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화. 송 이 - 1

토리네 게스트하우스

by 이작

오전 내내 자고 일어난 기영은 점심 식사 후에도 간단한 청소만 마치고 계속 쉴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래 잤던 것이 언제였을까? 기영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발이 땅에 닿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랜만에 몸이 가벼워진 기영에게는 하늘조차 유난히 파랗게 보였다.


그 동안 모아뒀던 악보를 바닥에 가득 펼치고 종류별로 순서에 따라 분류 했다. 순식간에 방바닥, 침대, 책상 위도 악보로 뒤덮여 버렸다. 기영은 파일의 속지에 하나하나 악보를 넣으며 흥얼거린다.


“이건 여기다 넣고. 또 이건 뒤에다. 아~ 오랜만에 푹 좀 자고 나니까 정신이 좀 드는 거 같네. 근데 뭐 이렇게 지저분해?”


기영은 기타 가방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얼굴이 일그러진다. 나무젓가락과 사용했던 것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구겨진 휴지도 꽤 보였다. 찝찝한 표정으로 그대로 꺼내 휴지통에 넣는다. 한결 개운했다.


정리 마치니 오늘은 왠지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할 것만 같다. 몇 개 되지 않는 옷을 뒤져서 검은색 옷으로만 골라 꺼냈다.


“그래. 오늘 드레스 코드는 검은색이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검은 색으로 맞췄다. 거울에 비친 새로 한 머리가 새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제대로 차려 입고 나니 비싼 값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양손으로 머리를 다듬고는 인상을 쓰고 거울을 보더니 만족한 듯 기타를 멨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순간, 아직도 사놓지 않은 배터리가 떠올랐다. 아차 싶었다. 사놓겠다고 말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이미 몇 달은 지나 버린 듯했다. 기타를 내리고 지갑만 챙겨 뛰어나갔다.






배터리를 손에 든 기영이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추가로 살 것이 없는지 몇 번을 생각해 봤지만 배터리 사건 이후로는 아무것도 기영에게 맡겨진 일이 없었다. 밀린 숙제를 끝낸 듯 배터리에 쓰여 있는 글들을 괜히 읽어보기도 하고, 거리의 바람을 느껴보기도 했다. 푹 쉬고 정리까지 마친 상태에서 드레스 코드를 맞춘 옷에 배터리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하루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저 멀리 앞쪽에서 강아지를 한마리씩 안고 있는 사람들이 간절하게 떠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르바이트 첫날 새벽에 지나쳤던 ‘유기동물 보호센터’ 앞이었다.


서있던 사람 중 한 명이 기영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기영은 지금 이 기분을 절대 깨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까만 색으로 드레스 코드를 맞춘 날에 털이 달린 짐승을 안고 다가오는 것은 아무리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다지 달갑지 않을 것이다.


기영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먼 곳을 쳐다 보면서 가장 먼 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기영의 진로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는지 어느새 기영의 앞을 막아 섰다. 그리곤 강아지 한 마리를 대뜸 들이 밀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 강아지 예쁘죠?”


때 묻은 털들이 엉켜 있고 건강해 보이지도 않는 강아지라 예뻐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보니 밝은 회색 털의 강아지가 가까이 오는 것은 무척이나 달갑지 않다.


“네네 예쁘네요. 그럼.”

“바쁘시더라도 저희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너무 절박해서 저희가 이렇게 나왔어요. 혹시 주변에 이 강아지 맡아주실 분 좀 없으세요?”


부담스러우면서도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있던 기영은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강아지의 회색 털이 검은 옷에 계속 달라 붙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다. 그 사람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음에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람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기영이 양쪽으로 움직여도 마치 마음을 읽고 있는 듯 정확하게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아마 운동을 했다면 훌륭한 농구 선수가 됐을 것이다. 심지어는 움직일 때마다 강아지가 옷에 스치며 수 많은 털들이 붙었다. 기영의 얼굴에 짜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가 좀 바빠서요. 죄송해요.”


하지만 그 사람은 기영의 당황스럽고 짜증 섞인 얼굴을 보면서도 아랑곳없이 말을 이어갔다.


“미용 봉사 해주시는 언니가 손을 다쳐서, 몇 주 못 봐줘서 지저분한 거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말 예뻤거든요. 이래서 그런지 여태 입양을 못 갔어요. 예전 같으면 이런 아이는 금방 주인이 나타나는데.”


봉사자는 말을 하면서 계속 강아지를 들이밀었지만 이상하게도 강아지는 기영을 무서워하며 낑낑거렸다. 이를 눈치 챈 봉사자는 의아해 하며 급히 자신의 품으로 강아지를 안아 올린다.


“얘가 왜 이러지? 원래는 얘가 사람도 되게 잘 따르고 그렇거든요? 오늘 좀 이상한데 원래는 안 그러는 애에요.”


기영은 그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람마저 기영에게 불며 강아지 털을 여기저기에 빨아들였다. 마치 강아지 털 청소기용 정전기 필터가 된 느낌이었다.


“저, 사정은 알겠는데, 제가 좀 바빠서요.”

“얘가 원래는 사람도 잘 따르는 강아진데, 너무 불쌍해서 그래요. 얘 포함해서 저기 강아지들이 내일 모두 안락사 예정이에요.”


자원봉사자의 말이 망치가 되어 기영의 머리를 때렸다. 강아지의 까맣고 촉촉한 코가 갑자기 확대되어 보인다. 두려워하는 눈과 날름거리는 강아지의 혀조차 정지돼 버렸다. 봉사자는 강아지를 기영의 눈앞으로 다시 들이밀었다. 기영은 뭔가 잘못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확인하듯 다시 묻는다.


“안락사.. 라고 하셨어요?

“네. 말도 안 되지만 내일이면 그렇게 돼요. 여기 나와 있는 분들이 다들 자원봉사자들인데, 이미 몇마리씩 입양했거나 환경이 안돼서 더 이상은 어렵거든요. 죄송하지만 한번만 안아봐 주실래요?”


얼떨결에 받아 든 강아지의 눈빛을 보고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린 강아지가 분명했다. 때 묻은 회색 털이 여기저기 뭉쳐있었고, 기영에게 안긴 후로 더욱 심하게 몸을 떨었다. 강아지와 눈을 맞춰 보려고 했지만 계속 피하며 까만 코를 핥았다. 보호 센터 앞에는 대여섯 마리의 유기견들이 커다란 철창 안에서 더 이상 사람을 경계하지도 않는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얘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왜 이렇게 떨어요?”

“글쎄요? 조금 전까지는 안 그랬는데.. 이상한데요? 처음이라 무서운가 봐요.”

“여기 들어오면 건강 검진 이런 거는 다 하는 거죠?”

“그럼요. 그런 거 안 하고 어떻게 입양을 보내요. 검진은 기본적으로 다 하고요, 미용도 봉사하시는 분이 있어서 해 주시는데 그 언니가 손을 다치는 바람에 몇 주 못 봐줬거든요.”


기영은 강아지의 얼굴이 보이도록 안아 올려 눈을 맞췄다.






강아지를 안고 있는 기영이 숙소로 들어왔다. 다른 손엔 커다란 봉투가 들려있었고 봉투 위쪽으로 개 사료 및 장난감등이 삐죽 튀어나와 있다. 들어오자 마자 강아지를 바닥으로 내렸다.


“야!”


한참을 생각했지만 강아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름을 분명히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 나지 않았다.


“이름을 안 물어봤나?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에이, 가까우니까 내일 가서 물어봐야겠다. 야! 강아지. 나 지금 나가야 하니까 오늘 나 올 때까지 조용히 있어. 알았지? 너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 무서운 곳이야. 애완동물 금지 구역이라고. 떠들면 잡혀갈 수도 있다, 너?”


꼬리를 두 다리 사이로 넣은 강아지는 계속 기영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영은 방 한쪽 구석에 방석을 깔고 개 사료와 그릇을 꺼내 한 그릇 가득 쏟아 부었다. 강아지는 조금씩 경계하듯 다가가더니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기영은 밥그릇 옆에 물그릇을 놓고 그릇 하나를 더 꺼내 거실에 놓을 자리를 찾았다.


“이 녀석이 놀기엔 방은 좀 좁겠지? 여기서 놀다가 물먹는 곳은.. 아, 여기가 좋겠네.”


들고 있던 물그릇을 현관문 옆에 놓고, 모든 신발을 신발장 위로 올렸다. 그리고 거실 전체를 돌며 물어 뜯을 만한 것들을 버리거나 높은 곳으로 옮겼다.


“야! 강아지. 너 물그릇 저쪽 거실에 하나 더 놨으니까 놀다가 먹어. 난 좀 나갔다 올게.”


기영은 강아지 옆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을 부었다. 강아지는 물이 다 차오르기도 전에 물을 먹기 시작했다. 꽤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던 기영은 시계를 보고서는 급하게 일어났다. 시간이 꽤 지나있었다. 기영은 급하게 기타를 메고 쏜살같이 뛰어 나갔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가 핸드폰으로 일정을 확인하며 식당으로 들어왔다. 이미 해가 떨어지기 시작해서 붉은 빛으로 어둑어둑한 저녁이었다. 기영은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시간이면 항상 연습실로 향했고, 그 때부터는 아저씨가 이곳에서 대기하는 것이 정해진 룰이었다.


아무도 없어야 할 식당 안에 남자 한 명이 서있다. 언제 들어왔는지 식당 내부의 이곳 저곳 만지며 구경을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이미 커피도 한잔 들려 있다.


“어? 안녕하세요. 아저씨!”

“누구... 어? 너!”


그 남자는 밝은 표정으로 보며 서있었다. 활짝 웃고 있던 그 사람 역시 당황한 모습이다.


“저 알아보시겠어요? 저에요 기태.”

“어, 그럼. 오래간만이네.”


아저씨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오랜만인데 안 반가우신가 봐요? 전 반가운데. 많이. ”

“어쩐 일이냐? 그 동안 소식 한번 없더니.”


기태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 두리번거렸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그냥 지나는 길에 들렀어요. 게스트하우스 여셨나 봐요? 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여기, 벌써 꽤 됐지.”

“아. 그러시구나.”


갑작스러운 아저씨와의 만남에 할 말이 없는지 기태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얼굴 높이로 올리며 말했다.


“커피가 생각보다는 맛이 별로네요. 향은 좋던데.”


아저씨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잠시 생각하더니 대뜸 묻는다.


“여기, 저쪽 지하철 역 주변 미용실 다니는 이은정이라고 있죠?”


기태는 최대한 친절하게 말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역시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멀찍이서 두리번거리던 기태는 가까이 다가오며 협박하듯 다시 물었다. 둘의 표정이 동시에 굳는다.


“왜 그러세요? 다 알고 왔는데. 며칠 전부터 그 사람 여기 들어오고 나가고 한 거 계속 봤는데?”

“그런 사람 없다! 돌아가.”

“그럴 것 같더라니. 사실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어요. 예전하고 똑같으시네요.”


기태는 아저씨의 반응을 예상했던 것처럼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식당을 훑었다.


“너, 처음에 그렇게 모아둔 것 가지고 도망가더니, 무슨 더 할 일이 남았냐?”


기태의 눈빛이 빛나며 다시 가까이 다가왔다.


“도망요? 도망? 제가요? 아, 씨 진짜 이 아저씨가! 내가 그것 땜에...”


주인 아저씨가 기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눈싸움을 하다가 갑자기 겁에 질리며 말했다. 기태의 눈에 순간적으로 검은 빛이 돈다.


“너! 너 뭐야? 너 기태 아니잖아!”

“기태 맞아요. 아저씨. 저 기억 안나요?”


기태가 더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바싹 들이댄다.


“원하는 게 뭐야?”

“은정이라는 사람, 여기서 도와준 거 맞죠?”

“네가 은정씨에게 빨대 꽂았던 놈이구나? 왜? 이전처럼 모아둔 거 있을까 봐? 이젠 안 해 그런 거. 포기하고 돌아가.”

“내가 그거 때문에 힘든 거 생각하면 여기 다 때려 부수고도 남아요. 알아요? 근데 그것보다 더 큰 게 있던데?”

“뭐, 뭐?”


기태가 주인 아저씨의 눈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가 실망한 듯 이상하게 웃었다.


“아, 이 아저씨 아직도 모르고 있네.”

“뭐, 뭘? 뭐가 있는데?”

“하하. 그럼 잘 지내보세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그 동안, 꼭! 건강하시고요.”


기태는 오른손을 아저씨의 어깨 위에 얹었다. 아저씨가 차츰 차츰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저씨의 입에서 들릴 듯 말듯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꼼짝 하지 못했다. 머리가 거의 바닥에 닿을 때 쯤 손을 떼자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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