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45 킬로미터(km)의 행복

SAHAGUN ~ MANSILLA, 21th Day

by 이작


어제 두 끼를 배부르게 먹고 쉬다보니 다시 걷는 것이 수월하다. 무겁던 기운도 사라지고 없다. 음식을 제공해 준 클라우다와 이자벨에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너무 이른 아침이다 보니 행복을 바라는 기도로 대신했다. 새벽 공기가 상쾌하다. 적어도 오늘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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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사막 길 한쪽에 우뚝 바(bar)가 있는 건물이 보인다. 깔사다델코또(Calzada del coto)였다.

식사를 하기위해 들어간 바에서 며칠 전부터 종종 마주쳤던 서태수씨가 마침 식사를 하고 있다. 그가 가까이 있으면 항상 찬송가나 복음성가가 들렸다. 나도 나름 교회를 다니고는 있지만 그의 신앙은 언제나 견고하고 확실해 보인다. 또한 그에게서 진폭이 넓은 감정선이 느껴졌다. 말주변이 없어서 말로 표현은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꽤 굵은 감정선이었다.

그는 최고의 사진을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배운 적은 없다고 하는데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 여리고 섬세한 마음을 통해 완벽한 구도를 잡아냈다. 그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들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그 깊은 곳을 캐내지 않고 자신의 입으로 그려낼 때 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얼핏 듣기에 이탈리아에서 커피에 대해 공부하다가 이곳으로 왔다고 하는데 그 사연은 여행 끝무렵 까지도 정확히 들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찾아 듣기에는 내 코가 석자였으며, 그도 역시 내가 외국에서 그토록 만나기를 꺼려하던 한국인 이었다.


난 태수씨가 막 식사를 마친 테이블에서 마주보고 앉아 초리죠를 넣은 또르띠야를 주문했다. 며칠전 구입했던 초리죠를 시작으로 그 맛이 입에 붙어버렸다. 그의 오늘 일정도 오늘 내가 가려고 하는 도시와 같았다.

식사를 마친 태수씨가 복음성가를 틀고 자리를 뜨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테이블이 식당 밖에 있다보니 여유롭게 식사를 하며 꽤 많은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직 멍한 상태였지만 오늘 길을 잃을 걱정은 없을 것 같다. 그냥 적당한 무리를 찾아 뒤따라가기만 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기다리다가 열명정도의 무리가 지나갈 때 그 뒤를 따라 나섰다.


다음 마을에 들어서니 우리나라의 시골집 같은 작은 성당이 하나 보인다. 세요를 받고 기도 후 나와보니, 작은 트럭이 골목골목을 다니며 규칙적으로 경적을 울리고 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잠시 성당 입구 계단에 걸터앉아 눈으로 트럭의 뒤를 쫒는다. 집에서 사람이 나오고 차가 잠시 멈춰 서더니 종이 봉투를 건넨다. 봉투 위로 삐죽하게 바게트 빵이 올라와 있었다. 모든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봐서 변두리 동네에 과일트럭이 다니듯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빵을 판매하는 차가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호기심을 해결 한 후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조금 전까지 많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걷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길을 걸어도 다음 마을이 나타나지 않는다. 가끔씩 건물 한두채가 보이긴 하지만 사람도 없고 분위기가 이상하다.

몇 시간을 내리 걷고 나서야 이정표를 만났다. 책자와 비교해 보니 이곳은 내가 생각했던 경로가 아니었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갔어야 계획한 지점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쪽을 지나지 않도록 추천한 ‘로만(Roman) 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스팔트 대로는 순례자들이 짐을 메고 걷기에는 위험하기 때문에 순례길을 따라 도로가 나게 되면 주변의 다른 길로 옮겨진다고 한다. 그 중 지금 걷고 있는 곳이 ‘로만길’ 이라고 불리며 차도에서 벗어나 스페인의 시골을 좀더 느낄 수 있도록 추천된 길이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스페인의 시골마을을 거쳐갈 수 있지만 거리상으로는 좀 더 멀어지며, 아침에 출발한 곳부터는 45킬로미터 정도를 걸어야 숙박이 가능한 규모의 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이 로만길은 스페인의 전형적인 시골풍경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오늘 목적한 마을에서는 아예 멀리 돌아서 다음 마을로 이어졌다. 아무 의심 없이 사람들을 따라오다 보니 이곳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었다. 이 길에도 2차선 도로가 뻗어 있었지만 하루 종일 만난 차량은 4대 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 중 한대는 순례길을 관리하는 차량으로, 걷고있는 순례자들의 상태를 관찰하여 만약의 사고를 예방하는 차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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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니 구름한점 섞이지 않은 하늘에서 쨍쨍하게 햇빛이 내렸고 길 양쪽으로는 갈아 엎어놓은 흙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 한 그루, 작은 마을조차 만날 수 없다. 마침 큰 공사를 하고 있는 구간도 있어서 바로 앞에 보이는 길을 옆으로 한참을 돌아 넘어가야 했다. 내 키정도의 작은 나무를 발견하여 쉬어가려고했지만 그 좁은 나무그늘에 이미 어떤 아주머니와 어린 두 딸이 앉아있어서 들어갈 수조차 없다.


이곳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아무도 날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점차 마음속에 평온함이 퍼져 나갔다. 그 뜨겁고 힘든 허허 벌판의 한 복판에서 이상한 행복을 느끼며 난 어느새 두 팔을 벌리고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난 이 길에 들어서 가장 긴 거리와 시간을 걷고 있었다. 총 11시간 반 이상 45킬로미터 가량을 걸었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행복으로 가득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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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지기 시작하고 마을에 거의 도달할 무렵, 뒤에서 누군가가 부지런히 지나쳐 가려다가 문득 쳐다보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예전에 일본인 조와 함께 다니던 크리스였다. 커다란 카메라와 렌즈등의 장비들이 가득한 배낭과 함께 예능프로에서나 보던 액션캠을 가슴에 달고 있던 바로 그 크리스였다. 지금은 물 한 병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반가운 마음에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그동안 너무 무리를 해서 몸이 심하게 상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작은 마을에서 링거를 맞으며 며칠을 쉬었고, 이제는 돌아갈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짐을 먼저 보내고 하루에 40킬로미터 이상씩을 걸어야 간신히 시간을 맞출 수 있다고 한다. 걷는 동안 가슴에 달린 카메라로 1분에 한 장씩 사진을 찍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그의 꿈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도, 마음에도 아쉬움은 없었다. 욕심을 내려놓은 그의 검게 탄 얼굴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고 걷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잠시동안의 만남으로 소식만을 전하고 다시 다급히 앞서가기 시작했다.






다음 목적지였던 만실라의 숙소에서 같은 방 침대 중 하나에 클레어가 책을 읽으며 쉬고 있다. 우연치고는 꽤 끈질기다. 어제 사하군 숙소에 들어가기 전 앞질러 가던 팻 일행과 클레어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었지만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헤어졌었다. 그런데 같은 숙소의 같은 방이라니. 팻과 새라는 다른 곳에 숙소를 잡았고, 저녁 식사시간에 다시 만날것이라고 한다. 벌써 5시가 다 돼가는 시간이라서 서둘러 짐정리를 한 후 클레어와 함께 팻 일행을 만나러 갔다.

팻과 새라는 어떻게 된 일이냐며 반가워 했고, 우리는 팻의 알베르게에 딸려있는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독일에서 온 올리도 나타나 함께 할 수 있었다. 올리는 식사 도중 독일 젊은이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를 만들어 준다며 얼음을 넣은 콜라와 환타를 섞어 건넨다. 독일에서는 이 음료를 스페치(Speze)라고 부르며 많이들 즐긴다고 했다. 실제로 독일에서 온 순례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힘들었던 오늘 하루였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걸었다. 먼 길을 걸으니 성취감도 커지는 느낌이다. 내일은 말로만 듣던 대도시 레온에 도착하는 날이다. 까미노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레온 대성당 및 평소에 좋아하던 가우디가 설계한 건물도 볼 수 있는 곳이라 한껏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