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네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 창 밖에 심어진 가로등이 켜졌다. 사람들의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 소리가 가끔씩 들려왔다. 항상 퇴근 시간이 늦던 은정은 유난히 손님이 없던 오늘 일찍 길을 나섰다. 요즘은 퇴근길이 즐거웠다. 기태의 스토킹도 없어지고 컨디션도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가장 큰 이유로 펜트하우스에서 지낸 이틀이 큰 변화를 만들어 낸 것 같았다. 이젠 더 이상 발걸음도 무겁지 않았다.
은정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게스트하우스의 식당 문을 활짝 열고는 큰 소리로 불렀다.
“아저씨!!”
숙소로 올라가기 전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아저씨가 앉아 있어야 할 컴퓨터 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조명도 꺼져 있었다. 식탁 뒤쪽에 쓰러져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의식이 없어 보이는 아저씨를 흔들며 부르자 작은 신음 소리를 내며 가늘게 눈을 뜬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세요? 119 부를까요?”
“아니, 아니, 괜찮아요. 고마워요 은정씨.”
힘들게 일어나는 주인 아저씨를 부축하며 의자를 끌어 앉혔다. 아저씨는 한 손을 들고 은정에게 잠시 앉으라는 듯 힘없이 흔들었다. 하지만 바로 말을 시작하지는 못했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한참동안 마른 기침을 해댔다.
“잠시만, 잠시만.”
“왜 그러세요. 뭐 좀 갖다 드려요?”
“아니. 그건 아니고. 헉헉. 아, 물 좀 줄래요?”
바짝 건조한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물을 가져오자 한 번에 쭉 들이키고는 심각하게 묻는다.
“은정씨, 혹시 기태라는 사람 알아요?”
“기태요? 혹시 그, 키 크고 짧은 머리에 좋은 차 타고 다니는 그 사람 말씀하시는 거에요?”
“네. 맞아요.”
놀란 은정은 오히려 아저씨에게 되묻는다.
“어머! 아저씨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요? 몇 달 전부터 저희 미용실에 거의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괴롭히는 스토커에요. 혹시 그 사람이 여기에 왔던 거에요?”
주인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사람이 아저씨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주인 아저씨는 아직 정신이 없는지 대답 대신 은정을 계속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두 눈의 초점조차 명확하지 않다.
“저희 미용실에 얼마 전까지 매일 나타났었는데, 며칠 전에 갑자기 놀라면서 나가버렸거든요.”
“그래요? 그 사람이 은정씨 퇴근할 때 따라 왔었나 봐요. 여기서 지내는 거 다 알고 왔더라고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그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폭력 휘두르고 그랬으면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죠.”
은정이 전화기를 꺼내자 주인 아저씨는 은정의 손목을 잡으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아니, 폭력을 휘두른 건 아니에요. 그 친구가 왔다 가긴 했는데, 음... 그 이후로 몸에 기운이 없어서. 당이 떨어졌나?”
“그런 거에요? 그러면 다행이긴 한데. 근데 저도 매번 그 사람만 왔다 가면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 같은 거 들었었어요. 그 사람 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서있기도 힘들었거든요.”
“언제쯤부터 그 사람이 나타났던 거예요? 오래 됐어요?”
은정은 곰곰이 생각하며 날짜를 계산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셌다.
“그게 아마도, 저 우울증 약 처음 먹을 때 쯤 이니까, 한 육 개월 조금 넘은 것 같아요. 그 사람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미용실만 가면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뭘 해도 회복이 안 되더라고요. 근데 그 사람이 올 때마다 점점 더 힘들어 졌어요. 아마 스트레스였나 봐요”
“네. 근데 그 사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어? 아저씨, 아는 사람이에요?”
“예전에 좀 알고 지냈어요. 주변에서 사업한다고 돌아다니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때는 욕심은 좀 많아도 사업하는 사람 치고는 숙맥 같고 그랬었는데.”
은정은 놀라운 듯 아저씨를 쳐다 본다.
“오늘은 은정씨 물어보길래 없다고 했는데. 이미 알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며칠은 따라다닌 것 같은 눈치였어요.”
“휴~, 이번에는 좀 힘들어도 버텨 보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주변에 피해를 입히는 걸 보니까 다른 곳으로 빨리 옮겨야겠어요.”
“근데 그렇게 계속 따라다니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혹시 경찰에 신고는 해 봤어요?”
“몇 번 신고 했었는데, 접근 금지 명령 떨어져도 항상 똑같았어요. 그 사람 왔다 가면 경찰은 나중에 잠깐 얼굴이나 비추고 가고. 차라리 제가 모르는 곳으로 옮겨버리는 게 오히려 낫더라고요. 그럼 몇 달은 괜찮거든요. 근데 다른 곳도 다음 달이나 자리가 난다고 해서요. 마침 그 사람이 며칠 전부터 안 나타나서 마음 놓고 있었는데.”
“그렇군요. 조심해야겠어요. 전 이제 괜찮으니까 올라가서 쉬시고요. 옮기는 것도 옮기는 거지만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쨌든, 오늘은 정말 고마워요.”
“죄송해요 아저씨.”
“아니, 그냥 당이 떨어져서 그런 거라니까.”
은정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아저씨는 반대쪽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평소에 사용하는 창고의 반대쪽에 있는 또 다른 창고 안으로 힘겹게 들어갔다.
기영과 장연, 영천이 연습실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악보에 적힌 코드를 연주하고 있다. 서로 의견이 잘 맞지 않는지 표정이 심각하다.
“기영아. 이 부분 이렇게 하면 어때? 이거 마이너를 메이저로 바꾸면 좀 더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냥 메이저보다는 메이저 세븐이 낫겠지 이 곡에서는. 무슨 락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친절하지 않은 장연의 말투에 영천은 감정을 억누르듯 입술에 힘을 주고 장연을 노려봤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한번 해봐. 들어보자.”
“그러니까 이 에이 마이너 부분을 씨메이져... 세븐코드로 바꾸고,”
기영의 주머니에서 필름 통이 떨어지며 장연에게 굴렀다. 악보를 적고 있던 서장연의 시선이 필름통을 따라간다.
“야야, 너 주머니에서 뭐 떨어졌는데?”
“뭐 아무것도 없는 빈 통을 들고 다니냐?”
서장연이 필름통을 집어 기영에게 던졌다. 책상 위에 두고 온다는 것이 어느새 기영의 주머니에 다시 들어가 있었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서운 것이었다. 기영은 가까이 있던 책상에 통을 올려 두곤 별 것 아닌 듯 다시 회의에 집중했다.
새벽 한시 반이 조금 지났을 무렵, 필름 통 안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들어왔다. 하지만 연습실의 밝은 빛으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야, 너무 늦었는데 그만하자.”
“어? 진짜.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영천이 짐을 정리하며 물었다.
“그럼 내일이나 모레까지 기영이 네가 이거 엠티알(MTR - MultiTrack Recorder) 뽑아올 수 있는 거냐?”
“장담은 못해도 대략 오늘 회의한 내용대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몇 가지만 바꾸는 거니까. 내일 일 없을 때 틈틈이 해 볼 테니까 늦어도 모레에는 다시 맞춰보자고.”
“야, 이영천, 너도 내일까지 아까 얘기한 부분 다시 수정하고.”
불만이라는 듯 장연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영천은 지지 않겠다는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야이씨, 너나 다 해와, 좀! 곡 써온다더니 벌써 몇 주 지났는지 알기나 해?”
“그냐? 크크크. 알았다. 열심히 해볼게. 오오옷!!”
서장연은 웃는 얼굴로 오른손 주먹을 부르르 떨며 들어 올렸다.
“이 새끼는 맨날 말로만.”
“야! 내가 안 하려고 안 한 게 아니고, 뭐 떠올라야 써오지. 그냥 막 써오냐? 원래 이 창작의 고통이란 게 말이지.”
“닥쳐! 그 고통을 직접 느끼게 해주기 전에.”
“크크크.”
기영이 배터리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아 참, 여기 배터리 사왔다. 필요할 때 넣어서 써.”
이영천이 배터리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야. 그거 내가 바꿔 놨어 얼마 전에. 너 얘기한 게 언젠데 무슨 배터리 하나 사는 게 그렇게 오래 걸리냐? 뭐 공대라고 직접 만들어왔어?”
“그래? 어. 또 미안하네. 그럼 그냥 뒀다 쓰자.”
“너 근데 배터리 사면서 뭔 개하고 뒹굴다 왔냐? 개도 안 키우는 애가 무슨 털이 이렇게 잔뜩 묻어있어? 너 들어올 때 무슨 유행하는 옷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개털이네?”
영천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기영의 의자를 발로 밀어버린다.
“어? 아! 이거. 그렇게 됐어. 그냥 오는 길에 개를 좀 만졌더니.”
“검은색으로만 빼 입고 나와서 무슨 개를 만져? 근데 그건 그냥 만져서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 너 개하고 놀다 왔냐?”
“그건 아닌데. 혹시 요즘 개 키우기 어려울까?”
“개? 갑자기? 뭐. 어려울 게 있나? 너도 안 키워 본 것 아니잖아.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지 뭐.”
좁은 골목을 기영 혼자 걷고 있다. 가로등이 촘촘히 박혀있지 않은 골목이라서 곳곳이 어둡고, 여기저기 쓰레기 더미가 눈에 띄었다. 그 중 한 곳은 꽤 높게 쓰레기 봉투가 쌓여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곳일 수록 쓰레기 배출 금지 현수막이나 알림판, 심지어는 카메라까지 붙어 있었다.
피곤한 듯 눈을 비비며 걷는 기영의 입에서는 쉬지 않고 박자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기영의 시선이 자신의 옷으로 향하자 걸음을 멈추더니 눈에 거슬리는 듯 개털을 떼어냈다.
“이상하네? 연습실에서는 잘 안보였었는데?”
기영이 메고 있는 기타 가방의 주머니가 살짝 열려 그 사이로 약한 빛이 새어 나왔다. 게스트하우스에 한걸음씩 다가 갈수록 빛은 점차 밝아지고 그것과 비례해서 개털을 떼어내는 시간은 늘어났다.
“개털이 진짜 많이 묻었었네. 아까는 왜 안보였지?”
개털을 떼고 있는 기영의 시야 밖으로 뭔가 밝은 것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가 뒤쪽에 있는 느낌이라서 급히 몸을 돌려 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앞으로 돌아도 마찬가지였다. 가방에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그의 뒤쪽이 훨씬 밝아졌지만 기영은 알아채지 못했다. 멀리서 보면 커다란 반딧불처럼 꼬리 부분이 밝아져 있었다.
“오늘은 달이 밝은가 보네. 다른 날보다 더 밝아 보이는...”
고개를 들어보니 달은커녕 별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기영의 주변에 가로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혼란스럽고 무서웠다.
“어? 아무것도 없는데? 깜깜한데 왜 잘 보이지? 아. 몰라. 오늘 이상 해. 빨리 가서 그냥 자야겠다. 피곤해.”
다시 잰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차피 지금 당장 길 한가운데서 개털을 떼어 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두려움에 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게스트하우스 문 앞에 도착할 때 쯤, 그의 가방 속에서 주변을 모두 밝힐 만큼의 밝은 빛이 문 앞의 가로등 빛과 합쳐져 주변 전체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숙소로 들어오자 자고 있던 강아지가 고개를 들고 기영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기영이 두려운지 자리에서 꼼짝 하지 않는다. 기영은 강아지 밥그릇을 먼저 확인한 후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아지는 내내 불안한 지 자기 코를 날름날름 핥고 있다.
“야! 강아지! 배가 많이 고팠나? 많이 줬는데 다 먹었네? 근데 너, 예쁘긴 한데 냄새가 좀 많이 난다. 이 정도면 너 숨겨 놔도 어디 있는지 알겠는데?”
기영이 강아지를 만졌던 손을 자신의 코에 갖다 대다가 놀란 듯 머리를 흔들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보일러 켜고 따듯한 물로 한번 씻어보자. 내일 아저씨한테 허락 받으려면 예뻐야 돼. 내가 너를 위해서 특별히, 이 집에 와서 처음으로 보일러를 켜 줄게. 뜨거운 물 안 나온다고 지금처럼 이렇게 안 씻고 다니면 안되지.”
삼십 분 가량 화장실에서는 기영과 강아지의 추격전과 육탄전이 벌어졌다. 어릴 적에 개를 키워봤던 기영도 직접 씻기는 것은 익숙치 않았다.
목욕이 끝난 강아지를 수건에 둘둘 말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 하고서야 방으로 들어왔다. 하얀 수건으로 말려있는 강아지는 젖은 얼굴이 한쪽 끝으로 삐죽 튀어 나와 있었다. 무릎까지 바지를 걷은 기영도 옷을 입고 샤워를 한 것처럼 전체적으로 젖어 있었다. 들어오자 마자 수건에 말린 강아지를 바닥에 내렸다.
“거봐. 너 씻으니까 예쁘잖..엇!”
자세를 낮추자 말려있던 수건에서 쏜살같이 뛰쳐나온 강아지는 몸을 양쪽으로 털고는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야! 이 짜식이. 여기서 물을 털면, 어? 너 완전 흰색 강아지였어? 회색 아니고?”
화장실의 노란색 불빛으로도 강아지의 색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기영의 방에서 밝은 빛에 노출된 강아지의 털은 정확히 흰색 강아지였다. 씻기기 전까지 연한 회색이었던 털이 하얗게 바뀌어 있었다.
기영은 강아지를 대충 닦은 후 풀어놓았다. 녀석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방과 거실 전체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표정은 없지만 웃고 있음이 분명했다.
전체적으로 하얗게 변했어도 뭉쳐있는 털은 그대로 였다. 기영은 강아지를 잡고 가위를 들었다. 하지만 막상 털을 자르려고 하니 자신이 없었다. 마치 털을 자르면 피가 날 것 같은 불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가위를 내렸다.
“그래, 뭐 일단, 털 마를 때까지 맘껏 뛰어 다녀봐.”
결국 털이 마를 때까지 그대로 두겠다는 핑계로 털 뭉치 자르는 것을 미뤄 버렸다.
“자. 개도 씻겼으니 마를 동안 주머니 정리나 해볼까? 주머니에 있는 게, 동전 하고, 지갑하고···”
기영은 주머니를 뒤져서 잡히는 것들을 무작위로 꺼내 책상 위에 하나하나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