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RADILLOS ~ SAHAGUN, 20th Day
밤이 어떻게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뒤틀리고 뒤죽박죽이었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태풍을 만난 배처럼 머리 속은 흔들렸고, 온몸이 아프고 쑤셔왔다. 신경도 날카롭고 컨디션은 이미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오늘 아침, 처음 만난 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팻 일행을 볼 수 있었지만 모른척하고 지나쳤다. 누구와도 함께 섞이고 싶지 않았다. 그게 비록 팻 일행일 지라도. 그 자리에 함께 한다고 해도 그들의 즐거운 식사자리마저 망쳐버릴 것만 같다.
모든 것을 다 접고 걸었다. 감각이 무뎌진 몸은 둥둥 떠다니는 것 같고 항상 손과 가까이 했던 카메라와 간식거리도 배낭 안으로 모두 처박아 버렸다. 간신히 걷기를 몇 시간, 식사를 마친 팻 일행이 따라왔지만 사하군에서 하루를 묵고 가겠다며 무리에서 떨어졌다.
사하군까지의 거리가 14킬로미터로 짧다 보니 11시가 채 되기도 전에 사하군 알베르게에 도착해 버렸다. 단 한 명의 스페인 청년만이 숙소의 오픈을 기다리며 정문 앞에 앉아 있다. 난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열고 바람막이 점퍼를 꺼내 끼어 입으며 건물 앞에 앉았다. 그 자세로 마치 병든 닭처럼 한 시간이 넘게 꾸벅거리며 졸고 있는데 12시가 가까워 지자 이자벨이 다시 절뚝거리며 나타난다. 그녀도 아픈 다리때문에 이곳에서 묵고 갈 것이라고 한다.
얼마 후 알베르게의 자원봉사자가 나타나 문을 열었다.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문 주위에 몰려 있었고, 반쯤 잠에서 깨어 멍하니 있는 동안 자리는 맨 뒷줄로 밀려 버렸다.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귀찮고, 힘들었다. 그냥 빨리 수속이나 마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누군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곳에서는 날 찾을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아닐 거라며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몇 번이나 이어졌다. 결국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돌아보니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스페인 청년이 줄의 맨 앞에서 날 부르고 있었다. 먼저 왔으니 앞쪽으로 오라는 것이다. 머뭇 거리다 머쓱하게 앞에서 두 번째로 자리를 옮겼다. 당연히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는 당연하다는 듯 수속을 마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곳은 옛날 성당을 알베르게로 개조한 곳이다. 2층의 체육관 만한 넓은 공간이 칸막이로 구분돼 있고, 각각 2층 침대가 네 개씩 놓여 있었다. 침대 사이에 문은 설치돼 있지 않아 마치 칸막이만 설치된 넓은 농구장에 2층 침대를 줄 맞춰 놓아둔 것처럼 보였다.
난 제일 안쪽 2층침대의 아래쪽에 배낭을 얹었다. 따로 침대를 배정하지 않고 수속을 마친 후 본인이 원하는 곳에 짐을 올려놓으면 그 침대가 그의 자리가 된다. 더 이상 움직이기도 힘들어서 남아있던 며칠 된 굳은 빵으로 허기만 때운 후 씻지도 않고 잠이 들어 버렸다. 오래 잠들지도 못하고 뒤척이다 깨어보니 좁은 통로건너에 캐나다인 이자벨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난 멍하니 누워 있다가 이전에 마트에서 구입해 둔 인스턴트 스프를 꺼냈다. 배는 고프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방을 찾아 가려고 일어나는데 이자벨도 마침 점심을 준비한다고 한다. 직접 만들어 먹으려고 하는데 원하면 내 것까지 해 주겠다고 한다. 천만 다행이다.
이자벨과 함께 주변 상점에서 장보는 것을 도왔다. 도왔다기 보다는 그냥 옆에서 짐만 들어주는 게 전부였다. 안좋은 컨디션 탓에 아무 생각도 못했고 걷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지만 아프다는 말은 아직 남아있던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이자벨에게는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이자벨은 인스턴트 소스가 아닌 야채와 토마토 등의 재료들을 직접 구입했다. 요리를 막 시작 하려는데 일반적으로 알베르게에 구비되어 있는 소금이 보이지 않는다. 난 어쩔 수 없이 소금을 구하기 위해 홀로 마트를 찾았다. 하지만 진열대에서 조금씩 덜어 파는 소금을 찾을 수 없어서 결국 제일 작은 소금 봉지를 하나 집어 들었다. 제일 작은 양이었지만 500그램짜리 밀봉돼있는 봉투였다. 계산을 하려 하자 마트주인이 내 모습을 한번 보고는 물어보지도 않고 소금 봉지를 뜯어 한 주먹을 종이에 담아 건네준다. 덜어서도 파는가 싶어 얼마냐고 물었지만 돈은 필요 없으니 그냥 가라고 한다. 그저 한번 지나쳐가는 순례자를 위해 판매용 물건을 고민없이 뜯고 나누어 줄 수 있는 이런 마음을 내 퍽퍽한 머리로는 절대 이해 할 수 없었다.
이자벨이 만들어 준 파스타 한접시를 게걸스럽게 비우고 그 보답으로 모든 설거지를 깨끗이 해 치웠다. 정말 맛있었다. 레스토랑에서 파는 스파게티와는 많이 달랐지만 내게는 최고였다. 난 뒷정리를 말끔히 해 놓고 침대로 돌아와 다시 잠이 들었다.
천 년의 시간이 지난 것 같다. 비몽사몽하며 미사 시간을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사에 참석하지 않으면 그날 밤은 종종 악몽에 시달려서 그런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가 성당이지만 오늘 미사는 진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밖으로 나가 주변 다른 두 곳의 성당을 들렀다. 그 중 한곳에서 누군가 스페니쉬 기타를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니 한때 대학 동아리에서 딴따라가 되어 보겠다고 기타를 들고 돌아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딴따라로는 먹고 살기 어렵다고 하여 대학교 3학년이 되는 것과 동시에 대부분의 활동을 접어 버렸지만 졸업후에 가끔씩 힘들다고 느껴질 때 방에서 혼자 기타를 잡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예전 같지 않은 소리와 느낌에 번번히 좌절하고 실망하며 다시 기타를 내려 놓았었다.
성당에서 울리는 연주는 훌륭했다. 몇 차례 앵콜을 청하며 마음을 잠시 놓아 본다. 연주가 끝나고 세요를 받았지만 오늘은 이곳에서도 미사가 없다고 한다. 구름을 타고 다니는 듯 멍한 정신으로 숙소로 돌아와 낮에 꺼내 놓었던 인스턴트 스프를 간단히 끓여 저녁으로 때웠다. 더 이상 움직일 기운조차 없어서 이것이 오늘의 마지막 식사가 될 참이었다.
침대로 돌아와 보니 다리 쪽 침대에 언제 왔는지 아일랜드에서 온 클라우다가 앉아 있다. 쭈뼛쭈뼛하다가 말을 꺼내는데 자기가 먹으려고 만들어 놓은 파스타가 너무 많아서 혹시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다면 먹으라고 한다. 함께 주방으로 가보니 만들어 놓은 파스타의 3분의 1정도만 덜어 놓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난 남아 있는 파스타를 다시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후 깨끗한 설거지로 보답하고 돌아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몸이 아파 하루 일정을 반으로 쪼개어 이곳에 들어왔는데, 숙소의 침대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다니. 보통 하루 걷는 거리는 20~30킬로미터 정도로 책자에 정해져 있고, 그것을 쪼갠다는 것은 사실 일반적인 일정은 아니었다. 하루를 걷는 속도는 각자의 페이스에 따라 출발과 도착 시간이 모두 다르지만, 보통 숙박을 하게 되는 도시는 거의 일정하기 때문에 하루 일정을 반으로 쪼개려면 그 동안 걷다가 만났던 친구들과는 모두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난 좋지 않은 컨디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됐지만, 어찌된 일인지 침대 주변에서 아는 사람들에게 둘러 쌓이고, 나의 사정을 모르는 그들로부터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점심과 저녁을 모두 대접 받았다.
정말 감사했다. 생각해 보면 소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우연들이 거의 매일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난 그것을 그냥 우연으로만 치부해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사소해서 정말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이런 일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이와 같은 일상의 사건들이 바로 진정한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