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네 게스트하우스
송이의 털을 고르며 따지듯 질문하던 은정의 손이 멈추더니 기영을 빤히 쳐다보며 굳어 버렸다. 그녀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영혼도 없는 인형이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데려와서 씻겼어요. 저도 강아지 좋아해서···”
은정은 품 안의 강아지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주르륵하고 눈물이 흘러 내렸다. 송이는 아직 심하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송이를 품에 꼬옥 안아 올리자 가까워진 은정의 얼굴을 핥으며 그 작은 몸으로 오히려 은정을 위로하고 있었다.
“내일 아저씨께 잠시라도 여기서 키우게 해 달라고 허락을 받아야 해서 급한 대로 씻겼거든요. 근데 그 뭉쳐있는 털이 지저분해 보여서 자르려고 했는데, 안해봐서 그런지 이상하게 피부를 자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주저하고 있었어요.”
“피부요? 털을 자르는데 피부가 왜 잘려요. 하하. 제가 얘, 예쁘게 다듬어 줄게요.”
은정이 송이를 눈높이까지 올리고는 다정하게 얘기했다. 웃고 있지만 동시에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녀의 감정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위로가 되고 싶었다.
“어? 울다가 웃으면 큰일 나는데..”
은정이 잠시 기영을 째려봤다. 기영은 농담이 통하지 않자 무안해 하며 얼버무린다.
“울면서 웃으면 괜찮을지도..”
기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은정이 송이를 향해 다정하게 말했다.
“송이야, 너 집사님이 겁쟁이네. 언니가 대신 예쁘게 해줄게.”
“정말요? 그렇게 해주시면 아마 아저씨도 좀 쉽게 허락해 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정 안되면 저희 연습실에서 키워 보려고요. 혹시 알아요? 얘가 세계 최초로 록 음악 하는 강아지가 될지. 하하하.”
송이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던 은정의 표정이 사라지고 무표정하게 기영을 쳐다보다가, 무시하듯 기영의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화려한 장식이 보인다.
“저 방 하나만 쓰고 있는 거죠? 털 날리고 하니까 제가 다른 방에서 다듬을게요. 일단 제 숙소에서 필요한 것들 가져와야 하니까 잠시만 안고 계세요.”
강아지를 던지듯 맡기고 나가려 하자 낑낑거리며 은정을 찾았다. 은정이 잠시 멈칫하더니 뒤돌아서 무표정하게 말했다.
“기영씨, 멍한 줄 알았는데, 괜찮은 면도 있네요?”
그녀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보이고 있다.
작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든 은정이 옆으로 누워 있다. 잘려진 털은 깨끗하게 비닐 봉투에 담겼고 은정의 주변을 송이가 뛰어다니며 작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송이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강아지 같았다. 그 작은 입으로 손을 물기도 하고 얼굴을 핥기도 했다. 송이의 뛰어다니는 모습을 쫓으며 웃고 있었지만 아직 가끔 눈물을 훔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뛰어 다니는 송이가 그녀를 더 슬프게 했다. 은정은 작은 놀이용 공을 멀리 던졌다.
“자, 이거 가져와 봐. 송이야.”
송이는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바로 공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아, 송이야, 차라리 좋다. 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까.”
다시 눈물을 닦았다. 송이는 은정의 바로 앞으로 공을 물고 와서 재롱을 부렸다. 하지만 절대 물고 있는 공을 놓지 않는다. 송이 입에 있는 공을 뺏어 다시 허공으로 던졌다. 공을 향해 뛰어가는 송이의 뒷모습이 뒤뚱거리며 뛰어 노는 딱 철 모르는 강아지의 그런 모습이었다.
“어머, 너 이런 것도 할 줄 아는구나. 어쩜. 그럼 이것도 알려나? 송이, 소온~.”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송이는 왼쪽 발을 은정의 오른손 위에 올리고는 혀를 내밀고 씩씩거렸다.
“너 그 동안 많이 배웠구나? 근데 왜 아직?”
은정은 송이를 안아서 얼굴에 비볐다.
“송이야~ 저 아저씨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그치? 그러니까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꼭 행복하자, 우리.”
눈물이 계속 흘러서 송이를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양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웃음이 나오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시계가 새벽 두 시 오십 분을 가리켰다. 기영이 강아지를 기다리며 필름통 보는 연습을 하다 보니 세 시를 지나 세 시 삼십 분을 가리킬 때도 기영은 같은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다. 가끔씩 필름통을 주먹에 숨기고 등 뒤로 보냈다가 갑자기 앞으로 가져오며 쳐다보기도 했다. 필름통에 집중할 때마다 기영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찌그러졌다.
새벽 네 시가 가까워지자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영은 빠르게 서랍 속에 필름통을 숨겼다. 문을 열자 깨끗하게 털이 정리된 송이를 안고 은정이 서있었다. 조명이 그녀를 단독으로 비추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빛났다. 심지어 안고 있던 강아지조차 조명에서 벗어난 듯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두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아직도 가끔씩 흐르는 눈물을 빠르게 닦아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영의 멍한 표정을 보고는 은정이 눈앞에서 손을 흔든다.
“여보세요? 매니저님? 매니저님? 기영씨?”
“아, 아. 네. 잠시 좀. 어. 근데 눈이... 괜찮으세요?”
“네에. 괜찮아요. 근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 네.. 예뻐.. 서요.”
은정은 밝게 웃으며 강아지를 안아 올렸다.
“그쵸? 얘 진짜 예쁘죠? 예전에는 짧은 시간에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해서 잘 몰랐는데 얘만 이렇게 따로 공들이니까 너무 예쁜 거 있죠.”
“그러네요.”
“그럼 내일, 아니, 벌써 오늘이네. 하하. 아저씨께 말씀 좀 잘 해주세요. 송이 매일 볼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네. 그래야죠. 잘 될 거에요. 제가 열심히 설명해 볼게요.”
“그럼 잘 부탁 드려요. 전 내려가서 정리하고 이만 자야겠어요.”
은정은 기영에게 말하면서도 강아지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은정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기영을 알아채지 못했다.
“밤이 늦었는데 정말 고마워요.”
“아니에요. 제가 오히려 고맙죠. 저 송이 보러 종종 와도 되죠?”
“그럼요. 저는 알바 끝나면 새벽까지 연습실에 있는데 혹시 저 자리 비우는 시간에 시간 되시면 잠깐씩 얘 좀 챙겨주세요.”
“그럴게요.”
“송이, 라고 했죠? 강아지 이름이. 얘 데려오면서 이름을 못 물어봤어요.”
“네 맞아요. 이름도 예쁘죠? 송이. 제가 미용실 끝나는 시간이 일정치는 않지만 대부분 돌아오면 매니저님 없는 시간이거든요. 그럼 제가 얘 데리고 나가서 여기 주변 산책 시키고 올게요.”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안 그래도 제가 항상 늦어서 걱정 이었거든요. 여기 비밀번호는 위층 카페하고 같아요.”
“ 근데 강아지 밥은 사오신 거에요?”
은정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네. 밥은 저기, 저쪽에 있고요, 줄은 저쪽에 있어요. 얘 평소에 지낼 자리는 여기에요.”
은정에게 강아지 제품 놓아둔 곳을 일일이 보여 주며 말했다.
“필요한 건 거의 사왔네요. 간식 빼고.”
“아! 간식을 안 사왔네.”
“제가 얘 좋아하는 간식 알고 있으니까 다음에 사올게요.”
“진짜로요? 고마워요. 사다 주시면 저도 다음에 살 때 참고 할게요. 그리고 여기 2층은 저밖에 안 쓰고 있어서 일단 거실에 풀어 놓으려고요. 나중에 방 하나씩 공사 끝나는 곳 생기면 그때부터는 놀이터가 차츰 좁아지겠지만요.”
“근데, 강아지 키워 봤어요?”
“네. 어릴 때 부모님이 계속 키우셨어요. 지금은 없지만.”
“아. 그래서 잘 아시는구나. 어쨌든 좀 안심이에요. 아예 모르는 사람들은 고생만 하다가 결국 버리더라고요.”
“저도 안 키운 지 꽤 돼서 많이 좀 물어봐야 해요. 그나저나 손질 해 주시니까 얘가 아예 다른 강아지 같네요?”
“그쵸? 그럼 저는 이만 내려갈게요. 우리 송이 잘 키워주세요.”
은정이 도구들을 챙겼다. 잘라낸 강아지 털도 비닐 백과 작은 휴대용 진공 청소기에 한 가득 담겨있었다. 은정이 돌아간 후 강아지를 여기저기 돌려보니 새삼스럽게 더 예뻐 보였다.
“짜식, 예쁘긴 예쁘네. 근데 왜 넌 날 이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강아지를 내려놓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방석으로 뛰었다. 흐뭇해진 기영은 다시 필름통을 꺼냈다.
어느 샌가 필름통이 점점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새벽이 되자 원하면 바로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이 하나의 점이 아니고 여러 가지 먼지 크기의 빛들이 통 안에서 질량이 없는 것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마치 민들레 씨앗처럼 떠다니고 있었는데, 그 각각은 독립적이며, 만날 때도 합쳐지거나 튕겨나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