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네 게스트하우스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기영과 아저씨는 아무 말없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얘기하던 일본인 두 명은 기영과 아저씨의 어색함에 목소리를 줄이더니, 서로 눈짓을 주고 받고는 조용히 나가버렸다.
기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저씨, 그게 뭐에요?”
아저씨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거 방향제라면서요? 방향제가 어떻게 그렇게 움직이고 빛이 나와요?”
아저씨는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며 턱을 괴었다. 기영은 왼팔을 쭉 뻗고 오른팔로 빛의 움직임을 흉내 내듯 말했다.
“그게 제 팔을 이렇게, 이렇게 타고 올라오다가 제 몸 속으로 들어왔어요.”
아저씨는 힐끔보더니 눈을 피하며 다시 한숨을 내쉰다.
“아저씨?”
주인 아저씨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심지어는 기영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깊은 고민에 빠진 것 같았다.
“이거 저한테는 절대로 열지 말라고 하셨던 거잖아요. 방향제라면서요? 혹시 저 어떻게 되는 거에요? 말씀 좀 해보세요! 아저씨. 이거.”
기영이 계속 따져 묻자 아저씨는 단호하고 조용하게 기영의 말을 끊었다.
“그거!”
기영에게 눈을 맞추며 아저씨는 의자 뒤로 몸을 깊숙이 기대고는 팔짱을 꼈다. 기영을 뚫어지게 쳐다 보던 아저씨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 동안 기영의 머릿속에 수 많은 단어들이 지나갔지만 이 경우에 맞는 대답은 예상 할 수 없었다.
“네가 겪은 것들, 네 몸에는 이상 없을 거야. 약품도 아니고. 오히려 더 좋아질 거야. 그걸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아저씨는 다시 말을 끊고 잠시 뜸을 들였다. 단어를 고르는 것 같았다.
“그게, 마약 같은 거야. 잘 쓰는 누군가에게만 약이 될 수도 있는.”
“마약, 이라고요?”
아저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무슨..”
“3층 카페에 붙어 있는 사진들 봤지?”
“네. 지난번에.”
“그 중에 공통적으로 많이 나오는 사람이 있는 거 알아?”
얼마 전 3층에서 아저씨를 기다리며 확인 했던 그 사람, 건강하고 행복해 보이던 그 사람을 말하고 있었다.
“여러 사진에 공통적으로 젊은 남자가 끼어 있는 건 봤어요.”
주인 아저씨는 팔짱을 낀 채로 다시 머리를 끄덕인다.
“그 사람이, 이 년 전쯤까지 이곳에서 일했던 매니저야. 은정씨를 좋아했다던. 그 친구도 지금 기영씨처럼 불빛을 보고 달려 왔었어. 제발 여기서 작은 일이라도 시켜 달라고. 지금은, 휴~.”
아저씨는 길게 한숨을 쉬며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빛이 불안했다. 긴장한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하듯 힘이 들어가 있었다. 기영이 재촉하듯 물었다.
“왜 그러세요? 그만두고 다른 곳에 가 있는 거 아니에요?”
기영을 돌아본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며 마지못해 입을 뗐다.
“중증 치매로 요양 병원에 입원해 있어. 의식도 없고.”
기영은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뭔가 말을 하려다 멈췄다. 또 다시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한 단어씩 또박또박 힘을 주며 말했다.
“아저씨, 지금 이거, 저 겁주려고 농담··· 하시는 거죠? 아니, 어떻게 그, 젊은 것 같던데, 중증 치매에요? 갑자기? 엄청 건강해 보이던데, 그리고···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돼요? 잠깐 동안에?”
예상했다는 듯 아저씨는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하나를 보였다. 침을 흘리고 있는 치매 환자의 모습이었다. 기영이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영상 위쪽에 날짜와 시간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알아보겠어? 경과를 보려고 주기적으로 날짜 기록해 가며 찍어 두는 거야.”
기영은 그 이전 영상을 확인했다. 그 이전 영상도, 그 이전 영상도 모두 날짜와 옷은 달랐지만 같은 사람이었다. 모든 영상에 초점 없고 의식도 없는 사람이 보였다. 끝도 없이 이전 영상들까지 계속 돌려보고 있는 기영에게 묻는다.
“누군지 알겠어?”
기영의 손이 멈추고 동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눈에 초점도 없고, 머리카락도 다 밀어버리고, 근데 사진에서 본 그 사람이 맞는 것 같아요.”
“내가 보여준 마지막 영상으로 돌아가서, 날짜 한번 봐봐. 기영씨 기억하지 그날? 얼마 전에 은정씨 펜트하우스로 옮긴 날, 그날 내가 직접 가서 찍은 거야.”
기영은 처음 영상으로 돌아가 화면에 찍혀 있는 날짜를 확인했다. 날짜 뿐 아니라 시간도 명확하게 찍혀 있었다. 기영과 통화했던 그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찍힌 영상이었다.
“휴~, 이 녀석. 참 성실하고 똑똑했는데. 하필 그날, 내가 면회를 갔는데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지 뭐야. 그래서 내가 못 왔던 거고. 그날 통화할 때 좀 시끄러웠지?”
기영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끄덕이다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근데, 이거 몸에 좋다면서요? 제 몸에도 들어갔는데, 그럼 저도 이렇게 되나요?”
아저씨는 고개를 양쪽으로 천천히 저었다.
“그렇진 않을 거야. 지금 너에겐 도움이 될 거니까.”
이미 수 십 개의 영상을 직접 확인한 기영은 아저씨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영상으로 찍혀있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 내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그걸, 그걸 아저씨가 어떻게 알아요? 이렇게 된 사람도 있는데. 그럼 아저씨가 알고도 이렇게 만든 거에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기도 해. 내가 데리고 있다가 그런 거니.”
“그럼 이게 진짜 마약, 뭐 그런 거에요?”
아저씨 얼굴에 옅은 미소가 스친다.
“그건 아냐. 약품은 아니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얼마 전에 은정씨도 이걸로 치유된 거고. 직접 봤으니까 알겠지만, 정말 놀라운 변화였잖아.”
“그럼 그게, 은정씨가 좋아진 것도 전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연이 아니었네요?”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영이 더 묻기 전에 말을 끊었다.
“이 빛을 보는 건 특별한 능력이긴 해. 어떻게 보면 선물이기도 하고. 하지만 기영씨, 이건 아주 위험한 일이야. 어렵기도 하고. 그래서..”
무슨 말인지 아저씨가 머뭇거렸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결심한 듯 기영의 눈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난 기영씨가 더 알려고 하지 말고, 이쯤 해서 일을 그만 둬줬으면 좋겠어.”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아저씨는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 같았지만 기영에게는 한 번 더 충격이 가해진 표정이었다. 기영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멍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이런 일을 하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할 것 같아. 결정 한 후에 여기 짐은 천천히 옮겨도 돼. 집 찾아보고 새 일 구한 후에. 아, 그리고,”
아저씨가 충고하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나야 이젠 하도 욕을 먹어서 상관없지만 기영씨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 취급 당하기 싫으면.”
아저씨는 기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무표정한 얼굴로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