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스펙트럼 -2

토리네 게스트하우스

by 이작



연습실 문이 열리고 장연이 지친 표정으로 들어왔다. 이미 늦은 새벽 시간이었다. 연습실에서는 영천이 기타를 들고 악보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장연이 놀란 듯 물었다.


“야! 뭐 하냐 이 시간에?”


서장연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영천도 놀라는 눈치다.


“어, 왔냐?”

“집에 안 갔냐? 지금 시간 엄청 늦었는데?”


서장연이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말했다. 새벽 세시 반이 조금 넘었다.


“아, 씨. 이거 좀 고치려고 하는데 될 듯 될 듯 하면서 안 되네? 넌 이 시간에 뭐하냐 여기서?”

“대리 끝났는데 이 주변이라서 그냥 왔다. 여기서 자려고.”

“이제 끝난 거야?”

“아냐, 끝나긴 좀 일찍 끝났는데 교통비 아끼느라 걸어왔지.”

“뭐? 얼마나 걸었는데?”

“한 시간 좀 넘었네. 집보다는 여기가 더 가깝더라고.”

“가깝다며? 병신, 뭐라도 좀 타고 오지.”

“이 시간에 탈것도 없고 돈 벌려면 그런 거 아껴야지. 뭐 매일 사는 게 이렇다.”

“아, 이 새끼 그래서 맨날 숙제 안 해오는 거야?”

“안 하는 게 아니고, 나는 운전하면서도 숙제 하고 있지! 날 뭘로 보고! 근데 단지 맘에 안 들어서.”

“닥쳐!”

“크크크, 근데 뭘 하는 데 그러냐?”

“아, 씨. 여기 간주 부분 애드립 쓸 거 어떻게 해도 맘에 안 드네?”

“그럼 그냥 일단은 기본 펜타토닉 스케일에서 따서 써. 나중에 맘에 드는 거 나올 때 바꾸던가.”

“머리 아픈데 그럴까 그냥?”


서장연은 구석의 접이식 침대를 펼치고는 그대로 눕는다.


“아. 피곤하다.”

“자냐?”


불빛이 부담스러운지 서장연이 한쪽 팔을 얼굴 위에 얹으며 말했다.


“그럼 안 자냐?”

“야. 그리고 이 부분 있잖아. 여기”


장연이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어.”

“야! 잠깐만 좀 봐봐. 여기.”

“아, 진짜! 뭐 어디어디?”


장연은 짜증을 내며 벽에 기대 앉았다. 그의 눈은 악보를 보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영천은 책상을 들고 다가가 그의 얼굴과 악보를 번갈아 쳐다보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 부분이 진행이 이런 식이거든? 그냥 기본적인 코드 진행에 요부분에다가 이렇게 바꿨어. 그러니까 이게 좀 힙하게 들리더라고. 어때? 그럴 것 같지 않냐?”


서장연은 대답 없이 악보를 보고 있다.


“뭘 그렇게 생각해? 뭐 또 이상해?”


아무 말이 없었다. 깊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뜸을 들이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영천의 진지한 질문에 답이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짜식. 놀랐나 보네. 내가 이렇게 까지..”


서장연의 한쪽 팔이 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야, 야! 야! 서장연? 자냐?”


서장연이 코를 골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눈을 크게 뜬 채 아직 악보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 이 새끼. 벌써 잠들었네. 피곤해 보여서 깨울 수도 없고.”


이영천은 얇은 담요를 가져와 장연에게 덮고는 책상을 장연으로부터 멀리 옮겼다. 그리고 계속 기타를 튕기려다가 장연을 보더니 그대로 내려놓고 나가버렸다.






식당의 좁은 창문으로 노란 색 아침 해가 뻗어 들었다. 일찍부터 키보드를 두드리던 아저씨에게 불쑥 들어온 이예진이 인사를 했다.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매니저를 찾는 눈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예진씨. 좋은 아침이에요.”

“네. 혹시 매니저님 어디 갔어요?”

“일이 좀 있어서... 근데, 무슨 일이세요?”

“어제부터 저희 방에 등이 안 들어와서요. 시간이 너무 늦어서 말씀 못 드렸어요.”

“그래요? 제가 갈아드릴게요. 일단 방에 가 계시면, 재고 확인 좀 하고 바로 올라갈게요.”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어제 위층 카페에도 불 안 들어 오던데.”

“그래요? 아마 매니저가 갈았··· 아! 다시 확인해 볼게요.”


아저씨는 하던 작업을 멈추고 재고 프로그램을 모니터에 띄웠다. 형광등 재고가 예상보다 많이 적었다. 의아해 하며 교체 일지를 확인했다.


“이상하네? 이게 사 놓은 지 얼마 안됐는데..”


중얼거리며 상세교체일지를 훑는다.


“어? 지난주에 카페를 두 번이나 교체했잖아? 1층도··· 도대체 무슨 일이야? 물이 샌 건가? 기록이 잘못 된 건가? 비도 안 왔는데. 어디. 점검 일지에는··· 형광등 불량 의심이라고? 결국 이유를 모른다는 거네?”


아저씨는 형광등 두 개와 장갑, 그리고 간단한 수리를 위한 작은 가방을 들고 예진의 집으로 올라갔다.






지저분한 형광등 두 개를 든 아저씨가 땀을 흘리며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 형광등을 올려놓더니 여기저기 냄새를 맡는다. 형광등 하나는 나사를 풀고 완전히 분해해서 기판을 뜯었다.


“이상하네. 천정에 물이 샌 흔적도 안보이고, 여기도 물이 들어가거나 합선 된 것 같지도 않은데 이렇게나 많이 형광등이 죽어? 전에 이런 적이 없었...”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형광등 커버를 뚝 떨어뜨린다.


“여기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안 돼.”


아저씨는 급하게 모든 입주자들에게 전체 공지 메시지를 보냈다.




전체 공지입니다.


오늘 급하게 토리하우스 내부 시설 점검을 실시 예정입니다.

요즈음 형광등이 자주 나가는 현상이 발견되어 점검 예정이니

가능하신 방부터 회신 주시면 먼저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한 점검이라 5분 안쪽으로 확인 가능 하오니 회신 주세요.


감사합니다.






2층으로 들어온 아저씨는 온통 땀에 젖어 있다. 그의 손에 작은 가방과 새 형광등 박스가 들려있었다. 핸드폰으로 체크 프로그램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아, 힘드네. 반지하 체크했고, 펜트하우스, 카페 체크했고, 1층 우리 집은 이상 없고, 1층도 체크 완료. 이제 여기만 남았네.”


주방과 화장실 테라스 등 공용 공간에는 모든 불이 꺼져 있다. 기영이 방 하나만 사용하고 있어서 다른 곳에서는 굳이 불을 켜 둘 이유가 없었다. 아저씨는 내부를 돌아다니며 모든 등을 확인했다. 집 전체 빛의 먼지도 유심히 살핀다.


“역시 이상해. A실하고 B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네. 기영이 방을 확인해야겠는데. 근데 왜 이 녀석은 회신이 없지? 나갔나?”


아저씨는 기영의 방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


“기영씨! 혹시 방에 있나?”

“네! 잠시만요.”


문이 열리고 기영이 얼굴을 내밀었다. 평소답지 않게 깔끔하지 못한 모습이다.


“그래, 기영씨, 잘 있냐? 방은 잘 구하고 있어?”

“네. 찾아보고 있어요.”

“그래. 좋은 방 찾아야 하는데. 다른 게 아니고, 혹시 내가 전체 공지 보낸 거 봤나 해서.”

“공지요? 아, 아뇨. 정신이 없어서.”


급하게 주머니를 뒤지지만 핸드폰은 찾을 수 없었다.


“별건 아니고 요즘 형광등이 많이 나간다고 접수 돼서 전체 확인 중이야. 나 원, 이런 적은 또 처음이라 나도 좀 당황 되네.”

“네 맞아요. 지난주에도 형광등 꽤 많이 갈았어요. 일단 들어오세요.”

“그래 그래. 갑자기 와서 미안, 좀 들어갈게.”


방을 확인하는 동안 송이가 꼬리를 치며 반겼다. 아저씨가 입을 벌리고 크게 웃으며 송이를 쓰다듬는다.


“고 녀석 볼 때마다 이쁘네. 얘 밥은 준거지?”

“네. 아침에 줬어요.”

“그래. 잠시 불 좀 켜 볼게.”


형광등은 들어오지 않았다. 최근에 불을 켠 적이 없던 기영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전기 요금 때문에 불을 켜지 않고 살던 습관으로 책상 위의 스탠드 불빛이나 간접 조명 만으로도 생활 하기엔 충분히 밝았다.


“안 들어오네. 여분 하나 가져 왔으니까 바꿔 달자.”


새 형광등을 받아 든 기영은 천정에 붙어있는 등을 통째로 떼어내고 새것으로 갈았다. 능숙하게 작업이 끝났다. 스위치를 올리자 마자 주광색의 밝은 빛이 방 전체를 환하게 비췄다. 만족한 아저씨는 기영을 보고 기특한 듯 미소를 지었다.


“이젠 전문가가 다 됐네. 허허”

“그 동안 잘 가르쳐 주셔서 그런 거죠. 이제 이런 건 일 같지도 않아요.”


기영이 정리하는 동안 주인 아저씨 특유의 쉰웃음을 보이며 물었다.


“어떻게, 주변에서 집 찾기가 쉽지 않지?”

“그러네요. 이 동네가 워낙 가격이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그래 맞아. 이 동네가 좀 그래. 보기에는 허름해도 많이 비싸. 그래도 좋은 곳 찾아야 하는데. 그럼 수고해. 찾으면 연락하고.”


심각한 표정을 하고 식당으로 들어온 아저씨는 미련 없이 떼어낸 형광등을 재활용 봉투로 던져버렸다.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2층, 거기가 시작이군. 다시 시작됐어. 기영이 녀석을 빨리 옮겨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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