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레온, 가우디

MANSILLA ~ LEON, 22th Day

by 이작


구불구불한 담이 흐르듯 이어지는가 하면, 하늘 끝까지 올라 있지만 그 웅장함에 쉽게 시선을 끝까지 올리지 못하는 건물이 있다. 탑 끝까지 이어진 장식들도 예사롭지 않아 자연스레 시선이 흐르지 않는다. 우울하기도 하고 다른 생명체가 사는듯한 착각도 들게 하는 건축물, 어릴 적 가우디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학생시절, 건축을 전공하는 친구 덕에 여러 유명한 건축가들을 소개 받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 직장인이 되도록 잊혀지지 않는 몇 명의 건축가가 있었다. 그 중에 가장 기이하고 이름조차 인상 깊었던 가우디를 오늘 만날 수 있다. 막연하게 성을 좋아하던 내게 그 감정을 구체화 시켜준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숙소를 떠나던 새벽무렵부터 이미 주변의 도시화는 시작되고 있었다. 수많은 현대식 건축물,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많은 차량들이 우리가 도시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까미노 길을 떠나서 처음으로 방문하는 대규모 도시인 이곳은 내가 살던 도시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그 도시 안에서 평소 책과 매스미디어로만 접했던 가우디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가 나를 들뜨게 한다.


팻일행과 함께 출발한 오늘은 그 짧은 거리와 아스팔트 도로덕에 가벼운 마음으로 레온에 도착하여 목적지인 산타마리아(Santa Maria) 알베르게를 찾았다. 이곳은 베네딕틴(Benedictine)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로 다른 알베르게와는 다르게 남, 녀의 방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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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헤어졌던 팻 일행은 이미 도착해서 등록 대기줄의 앞쪽에 서 있었고 난 문 밖 20미터가량 늘어서 있는 줄의 끝에 짐을 내렸다. 커다란 정문을 들어서 20미터쯤 앞쪽으로 테이블 세개를 모아 길게 늘어서 있는 순례자들의 접수를 담당했다.


한참을 기다려 침대를 배정 받고 내부로 들어섰다. 넓은 공간에 2층 침대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내게 배정된 곳은 그 공간의 한 가운데에 침대 두 개를 붙여놓은 곳이다. 침대 사이에 칸막이도 없이 다른 침대가 붙어 있어서 불편할 듯하지만 배정을 받은 곳이라 바꿀 수도 없다. 침대에 걸터 앉아 짐을 정리하고 있자니 어디선가 팻이 나타나 놀라워하는 손짓을 하며 붙어있는 옆침대에 앉는다. 그의 자리였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기막힌 웃음을 지었다. 참 질긴 인연이다.


미사시간에 맞춰 성당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팻과 새라는 드디어 신발을 구입하기 위해 신시가지로 출발 했고, 난 혼자서 구 시가지 구경에 나서본다. 숙소 앞 커다란 광장에서 기타를 치며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순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이다. 축제처럼 즐기며 길을 걷고 있는 무리다.


메세타를 지난 이곳부터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많아지기 시작한다. 버스로 메세타를 뛰어 넘은 사람들과, 이 길에서 가장 큰 도시이니만큼 이곳에서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합쳐지는 곳이다. 덕분에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들이 꽤나 많다. 여러 부류들을 볼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축제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난 시끄러운 광장을 뒤로 하고 레온 대성당을 찾아 나섰다. 워낙 크고 가까운 목적지라 물어보면 바로 찾을 수 있었지만, 어느 곳이나 구시가지 자체는 그다지 크지 않으므로 출발 전 방향만 물어보고 그냥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숙소 앞 광장을 지나자 다시 커다란 광장이 나타났는데 그 한가득 장이 서있다. 직접 만든 쵸리죠, 각종 채소들, 옷가지들, 중국산 장신구들까지 여러 가지 알록달록한 물건들이 광장을 가득채운 장관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재래시장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 커다란 도시 한가운데에서 이런 규모의 재래시장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차에서 팔고 있는 쵸리죠와 마늘, 치즈등이 서울의 재래시장과 다른 풍경이었다.


시장을 대충 한 바퀴 훑고 난 후 옆길로 5분정도 빠져 나가니 바로 레온 대성당이 나타난다. 건물 전체가 눈부시게 하얗고 커다랗다. 잠시 동안 그 빛에 기가 눌려 숨이 멎어버리는 느낌이다. 아름답고 웅장한 라틴 십자가형 배치의 이 거대한 건물은 사람을 흥분시키기도 하고 경건하게 만들기도 한다. 광장 한 가운데 버티고 있는 성당은 광장의 끝에 등을 붙이고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도 시야에 모두 들어오지 않을만큼 거대하다.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시간상 역시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광장을 뺑 둘러 기념품 점만 가득 눈에 들어온다. 한눈에 담기도 어려운 새하얀 대성당을 감상할 수 있는 위치의 바와 레스토랑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음식가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어느새 팻과 약속한 미사시간이 가까워 아쉽지만 급하게 숙소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바쁜 내 발목을 다시 잡은 건 작은 골목 한쪽의 작은 치즈가게였다. 시계를 보고 잠시 주저하다가 선뜻 안으로 들어섰다. 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매장의 내부에서는 꿉꿉한 곰팡이 냄새가 습하게 코를 찔렀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그 축축한 습기와 냄새로 주춤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치즈를 고르고 있어서 힘을 내어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 프랑스에서 봤었던 치즈들과는 조금씩 맛과 향이 다른 치즈들이 진열돼 있고 카운터 위에는 잘라서 파는 커다란 치즈가 놓여있었다.


예전 프랑스 출장에서 맛봤던 블루치즈의 냄새를 각오하고 잘라주는 작은 조각을 입에 넣었다. 브리(Brie)치즈 정도의 단단함과 식감을 가졌고 먹기에도 부담이 없어서 조금 구입하여 걸을 때 먹기로 한다.


팻과의 약속 시간이 채 5분도 남지 않아 버렸다. 난 치즈를 싸 들고 부리나케 성당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약속장소로 정했던 성당의 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살짝 문을 열고 보니 자리에 앉아있던 팻이 윙크를 보낸다. 난 팻의 옆자리에서 치즈 덩어리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스페인어 미사를 드렸다.


미사 후 저녁시간 전까지 혼자 가우디의 건물 보티네스(Casa de los Botines) 저택을 찾아갔다. 지금은 은행건물로 사용된다고 하며, 까사에스파냐(Casa Espana)로 명명되어 있었다. 1층은 전시장으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미 입장 시간이 지나버려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가우디의 건물을 가까이서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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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가우디의 초기 작품으로 후기의 작품들과 비교해 보자면 꽤 평범하기까지 하지만 레온시의 역사적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중세 풍으로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건물들과는 다르게 금형을 이용해 플라스틱으로 한번에 찍어낸 것처럼 답답하리만큼 빈틈 없어 보였고 굳이 누구에게 묻지 않더라도 그 건물 전체가 가우디라고 말하고 있었다.


일행들과 저녁을 먹으러 나선다. 대성당이 보이는 광장주변의 비싼 음식 가격과 좋지 않은 메뉴로 인해 신도시 쪽 식당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순례자 메뉴를 주문하며 앞으로 거쳐갈 커다란 철십자가가 있다는 곳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십자가에서 순례자들은 자신의 짐을 내려놓는다는 의미로 고향에서 가져온 작은 돌을 십자가 아래에 내려놓는 풍습이 있다. 팻과 새라는 아일랜드 집 주변 산에 올라서 작고 좋은 돌을 골라 가져왔다고 한다. 아일랜드에서 집을 지을 때 가장 비싼 값을 쳐주는 돌이라고 한다. 클레어는 아무것도 가져온 것이 없어서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나도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 자료를 준비하며 관련된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준비해 온 것은 없었다. 잠시 무엇을 놓고 올까 생각 하다가 떠나오기 전 어머니가 챙겨주신 아버지의 장갑이 떠올랐다. 한여름 날씨에 상관없이 길을 걷기 시작할 때부터 끼고 있던 이 장갑은 사실 아버지가 생전에 취미로 즐기던 낚시용 장갑이었다. 하지만 길을 걷는데도 이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튼튼하기도 하고 등산용 스틱을 항상 손에 잡고 걸어도 미끄러지거나 헛돌지 않았다. 난 아버지의 유품인 그 장갑을 그곳에다 두고 오기로 결정했다. 사실 난 평생 자신을 버리고 일만 하셨던 아버지를 위해서 납골당에 있는 아버지의 유골을 가져오고 싶었다. 그 넓은 스페인의 들판과 높은 봉우리들은 평소에 아버지가 좋아하던 자연의 모습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아버지는 이상하게도 시골의 자연을 좋아했었다. 어릴 때 함께 산을 오를 때도, 낚시를 위해 찾아 다니던 강도, 시간 날 때 찾아가던 소래 포구도, 한의사 친구인 진우의 봉화 깊은 산골 한의원에서 며칠 묵었을 때도 역시 가장 좋아하던 사람은 아버지였다. 이 때문에 이 커다란 자연으로 아버지의 유골을 가져오고 싶었지만 모든 가족들이 반대했고 결국 내가 가지고 있던 아버지의 장갑을 유골을 대신 하여 그 자리에 두기로 했다. 이야기의 주제가 너무 무거웠는지 주변이 조용해 진다.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내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된다고 생각했고 나 혼자의 감정을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을 드러낼 때가 된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을 믿을 수 있었고, 나도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의 몸상태와는 반대로 점차 편안해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