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네 게스트하우스
손톱을 뜯으며 기영이 숙소로 들어왔다. 공을 따라 뛰어 다니던 송이는 멀찍이서 기영을 보고는 바로 방석 위로 향했다. 아직도 무섭지만 그가 걱정에 빠져있다는 것을 아는 눈치였다. 기영은 끙끙거리는 송이를 알아채지 못한다.
“마약도 아니고, 약품도 아니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참을 생각했다.
“은정씨가 이걸로 치료 된 거라고? 위험한 일? 중증 치매? 도대체 무슨 얘긴 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다시 한참을 생각하던 기영은 문득 궁금해 졌다.
“그게 여기는 없나?”
인상을 쓰고 두리번거렸다. 작고 흐린 빛의 먼지 하나가 떠다녔다. 가까이에서 손을 뻗으니 마치 흡수 되듯 기영에게 들어왔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마약이니 뭐니 이런 말들은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려있는 방문을 통해 거실에도 떠다니는 약한 불빛들 몇 개가 보였다.
A실과 B실 앞을 지나쳐 은정이 강아지 털을 다듬었던 방 앞으로 갔다. 천천히 문을 열고 얼굴과 손만 넣어 불을 켰다. 방의 내부는 바로 들어와서 살아도 될 만큼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다. 은정이 송이의 털을 자른 후 정리 해 놓은 것 같았다.
“와! 엄청 깨끗하게 치워 놨네? 공사 할 건데 굳이 이렇게 까지?”
기영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아냐 아냐, 자, 정신 차리고 다시 집중해 보자.”
인상을 쓰고 눈을 작게 뜨자 다양한 크기의 여러가지 색을 가진 빛들이 하나하나 나타나며 떠다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방에 비해 월등히 많고 빛났다.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작은 점의 빛이 피어나듯 하나하나 나타났다. 기영은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빛에 매료되고 있었다.
“와~”
한쪽 팔을 가장 가까운 빛 쪽으로 천천히 뻗다가 주저하듯 팔을 거둬들였다.
“아냐, 아저씨가 지금 나한테는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다시 가까운 빛으로 팔을 뻗었다. 순간 떠다니던 빛이 기영의 팔을 알아챈 것처럼 갑작스러운 움직임으로 꺾이더니 천천히 떠내려 왔다. 그의 주변에서 서서히 속도가 빨라지며 팔을 타고 빙빙 돌아 올라오다가 마치 흡수되듯 사라져 버린다. 놀란 기영은 숨을 멈췄다가 빛이 모두 사라지고 난 후에야 크게 숨을 내쉬었다.
“흡! 휴~ 아, 놀라라. 이거였구나. 지난번에 꿈 꾼 것도. 근데 이게, 뭐지?”
기영은 천천히 문을 닫고 숙소로 뛰어 들어가 서랍을 열었다. 빈 서랍 안쪽에서 이곳을 처음 청소할 때 발견하고는 그대로 던져두었던 필름 통이 굴러 나왔다. 송이가 갑작스런 기영의 움직임에 놀랐는지 제 자리에서 일어나 뱅글뱅글 돌며 기영을 주시했다. 서랍 속의 모든 필름 통들을 주머니에 넣고 거실로 뛰쳐나갔다.
게스트하우스 앞집 계단에 기태가 앉아있다. 들고 있던 흰 통에서 알약 한 알을 꺼내 으드득 깨물었다. 생수 한 모금을 마시고는 다시 한 알을 입에 넣고 어금니로 잘게 부쉈다.
그를 괴롭히던 두통이 조금은 편해진 것 같았지만 만족하지 못했는지 세 번째, 네 번째.. 계속 입에 넣고 씹었다. 결국에는 약 통을 입에 거꾸로 대고 탈탈 털어낸 후 빈 통을 짜증스럽게 집어 던져 버린다. 그의 입에서 불량 식품을 맛있게 깨물어 먹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흰 가루를 꾸역꾸역 삼키던 기태는 생수 한 통을 모두 들이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태의 눈이 불안하게 움직이며 시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눈앞의 화면이 끊어졌다가 흔들리는 것을 반복했다.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 나왔다. 팔로 닦아내도 멈추지 않았다.
“아이 씨, 이게 뭐야. 꺼억~.”
헛구역질과 거품이 지속 되다가 삼켰던 약의 일부를 게워냈지만 증상은 멈추지 않았다. 괴로워하는 그의 시야에 은정이 들어왔다.
사람은 누구나 주변에 빛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는 그 빛을 ‘스펙트럼’이라 불렀다. 기태가 처음 그 빛을 보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빛이 기태에게 주었던 안정감을 처음 느꼈을 때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그것으로 인해 새로운 삶과 인격, 자신감을 얻었지만 반대로 참을 수 없는 두통을 갖게 되었고, 두통을 피하기 위해서 항상 많은 양의 스펙트럼을 찾아 나서야 했다.
발걸음이 가벼운 것으로 봐서 오늘 그녀의 컨디션은 좋아 보였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스펙트럼이라 불리는, 그녀 주변을 감싸는 불빛들이 무한히 솟아나는 화수분 같았다. 은정이 기태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아직 은정은 기태와 닮은 실루엣만 봐도 두려웠으며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 해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당장 그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를 본 이상 두려움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뒤로 돌아 도망치는 것은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은정은 두 주먹을 꽉 쥐고 아무렇지 않은 듯 기태를 향해, 정확히는 기태 앞의 게스트하우스 정문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뚜벅뚜벅 걸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이른 퇴근을 한 탓에 늦은 시간도 아니었고, 게스트하우스 정문 앞 골목길은 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도움을 청할만한 사람은 찾을 수는 없었지만 소리를 지르면 주변의 십 수 명은 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중 최소한 몇 명은 신고를 하거나 그녀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죄를 짓지 않은 자신이 도망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었다. 도망가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저쪽, 기태였다.
웃으며 일어나던 기태는 잠깐 휘청거렸다. 입 주변이 게워낸 약 거품으로 인해 지저분했고 눈도 평소와 다르게 풀려있었다. 평소의 완벽해 보이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기태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은정을 불렀다. 지난 육 개월 동안의 행동으로 미루어 스토커이긴 하지만 물리적으로 그녀를 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가 오면 그렇게 힘이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특별히 그녀에게 해를 끼친 것도 없었는데, 오히려 미용실에서는 은정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만 소리를 지르곤 했었는데 그가 나타나는 날엔 서있기도 힘들었다.
“은정씨 이제 오네?”
다정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은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술 취한 듯 한 말투였지만 은정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대답 없는 그녀를 향해 다시 말했다.
“다른 곳으로 옮길 줄 알았더니 아직 여기 있네? 근데, 걱정 안 해도 돼. 난 이제 그쪽은 관심이 없으니까.”
“그런 사람이 여기서 뭐 하는 거죠?”
“내가 찾고 있는 걸 찾았거든. 내가 찾은 건지, 나를 찾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기태가 살짝 비틀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한쪽 팔로 연신 입 주변을 닦아 내지만 계속 하얀 거품이 흘러 나왔다. 신고를 해야 하나? 은정은 평소와 다른 기태의 모습에 주머니 속 핸드폰을 움켜 잡았지만 두려움에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말을 끝낸 기태는 은정이 다가오던 반대편으로 휘청거리며 걸었다. 은정이 게스트하우스의 문을 열자 기태가 돌아서며 말했다.
“아! 근데, 은정씨한테는 내가 지난 정으로 얘기해 주는 건데, 나보다 저 안에 있는 녀석을 더 경계해야 할 거야. 아직 어떤 놈인지 잘 모르겠지만.”
기태는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들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내가 아니라 저 녀석이 나를 원하는 것 같더라고. 당장 떠나 당신은, 여기서. 하루라도 빨리.”
기태는 알 수 없는 말을 떠들며 취한 것처럼 비틀거렸다. 그리곤 은정에게 다가와 오른손을 뻗다가 닿기 직전에 멈췄다. 온 힘을 다해 자제하는 듯, 떨리는 오른팔을 힘겹게 내리고 웃어 보이더니 다시 은정이 왔던 반대길로 향했다. 기태가 떠난 후 은정은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