꺼번에 땅으로 무너지듯 나를 짓눌렀다. 두려웠지만 숨을 곳이 없다. 길 옆으로는 집도, 숲도, 나무 한 그루도 찾을 수 없다. 한걸음 디딜 때 마다 온 몸의 피부에서 모든 근육들까지 고통이 전달된다. 손가락부터 발끝까지 주먹을 쥐거나 펼 때도, 한발한발 디딜 때도 온 몸이 비어있는 듯이 텅텅 울린다.
먹구름의 기운이 내 숨통을 따라 온 몸을 검게 채웠다. 괜히 슬프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당장이라도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다. 엉엉 소리 내어 울고도 싶다. 짜증 나고 힘들고 아프다. 뜨거운 태양이 없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이 고통뿐이다.
목적지인 테야디요스(Terradillos)에 도착해 보니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과 같은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순례자들이 보인다. 숙소에 짐을 풀고 도시 가격의 세배나 되는 음료수를 사서 마시며 가방에 남아있던 굳은 빵을 꺼내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절뚝거리며 캐나다인 이자벨이 들어온다. 이 길의 첫째 밤을 보냈던 오리손 알베르게에서 함께 식사를 했던 사람이다. 이 길을 걷는 것이 여섯번째라고 하지만 큰 덩치로 매번 만날때마다 절뚝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들어오자 마자 음식을 주문한 이자벨은 정말로 맛있다며 권한다. 난 방금 들어온 독일인 올리와 함께 순례자 메뉴를 주문해서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기분이 좋아진 올리는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돌렸다. 하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던 나에게 맛있는 음식도, 달달한 쵸코 아이스크림도 위로가 되진 못했다.
삐걱거리는 몸을 질질 끌고 배정받은 침대위로 올라가 여행책자를 폈다. 더 이상은 걷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내일의 일정을 따라가다 보니 사하군이라는 도시가 보인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 간에 다시 일정을 반으로 쪼개어 쉬기로 한다. 모든 것을 접고 자리에 몸을 뉘였다. 어느새 눈물이 주룩 흐른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프고 힘들다. 누구에게든 위로라도 받고 싶었지만 온전히 혼자였고 내 가슴을 찢고 들어간 먹구름은 단단히 똬리를 틀고 앉아 나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