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빛

토리네 게스트하우스

by 이작

주머니를 모두 비운 기영은 기타 가방의 주머니를 열었다.


“아! 방향제 통을 여기 넣었었네?”


책상 위에 필름 통을 올리려다가 통이 넘어지며 한쪽으로 굴렀다. 투명하지만 무지개 색이 가끔씩 보이는 통이 책상 끝에서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통이 멈출 때까지 그의 시선이 따라가고, 뛰어다니던 강아지도 호기심이 생겼는지 필름통을 따라갔다. 책상 아래 깊은 곳에서 멈추자 기영이 허리를 숙이고 손을 뻗었다. 낮은 자세에서 강아지와 눈이 마주치자 기영은 최대한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씻으니까 좋지 않니? 강아지야?”


기영이 최대한 성의를 보였음에도 말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자기 방석으로 뛰어가 버렸다.


“야! 야! 아, 저 녀석. 쉽지 않네.”


필름통을 책상 위에 올리곤 똑바로 서 있는 통을 뚫어지듯 들여다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구조상 통 안에 방향제를 넣으려면 특수한 기계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저렇게 생긴 병에 방향제든 뭐든 향이 나는 기체를 손으로 넣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근데 도대체 이 안에 뭐가 있다는 거야? 여기다 기체를 넣은 거라고? 어떻게? 주사기로? 뭐 그런 거 넣는 기계가 따로 있나?”


기영은 통을 이리저리 돌리며 특별한 입구가 있는 지 확인하다가 이내 포기한 듯 침대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기영의 온몸에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결국 왼팔을 얼굴에 올리며 한숨 섞인 푸념이 흘러나왔다.


“아~, 몸이 침대 아래로 꺼져 버리는 것 같네.”


젖은 옷을 그대로 입은 채로 눈을 감았다. 잠이 들려는 찰나, 책상 쪽에서 번쩍 하는 불빛이 느껴졌다. 기영은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어? 이거 꿈 아니잖아?”


이번에는 반드시 원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로등 불빛 차단을 위해 암막 커튼을 쳤다. 그리곤 필름 통을 제외한 모든 물건들을 서랍 속으로 쓸어 넣어 버렸다. 그 상태에서 방금 전과는 다른 자세로 누워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반응이 없었다.


“에이. 진짜 헤드라이트였나 보네. 내가 미쳤나? 이런 말도 안 되는 거 가지고 뭐 하는 거야? 어떻게 저 아무것도 없는 통에서, 에이!”


기영이 다 포기한 듯 돌아누워 잠을 청했지만 채 오 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 번쩍 하는 빛이 느껴졌다.


“아! 씨, 뭐야. 창문도 아닌 거야? 너무 밝아서 잠을 못 자겠는데 뭔지 모르겠네. 꼭 잠들려고 하면 그래!”


아무것도 없는 책상 위에 우뚝 서있는 필름 통을 쏘아봤다. 여전히 빈 통이었다. 이번에는 앉은 채로 머리를 벽에 기대고 잠을 청했다. 잠들기 전 고개가 떨어지려는 찰나에 번쩍 하는 빛이 나타났다. 여러 가지로 자세를 바꾸며 잠을 청했지만 어쨌든 빛이 보였다. 결국 필름통을 적극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하며 책상과 반대쪽에 있는 협탁 위로 옮겼다. 잠시 후 협탁 위에서 밝은 불빛이 반짝였다.


“진짜로 뭐가 반사되는 게 아닌가 본데? 여기서 자는 척을 해볼까? 혹시 누가 저기다가 무선으로.. 아냐, 아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저거 아무것도 없는 빈 통인데? 혹시, 내가 잘 때 어떻게 하지?”


몇 번 팔과 다리의 위치를 바꾸며 중얼거리다가 조용해지며 잠이 들려는 찰나에 필름통에서 다시 번쩍하고 빛이 나타났다. 기영은 벌떡 일어나다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눈도 반밖에 뜨지 못한 상황에서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혼자서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중얼거렸다. 빛이 보인다는 종류의 이야기였다.


“어? 어?...”


자신의 뺨을 때리고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려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이번에는 일어나기 쉽도록 등을 침대 뒤쪽에 기대고 앉아서 기다렸다. 다시 불빛이 번쩍하고 나타났다.


“엇!! 우와!! 저거!”


기영은 튕겨 오르듯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필름통을 가리키고 웃으며 외쳤다.


“저 필름 통 맞네!! 빛이 반사되는 것도 아니고, 저기서 나오는 거네!! 하하하. 저거. 저거. 나 미친 거 아니야, 하하하.”


승리감 같은 것이 느껴져 한참을 웃던 기영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아무것도 없는데 빛이 어디서 나와? 어? 어디서? 저 통에서? 저 빈 통에서? 장난해 지금? 아냐 아냐. 방금 그 자세로 다시 한번 해보자. 이번엔 움직이지 않기.”


빛이 보였던 자세로 한참을 쳐다보자 통 안에서 희미한 불빛이 켜지더니 차차 밝아졌다. 기영은 그 자세 그대로 환호를 지르다 벌떡 일어나 통을 집어 들었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며 아저씨에 대한 의심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와, 이거 뭐야 이거. 대박인데? 진짜 밝아. 하하하! 근데 아저씨가 왜 이거를 나한테 준거야? 이거 방향제라더니 플래시였어? 이런 거 말도 안 해 주고 왜? 이거 진짜 통 안에 무슨 약품 같은 거 넣어 놓은 건가 보네? 뭔가 이상한데? 그러고 보니 요즘 계속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했어.”


의심 쩍은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하다가 눈이 감기며 고개가 꾸벅 떨어졌다. 기영은 다시 눈을 크게 뜨고 벌떡 일어났다. 잠에 취한 그의 몸은 연신 휘청거렸다.


“아. 안되겠다. 커피나 한잔 더 가져와야지.”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올라간 카페에 불이 켜져 있다. 보통은 일과 시간이 지나면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항상 불을 꺼두는 곳이었다. 누구든 그 이후에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지금 같은 늦은 밤에는 보통 비어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은정이 혼자 컴퓨터를 켜고 집중하고 있다.


“어? 안녕하세요. 이 시간에 뭐 하세요?”


은정의 반응은 형식적이고 차가웠다.


“안녕하세요. 찾아볼 게 있어서요. 같이 방 쓰는 사람들 불편 할까 봐 왔어요. 근데 매니저님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아. 네.. 그게, 그게, 아! 커피 좀 가지러 왔어요. 여기, 이 커피요. 할 일이 좀 있어서.”


기영이 캡슐 하나를 꺼내 보이며 뭔가 어색하게 커피머신에 넣었다.


“그러시구나.”


은정은 관심 없는 듯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돌렸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커피머신을 보고 있다가 힐끔힐끔 은정을 훔쳐봤다. 컴퓨터 위 그녀의 손에 붙어 있는 밴드가 눈에 띈다.


“근데요. 그 손, 괜찮으세요?”

“네? 아! 이거요?”


은정은 넓은 밴드가 감겨있는 왼손을 들어 보이더니 책상 아래로 숨기며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좀 다쳤어요.”

“사실은, 그때 저 거기 있었는데.”


은정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기영을 쳐다봤다.


“거기요?”

“네. 은정씨 미용실에. 그날, 손 다치신 날요.”


은정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은정은 의외라는 듯 기영에게 돌아 앉았다. 일하는 중이니 건드리지 말라고 써 놓은듯한 그녀의 표정과 태도가 살짝 무너졌다.


“진짜요? 난 몰랐는데.”

“그때 그, 앉아 계시던 남자 손님이 좀 심하게 서두르더라고요.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아, 네. 맞아요.”


은정은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마우스 휠을 움직이며 별 것 아닌 듯 말했다. 기영과 말을 하기 귀찮은지 빨리 대화를 마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몇 달 전부터 만나자고 하는 거 계속 싫다고 했더니 거의 매일 와서 시비를 걸고 그랬어요. 감정이 올라와서 순간 방심했더니 이렇게 되네요. 근데 최근에는 무슨 일인지 안 나타나요. 이젠 질렸나 보죠 뭐.”

“아. 그런 사람들이 진짜로 있네요?”

“그럼요. 꽤 있어요. 이렇게 사람 대하는 일 하다 보면 다 그렇죠 뭐.”

“지금은 괜찮으세요?”

“네?”


은정이 경계하듯 물었다.


“그 손요.”

“네. 지혈도 잘됐고 그 사람도 안 나타나고. 지금은 괜찮아요. 고마워요.”

“괜찮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은정이 갑자기 생각 난 듯 기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 그럼 혹시 그때, 음료수 몇번씩 리필 하던 그분들?”

“어? 네.”


장연과의 은밀한 음료수 리필 사건이 떠올랐다. 장연과 기영, 둘만의 은밀한 비밀을 어떻게 은정이 알고 있을까? 괜히 말을 시켰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마도 그때 장연과 했던 말들을 모두 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 올랐다. 설마.. 장연과의 대화는 은밀하게 이루어 졌으니 못 들었을 것이고 더 묻기 전에 빨리 대화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은정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큰소리로 웃는다. 부끄럽긴 해도 은정의 웃는 모습이 나쁘지는 않다.


“하하, 재미있네요. 여기서 또 이렇게 만나고.”

“그러게요. 세상이 좁아요.”

“근데 전 그때 매니저님 못 본 것 같은데? 그때 공짜 음식 드시던 분이 세 분이 왔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세 분 들어 왔길래 머릿속으로 인원 배정 생각하고 있었는데.”

“네. 맞아요. 그때 약품 떨어뜨렸을 때, 제가 주워 드렸어요.”

“그래요? 제가 그땐 좀 당황해서 사실 거기까지 기억은 안 나요. 떨어뜨리긴 했는데. 지혈하고 돌아왔더니 그 사람도 가고, 세 분도 가고, 원장님하고 직원들이 웰컴 쿠키 다 먹었다고 투덜거리고 있었거든요.”

“네에.”


이쯤 되면 더 이상 장연과의 둘만의 비밀은 아닌 것이 틀림없었다. 은정의 웃음소리에 기영의 얼굴은 불타는 듯 달아 올랐다. 뜨거운 커피를 아직 마시지도 않았는데 온기가 얼굴로만 쏠리는 기분이었다. 은정은 재미있는지 입을 가리고 한참을 웃는다.


“근데 괜찮아요. 세 분이 다 ‘결국엔’ 머리하고 갔다고 얼마나 고마워했는데요.”

“...”

“직원들은 그때 뒤에 앉아있는 두 분이 서로 음료수 받으러 가라고 하는 거 다 들었다고...”


기영의 붉어진 얼굴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정은 한마디하고 웃고, 한마디하고 웃고를 반복했다.


“헉. 그게 저였는데.”

“아. 그렇구나. 하하하.”

“그때 저희도 한 명한테 갑자기 끌려간 거여서. 사실은 머리 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간식만 먹고 있었는데. 어쨌든 그날 약품 주워 드리면서 은정씨 손톱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아, 이거요?”


은정이 다시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조금 모양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도 화려하다.


“네. 보통들은 그렇게 하지 않던데.”

“맞아요. 일이 주로 손을 써서 하니까 관리도 어렵고 걸리적거려서 안 해요. 샴푸는 절대 못해 드리죠.”

“근데 안 불편 하세요?”

“네. 뭐, 전 이게 더 좋더라고요. 제일 먼저 노출되는 부분인데도 손을 많이 쓰니까 험해지는 것 같아서 그냥 더 신경 쓰는 거에요. 매니저님처럼 이걸로 기억해 주시는 분들도 꽤 있어요. 어떤 분은 손톱 미용사라고도 불러요. 웃기죠? 손톱 미용 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라도 기억해 주시니 결국엔 좋은 거죠. 그리고 이젠 제가 샴푸까지는 직접 안 해드려도 되거든요.”

“맞다. 그때 느낌이 은정씨가 좀 높은 사람인 것 같았어요. 원장님이 칭찬도 많이 하시고.”

“하하. 원래 그렇게 칭찬 받을 만한 사람은 아닌데, 원장님이 좋은 분이라 그래요. 최근에 제가 좀 속을 썩여 드렸는데 아직도 믿어 주시나 봐요. 감사하죠.”


은정의 웃음이 줄어들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저, 그러면 저도 급하게 좀 할 게 있어서.”


은정은 아직 얼굴에 웃음기가 남아있는 채로 다시 컴퓨터로 향했다.


“네.”


기영이 눈치 없이 그대로 서있자 은정이 힐끔힐끔 보다가 말했다.


“저, 조~기 커피 다 나왔는데.”


눈짓으로 기영이 뽑아 놓은 커피를 가리켰다. 이미 다 내려진 커피에서 김이 오르고 있다.


“커피요? 아, 네. 그러니까요. 헤헤.”

“그럼 수고하세요.”

“네.”


기영은 커피잔을 들고 나가려다가 유기견 보호소 자원봉사자의 말이 떠올랐다.


'애견미용 자원봉사 해주시는 언니가 손을 다쳐서 몇 주 못 봐줘서 지저분한데 실은 정말 예쁘고 착한 애에요. 제발요.'


기영은 다시 은정을 돌아봤다. 손가락의 밴드가 신경 쓰였다. 은정은 이미 컴퓨터를 보며 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정의 집중력을 잠시 깨뜨리더라도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저, 혹시요, 죄송한데요.”


은정이 피곤한 기색으로 기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

“혹시 미용사시면, 애완동물 미용 같은 것도 할 줄 아세요?”

“애완 동물요?”

“네. 뭐, 강아지 미용 같은 거요.”

“아아, 그거 원래 미용 하는 사람들이 하는 분야는 아닌데, 그거는 따로 배워야 하거든요. 근데 저는 동물 좋아해서 일부러 배웠어요. 직업 때문에 가위는 좀 친숙하잖아요.”

“아!”

“왜요? 아는 강아지라도 있으세요?”

“네.”

“그럼 언제 한번 데려오세요. 제가 시간 될 때 깨끗하게 다듬어 드릴게요. 전 요 앞 가까운 곳에서 유기견 자원봉사 꾸준히 하고 있으니까 초보는 아니에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기영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 데서 봉사하면 강아지들도 깨끗해지고 주기적으로 연습도 할 수 있어서 서로 좋거든요. 근데 최근에는 손가락 다쳐서 몇 주 못 갔네요.”


은정은 다친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안 그래도 거기 제가 예뻐하던 아이가 있어서 이거 떼면 제일 먼저 가보려고요. 걔네들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하고 다르게 하루만 손이 안가도 더러워지고 그래요. 털도 쉽게 엉키고.”

“아무래도 주인이 키우는 것 하곤 다르겠죠.”

“그래서 그런 애들 주기적으로 미용 해주고 그래요. 근데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신경 써서 예쁘게는 못해주거든요. 그런데 조금이라도 깨끗하고 예쁘게 해주면 사람들 눈에 빨리 띄니까요.”


은정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지 계속 웃으며 얘기했다.


“그러면 입양도 조금 쉽게 되나요?”

“아무래도요. 예쁜 강아지 누가 싫어하겠어요? 데려온 지 얼마 안 된 애들은 깨끗하지 않은 애들 되게 많거든요. 건강도 그렇고. 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서 조금 다듬어 주고, 예뻐해 주고 그러면 얘들도 달라져요.”


기영이 확신이 섰는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저 혹시 지금 시간 있으세요?”

“왜요? 이 시간에 데이트라도 하시게요? 근데 제가 지금 좀 바빠서.”


은정은 이런 질문에 꽤 익숙한지 다시 컴퓨터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관심 없는 듯 농담처럼 넘겼다.


“그러고는 싶은데, 실은 은정씨 기다리는 애를 알고 있거든요. 아마 은정씨가 걔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은정은 기태가 떠오르는지 긴장감이 도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시만 시간 내주시면 알려드릴게요. 지금 제 방에 와있어요. 아! 그 스토커는 아니에요.”

“방요? 지금 이 시간에 매니저님 방으로 가자는 거예요?”


은정은 미덥지 못하다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한번 가 볼게요. 근데, 지금 좀 바빠서 오래는 못 있어요.”

“그럼요. 저도 이 시간에 커피 뽑으러 온 거 보이시죠? 할 일이 많아요.”


2층 현관문이 열렸다. 어두웠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은정이 입구에서 멈췄다. 기영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기영은 손으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성큼성큼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서 은정을 한번 쳐다 본 후에 살짝 문을 열자 안쪽에서 하얀 털 뭉치가 튀어 나왔다. 은정은 갑자기 튀어나온 털 뭉치에 놀라 짧은 비명을 지르다가 입을 막고 멈췄다. 털 뭉치 끝, 하얀 털 막대가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어머! 이게 뭐야! 송이? 맞네. 송이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너 송이 진짜 맞지? 응?”


은정에게 안겨 낑낑거리던 송이는 온 몸을 흔들어 댔다. 강아지를 이쪽저쪽 돌려보던 은정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몸은 또 왜 이래? 다 젖었네? 어머, 이 털 뭉친 것 좀 봐. 물에 빠졌던 거야? 어떻게 이렇게 엉망으로...”


미소 짓고 있던 기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은정은 왼팔로 강아지를 안은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털을 골랐다.


“털도 다 엉켰잖아. 빗 질도 안 했네?”


기영은 억울한 듯 거의 울상으로 변해 가다가 침착하게 은정에게 물었다. 왠지 모르게 억울했다.


“아는 강아지에요? 그럴 것 같긴 했는데.”

“네. 아까 말했던 예뻐하는 강아지가 바로 얘에요. ‘송이’라고 하는데 너무 사람을 잘 따르거든요. 보호소 처음 들어왔을 땐 진짜 시커멓고 털이 다 엉켜 있어서 엄청 지저분했는데, 몇 번 미용 해 주고 놀아줬더니 볼 때마다 이렇게 좋아하네요.”

“네.”

“근데, 얘가 왜 여깄어요? 혹시 매니저님이 입양.. 했어요? 도망쳐서 주워 온 건 아니죠?”

“네. 주워 온 건 아니고, 어떻게 하다 보니까 데려오게 됐어요.”

“여기 애완동물 못 키우는데? 그것 땜에 제가 입양하고 싶었는데 못했거든요. 설마 여기서 키우시려고요?”

“연습 가기 전에 보호 센터 앞을 지나왔거든요. 근데 거기 봉사자 분이 밖에서 홍보하고 계시더라고요.

“입양하라고요? 그런 큰 결정을 길거리에 나와서 잠깐 말한다고 되나요? 그렇다고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물건 사오듯 선뜻 결정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요.”

“그쵸. 근데 그게 입양을 하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었고 유기견 보호에 대한 캠페인 중이었어요.”

“아. 근데 어쩌다가 얘가 여기까지 왔어요? 여기는 환경도 안 되는데, 너무 급하게 결정하신 거 아니에요?”


송이를 계속 쓰다듬으며 기영의 결정이 미덥지 않은 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기영은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가 없었어요. 내일, 안락사 예정이라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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