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기영, 기태

토리네 게스트하우스

by 이작

컴퓨터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아저씨는 이미 식사를 마친 듯 김이 오르는 커피잔을 옆에 놓고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다. 작은 창문으로 많은 구름이 보였다. 꽤 어두운 아침이다.


“안녕하세요.”


비구름처럼 피곤한 기색의 기영이 들어오며 인사를 했다.


“어 그래 왔어? 좀 쉬랬더니 어제도 늦게 들어온 것 같던데, 잠은 잘 잤어?”

“네. 몇 시간 잤어요. 근데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요.”


주인 아저씨는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


“허, 이 녀석. 아침부터 왜 분위기 잡고 그래 무섭게.”

“여긴 애완동물 안 되는 거죠?”

“그럼. 애완동물 있으면 일거리가 더 늘어나. 냄새 나고. 들어 오는 사람 중에 알러지가 있거나 시끄러워서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거든. 그거 알러지 있는 사람들은 진짜 고생 많이 해. 없는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는데 나도 고양이 털 알러지가 있어서 고양이가 있는 집에는 아예 들어가기조차 힘들거든. 문만 열어도 숨이 막히고 콧물이 줄줄 나오니.”

“잘 씻기거나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알러지나 냄새는 어쩔 수 없어. 왜? 누가 애완동물 데리고 들어오고 싶대?”


불안하게 시작된 대화가 당황스러웠다. 아저씨의 입장은 단호했다.


“안 된다고 해. 우리만 살면 키워 볼 수 있지만 사람들 계속 왔다 갔다 하는 영업장에서는 힘들어.”

“아저씨도 개는 좋아하시죠? 국수 먹으러 가면 항상 동물들 보시잖아요.”

“나? 나야 뭐. 개도 좋고 고양이도 좋고. 앵무새나 물고기도 엄청 좋아하는데 여기선 환경이 안 되니까 못 키우는 거지. 이런데 데리고 오면 우리만 불편한 게 아니라 걔네도 힘들거든. 좁고, 제약도 많고, 사람도 계속 바뀌고 그러니까. 아 근데 왜 자꾸 물어? 뭐, 한 마리 키워보고 싶어서 그래?”


기영은 차라리 사실 대로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어제 제가 요 앞 보호 센터 지나가는데 예쁜 강아지들이 있더라고요.”

“아. 저기 그 큰길 옆에 거기 말이구나? 무슨 보호소 있던데. 거기 사람 손이 안 가서 지저분해 보여도 생각보다 예쁜 애들 많지. 나도 종종 봤는데.”

“네. 거기요. 거기 지나가는데 내일 안락사 시킬 애들이라고 하면서 강아지들을 보여줬어요.”


아저씨는 몸을 뒤로 젖히며 놀란 듯 쳐다봤다.


“그래? 불쌍하게 됐네. 왜 책임도 못질 생명을 그렇게 함부로 데려갔다가 버리는지 몰라.”

“그러니까요.”

“휴~, 생명이 얼마나 귀한 건지 모르는 거지. 동물들을 너무 모르면서 그냥 좋다고 데려오는 사람들이 문제가 많이 생기더라고. 나같이 동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마음이 아파. 그런 거 보면.”

“맞아요. 어릴 때부터 길렀던 친구들은 잘 지내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데려온 친구들은 고생하는 거 종종 봤거든요.”

“데리고 오려면 기본적으로 교육을 받던가, 장난감이 아니고 귀중한 생명이라고 인식이 돼야 하는데 그 쪽 시스템이 뭐 처음부터 그냥 귀엽다고 덥석 물건 사오듯이 가져올 수 있다 보니 문제가 되는 거..지.”


아저씨의 손 움직임이 멈췄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기영을 천천히 돌아보며 물었다.


“기영씨, 설마?”






2층 현관문을 열자 송이가 이미 문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다. 기영이 혼자 왔으면 볼 수 없었을 반응이지만 송이 녀석은 다른 사람이 함께 오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야, 이쁘네? 이 녀석, 다행히도 대형견은 아니구나. 사람도 잘 따르는 것 같고.”


처음 보는 주인 아저씨에게 꼬리를 치며 안기는 모습을 보고 안심이 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배신감이 느껴졌다.


“네. 근데 이 녀석이 이상하게 저만 무서워해요. 때린 적도 없는데.”


송이는 지금도 계속 눈을 맞추며 꼬리를 흔든다


“뭐 이 정도는 키우기에는 무리가 없겠다만, 어디서 키우려고?”

“일단 공사 끝날 때까지만 같이 살다가 저희 연습실이라도 데리고 가려고요.”

“그래, 뭐 개도 깨끗하고 키워봤다니 반대할 이유는 없는데, 시간 될 때 산책이나 부지런히 시켜.”

“어 진짜요? 감사합니다.”


아저씨는 강아지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지층 좌호 시설 점검하면서 벽지 확인도 해야 돼. 내가 점검한 다음에 쓰레기들 가지고 나올 테니까, 기영씨가 마지막으로 뒷정리 부탁해.”

“아저씨, 저, 오늘은 제가 한번 다 해볼게요.”

“왜 갑자기?”

“그냥 일도 많이 배워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주인 아저씨가 경계하듯 말한다.


“아냐. 그냥 하던 대로 해. 내가 지금 바로 갈 테니까, 어.. 그래. 강아지 털이나 좀 빗겨주고 한 삼십 분 정도 있다가 와. 밥도 주고.”


아저씨는 강아지에게 손을 흔들고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 그러자 송이는 재빨리 방석으로 돌아가 다시 기영을 경계했다. 뛰어 도망가는 송이의 뒷모습이 허탈하기도 했지만 송이가 마음을 열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기영은 핸드폰을 꺼내 정확히 10분을 맞췄다.


“오늘은 좀 일찍 가 봐야지. 도대체 왜 맨날 혼자 들어가려는 거야?”


기영은 툴툴거리다 송이에게 말했다.


“송이! 축하한다. 합격이다!! 근데 아저씨 말씀 들었지? 털 좀 잘 빗고 있어, 사고 치지 말고. 오케이? 나중에 언니한테 고맙다고 인사도 하고.”






백미러에 비친 기태의 얼굴이 어둡다. 어두운 고속도로를 다른 차들에 비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도로 양 옆의 노란 가로등 불빛이 기태의 얼굴 위에서 깜박거렸다. 자유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그건기태의 것이 아닌것이 확실했다.


갑자기 한 손으로 머리를 움켜 잡았다. 급히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아보지만 두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외곽 차선으로 변경하고는 주변 도로로 빠져 나갔다.


공원 옆 큰 길에 기태의 차가 멈췄다. 고속도로 가까이에서 작은 호수를 끼고 있는 공원을 찾을 수 있었다. 주머니 속 플라스틱 통에서 알약 한 알을 꺼내 씹었다. 버티기 힘든 듯 인상을 쓰던 기태는 차를 세우고 머리를 뒤로 기댔다. 창문 틈으로 축축한 호수 특유의 향이 섞여있는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산책을 하기에는 조금 쌀쌀한 날씨였지만 호수 주변 산책로에는 시원한 밤바람을 즐기려는 연인들이 많았다. 그들의 얼굴에서 한결같이 평온함이 느껴졌다.


한쪽 외진 구석이 소란스럽다. 젊은 남자들의 무리가 대치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불량해 보이는 그들 가까이로는 다가가지 않았고, 누구 하나 말리려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동네 불량배들의 시비라고 치부해 버리고는 그들의 싸움에 휩쓸리지 않도록 다른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인상적인 것은 그들 팔에 새겨진 한결 같은 모양의 타투였다. 마치 그들의 소속과 계급을 정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태가 입맛을 다시며 그들에게 다가가 가까운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도 가까이 오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기태는 팔짱을 끼고 태연한 표정으로 싸움을 즐겼다. 어떻게 보면 두 무리의 게임에 붙여진 심판처럼 보이기도 했다.

분위기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누구 하나라도 섣부르게 움직였다가는 당장에라도 육탄전을 벌일 기세였다. 그 상황을 경계하는 것처럼 서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로 으르렁거리지만 마치 싸움의 룰을 정해 놓은 것처럼 그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양쪽 모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 했다.

사람들이 그 곳을 피해 사라지자 기태가 박수를 치며 다가갔다.


“아~ 참, 이거 지루해서 못 보겠네. 남자들끼리 모여서 말 싸움들 하셔? 여기가 공공장소라서 부끄러워서 그래?”


험악한 분위기의 아홉 명의 시선이 동시에 기태에게 쏠렸다. 기태는 그들을 쭉 돌아보고는 얼굴 가득 웃음을 보였다.


“뭐야?”

“아니 아니, 날 보지 말고. 하던 거 계속 하시라고. 혹시 서로 말싸움 하다가 서로 반한 건가? 뭘 그렇게 쳐다 보고만 있어? 양쪽에 쪽 수도 안 맞네.”

“그냥 가던 길 꺼지시지? 형님들 지금 대화 나누는 거 안 보여?”

“아이구, 형님들 이셨어요? 혹시 상대방 답답하게 만들어서 죽이려는 거야? 기다리다 답답해서 내가 죽겠네”

“이런 씨~”


무리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기태에게 주먹을 날렸다. 아무 쪽에도 속해있지 않은 기태에게는 굳이 자제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기태는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며 그를 밀어 버렸다. 이상하게도 기태를 지나친 그 사람은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린다. 그의 얼굴이 바닥에 닿은 채로 밀리며 피가 흘러 나왔다. 기태는 놀라는 척하다가 어깨까지 흔들며 웃었다. 같은 무리의 사람들이 쓰러진 사람을 뒤집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초점이 없어져 버린 채 몸이 굳어버린 그의 한쪽 얼굴이 바닥에 밀려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놀란 무리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 났다.


“이 아저씨는 어디가 많이 아픈가 보네. 여러 사람 겁주더니 환자였어? 풋.”


그 말에 같은 무리의 두 명이 기태에게 덤볐다. 역시 그들을 피하며 손으로 밀어버리자 기태의 바로 옆에서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그들의 바로 뒤에서 한 명이 튀어나와 주먹으로 기태의 얼굴을 가격했다. 얼굴이 살짝 돌아갔지만 막상 쓰러진 건 기태를 쳤던 그 사람이었다. 그 역시 정신을 잃고는 일어나지 못했다. 심지어는 기태를 쳤던 그 모습 그대로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기태의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기태는 입술의 피를 손가락으로 닦더니 주먹을 쥐며 소리를 질러 댔다.


“아이씨! 피 나잖아!”


남아있던 다섯 명이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눈치채고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치자, 기태는 다시 침착하게 웃으며 양 주먹을 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리고는 더 이상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한 신호를 보내며 한 걸음씩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이 겁을 먹고 도망치려 하자 기태가 왼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오른손 손가락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의 오른손은 악수를 청하고 있다. 한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다. 서로 맞잡은 손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두 명 모두 미소가 보였다.

순간적으로 기태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고는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남아있던 네 명이 동시에 기태에게 달려들고, 손을 잡고 있던 한 명은 두 손으로 기태의 오른팔을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당겼다. 하지만 덤볐던 네 명은 기태에게 닿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버렸고,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은 겁에 질려 천천히 놓으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기태의 손에 잡혀 있었다. 몸부림을 치며 빠져 나오려고 하다가 결국은 눈이 뒤집히며 쓰러져 버렸다. 그 잠시 동안 기태의 눈이 검게 변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쓰러진 사람들은 모두 초점을 잃고 입을 벌린 채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창고를 뒤지던 기영이 약품 하나를 찾아 청소 가방에 넣었다. 오늘은 간단한 뒷마무리를 한다고 해서 별로 부담이 없는 날이었다. 기영은 미리 필요할 만한 물품들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이미 대부분의 일들은 몸에 익힌 상태라서 특별히 시간이 걸리거나 어려울 것도 없었다. 게다가 아저씨가 미리 들어가서 정리나 설비 체크를 마친 후에 들어가므로 특별히 할 일 이라고는 청소밖에 없었다. 기영은 창고에서 몇 가지 약품을 챙기고 식당으로 들어와 구석에 놓여있던 청소 용품을 가방에 넣었다.


준비가 거의 끝날 무렵 기태가 들어왔다.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그가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기영의 왼팔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기영은 가방을 떨어뜨리며 왼팔을 붙들었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은 듯 기태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토리네 게스트하우스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여기서 일하시는 분인가 봐요?”

“네. 그런데요.”


기태는 기영의 존재를 무시하며 식당을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기영에게는 시선조차 맞추지 않고 그를 지나쳐 이것저것 손으로 만지며 물었다.


“혹시 여기서 하루만 묵을 수 있나?”

“아뇨. 여기는 여성 전용이라서 남자 분은 지내실 수 없어요.”

“아, 여성 전용이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아저씨 어디 갔어요?”

“누구시죠?”

“아니, 나 아저씨 좀 만나러 왔는데 아저씨 어디 있어요?”


건들거리며 말하는 모습도 맘에 들지 않았지만 기태에게서 알 수 없는 불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모르겠는데 무슨 일이세요? 저한테 말씀하시면 전달해 드릴게요.”

“아 그럼 됐고, 혹시 여기 이은정이라는 사람 있죠?”

“이은정요? 모르겠는데요, 그런 분.”

“아, 진짜 교육은 잘 시켰네. 이 아저씨.”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죄송하지만 그만 나가주세요.”


기태는 못들은 척 웰컴 쿠키 하나를 집더니 입에 넣는다.


“아저씨 언제 와요?”

“모르겠어요. 나가 달라고요.”


기태가 위협적인 걸음으로 다가 왔다. 기영의 얼굴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치고 한참을 노려 보다가 침착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오면, 다음에 또 오겠다고 전해줘요, 응?”


기영은 두 주먹을 꼭 쥐고 뚫어지게 쳐다봤다. 기태는 기영의 얼굴 앞에서 손가락을 흔들며 노려보다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기태가 가까이 다가오자 기영의 왼쪽 손가락이 마치 갈고리처럼 벌어지며 핏줄이 튀어 나왔다. 기영은 양손을 뒤로 옮기고는 손목을 단단히 잡는다.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기태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죽을 만큼 싫었다.

기태가 나가버리자 왼손의 떨림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기영은 떨어뜨렸던 청소 가방과 스팀 청소기를 들고 나가려다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선다. 기영의 눈에도 기태와 같은 검은 색이 나타났다. 잠깐 사이에 입이 벌어지고 두 눈이 까맣게 변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린 기영은 아주 잠깐 눈을 깜박였던 것 같은 느낌만 들었을 뿐인데 들고 있던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뭐지? 이상했는데?”






반지하의 현관문이 덜컥 열리며 청소 도구를 든 기영이 쳐들어오듯 발을 디뎠다. 필름통을 들고 있던 아저씨는 천정 바로 아래에서 뭔가를 잡으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저씨! 저 심심해서 일찍 왔어......요.”


도둑질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아저씨의 당황한 모습이 보였다. 기영이 들어가자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뭐야?!”


아저씨 손에 필름 통이 들려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 동안 연습한 방식으로 눈을 찌푸렸다. 기영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통이라서 아저씨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주변이 뿌옇게 흐려지더니 둘 사이에 다섯 개의 서로 다른 불빛들이 하나 하나 나타나고, 각자 둥둥 떠다녔다. 다른 차원에서 3차원으로 뚫린 바늘구멍 같은 한 점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저씨의 공격적인 목소리보다 떠다니는 빛들이 놀랍도록 아름다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저씨의 큰 목소리가 기영의 귀에서 점차 멀어졌다.


“야! 뭐 하는 거야 여기서! 네가 이렇게...”


빛의 흐름에 따라 기영의 시선이 같이 움직였다. 소리를 지르던 아저씨는 기영의 시선이 빛을 따라가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기영의 시선을 따라가며 당황한 듯 물었다.


“보이냐?”


기영은 놀라고 황홀함에 빠져 대답했다. 아니, 대답한 것 같았다. 머릿속은 대답을 했는데 말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불빛들에 집중하느라 정확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게..., 이게 다 뭐에요?”


가까이 있는 빛으로 손을 뻗었다. 가까이 있던 불빛 하나가 자석에 끌리듯 다가오더니 손바닥을 통과했다. 놀란 기영은 숨을 들이 쉬고는 그대로 멈췄다. 그 빛은 다시 손바닥 위로 통과하고, 팔 주변을 돌며 타고 올라오면서 작아지다가 결국 기영의 몸 속으로 사라졌다. 겁이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참았던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아득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시선을 아저씨에게 돌리자 그가 항상 차고 다니던 허리춤 가방의 열린 틈으로부터 수많은 빛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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