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네 게스트하우스
기영이 다시 식당으로 들어오자 마침 전화를 마친 아저씨가 주머니에 폰을 넣으며 말했다.
“쉬라니까 금방 내려왔네. 허허. 어쨌든 잘 됐어. 은정씨 퇴실 했다니까 내가 먼저 올라갈게. 여기 좀 간단히 정리해 주고 한 삼십 분쯤 있다가 올라와. 일도 손에 좀 익은 것 같으니까 한번 보여줄게.”
아저씨가 청소 가방을 들고 올라가자 기영은 바로 정리를 시작했다. 이제는 모든 일들이 손에 익어서 금방 끝이 났다. 이런 단순 노동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깨끗하게 정리가 됐다.
펜트하우스 문을 열자, 아저씨가 허리에 차고 있던 가방에 필름통을 넣다가 놀란 것처럼 기영을 쳐다 본다. 몰래 무엇을 먹다 들킨 사람의 표정 이었다. 기영과 눈이 마주치자 아무렇지 않은 듯 침대 옆 테이블에서 투명 디퓨저 병 세 개와 그 뒤에 세워져 있던 필름 통 세 개를 허리춤 가방에 넣는다.
“놀래라. 빨리도 올라왔네. 마침 다 끝났으니까 정리만 좀 해줘.”
“벌써요? 일찍 와서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여긴 워낙 깨끗하게 써서 별로 할 것도 없어.”
아저씨의 평온해 보이는 얼굴과는 다르게 허리에 차고 있는 작은 가방의 지퍼를 닫으려 바쁘게 손이 움직였다. 누가 봐도 낡아 보이는 그 가방은 생각만큼 쉽게 움직여 주지 않았다.
결국 몇 번을 시도하다가 한 손으로 지퍼를 움켜 잡고는 그대로 기영의 곁을 지나쳤다. 기영의 바로 옆을 지나는 순간 지퍼 틈으로부터 밝은 빛이 기영의 눈에 비쳤다. 번개처럼 순식간이었지만 이번 만큼은 확실히 꿈은 아니었다. 기영은 급히 아저씨를 불러 세웠다.
“아저씨! 가방에,”
“어? 뭐? 가방?”
기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저씨가 급히 멈추며 되물었다. 깜짝 놀란 듯 움찔하는 것이 느껴진다.
“네, 플래시가 켜져.. 어? 있는 것 같았는데 안보이네?”
가방을 가리키며 말하자 아저씨는 지퍼의 작은 틈까지 보이지 않도록 좀 더 세게 움켜 잡는다.
“그래? 내가 나가서 확인해 볼 테니까 거기 마저 하고 와.”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장연 혼자 악보를 챙기고 있다. 평소에는 기영과 장연 모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야 할 시간이라서 공식적으로는 연습실의 문을 닫는 시간이었다.
장연은 영천에게 전화를 걸며 투덜거린다.
“아, 짜식들. 내가 시간 될 때 뭐라도 해야지 이러다가 연습만 평생 하겠네.”
한참 신호가 울린 후에야 영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연은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말을 시작했다.
“야, 뭐하냐?”
“뭐하긴, 좀 있다가 밥 먹고 연습실 가려고.”
“야, 지금 나 연습실에 먼저 와있는데.”
“뭐? 이 시간에? 너 이 새끼! 또 알바 짤렸냐?”
“어. 크크크. 뭐 그렇게 됐다.”
“아, 이 새끼 맨날 짤려. 그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게, 그 사람들이 나 같은 인재를 감당하기 힘든 거지.”
“쫌 닥쳐.”
“크크크. 근데 나 오늘 길거리에서 버스킹 좀 해보려고 하는데 같이 가자.”
“좋은 생각인데?”
“그럼 지금 이리 와라”.
“근데, 아직 밥도 안 먹었다니까!”
“아이, 닥치고 와. 같이 먹으면 되지. 너 안 오면 나 혼자 먹냐? 확 굶어버린다.”
“아 진짜 이 새끼. 그냥 혼자 먹어. 안 간다니까. 너 굶든지 말든지 내가 무슨 상관이야.”
“영만이도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넌 그냥 빨리 와.”
“뭐? 영만이? 영만이가 한대?”
“며칠 전부터 얘기 하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 시간이 돼서 짤리자 마자 전화 했다.”
“그래? 너 일부러 짤린 건 아니지? 어쨌든 알았어. 그럼 좀 기다려.”
“크크크. 그건 아니고. 점심 먹고 한 두 시간만 해보자.”
“근데 나 점심 먹고 가면 안 되냐? 오랜만에 집에서 맛있는 거 해준다고 했는데.”
“야! 쫌! 그건 내일 먹어. 가지고 오던가.”
“아, 이 새끼. 일단 기다리고 있어. 간다.”
“그래. 점심 메뉴는 내가 생각해 놓을게. 크크크.”
전화를 끊자마자 기영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야, 밥 먹었냐?”
“먹었지 그럼. 지금 시간이 몇신데. 근데 이 시간에 알바 안하고 무슨 일이야?”
“크크크. 애들하고 오늘 거리 공연 한번 해보려고.”
“어? 진짜? 재밌겠다. 근데 보컬은?”
“영만이.”
“어? 영만이가 한대?”
“마침 오늘은 시간이 된다는데, 너는 안 되지?”
“어. 나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오전 내내 잤다. 그래서 오후에는 비우면 안 돼.”
“대박이네 거기. 업무 시간에 잠도 재워주고. 뭐 어디가 안좋냐?”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봐. 병원 가보려고 했는데 오늘 좀 쉬어보고 계속 그러면 가려고.”
“그래라 그럼. 난 애들하고 오늘 한번 해보고 반응 알려줄 테니까.”
장연은 전화를 끊고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시계를 슬쩍 보더니 가까운 의자에 다리를 얹고는 그 자세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장연, 영만, 영천이 지친 모습으로 연습실로 들어온다. 양손 잔뜩 장비와 악기를 들고 있었다. 특히 영만의 표정은 거의 울상이 되어 있었다. 영천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야. 잘했어. 괜찮아.”
“미안하다. 나 때문에. 그 세 번째 노래 벌스 들어갈 때 박자 놓쳐서. 맨날 하던 건데 이럴 줄은 몰랐네.”
영천과 장연은 낙심하고 있는 영만을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야. 뭐 그런 거 갖고 그러냐? 나 오늘 계속 코드 틀리는 거 못 봤어?”
“푸하하. 야. 이 새끼. 야, 영만아 아까 사람들 놀라는 거 봤냐? 장연이 새끼 흥분 해서 기타 너무 세게 치다가 피크 부러지고.”
듣고 있던 장연이 맞장구를 친다.
“크크크. 그때 그, 내 옆에 있다가 부러진 피크에 맞던 그 여자애 놀라는 거 왜 그렇게 잘 보이냐? 안그냐? 영만아?”
서영만은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야, 너 연습 하나도 안하고 그 정도 하면 잘 한 거지. 사실 그냥 오늘은 놀러 간 거였잖아. 안 그래 장연아?”
서장연이 웃음을 멈추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닌데?”
“아, 진짜!! 이 새끼 맘 안 맞아서 같이 못해먹겠네.”
“크크크, 근데 너 아까 네 노래 부르는데 사람들 수군거리던 거 들었냐? 그것도 잘 들리던데. 표절 같다고. 크크크.”
“그러게 그걸 왜 시키고 그래? 아직 수정도 안 한걸.”
“네가 아니라고 하니까 한번 불러보라고 한 거지. 크크크, 야 영만아, 너도 들었지?”
영만은 아직도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야! 괜찮아. 그냥 갑자기 답답하니까 한번 가서 해 본거 가지고 왜 그래?”
“아니, 그게 아니고. 난 진짜 도움 되고 싶어서 간 건데 괜히 피해만 준거 같아서 자꾸 신경 쓰이네. 야. 미안하다. 다음에는 좀 더 잘해볼게.”
“그래. 뭐 어쨌든 다들 실수하고 그랬으니까 다음에 잘하면 되지.”
“아씨, 오늘 기영이도 있었어야 했는데. 오늘 재밌었잖아. 근데 기영이 노래는 검증도 못했네.”
“그러니까, 그 새끼 있었으면 좋았을 걸. 이런 거 알바 좀 빼고 오면 안 되나? 너 아까 기영이하고 통화 했다며?”
“했는데, 걔 좀 아픈 거 같더라고. 오늘도 내내 몸이 안 좋아서 아저씨한테 얘기하고 좀 잤나 봐.”
영만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나도 아까 끝나고 잠깐 통화 했는데 이따가 나올 거라고 했어. 좀 나아졌나 봐.”
영천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폭발한다.
“뭐야. 첨에 지가 같이 하자고 해 놓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기타를 정리하려던 장연은 긴장이 풀렸는지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네. 아. 피곤하다. 우리 라면이나 끓여 먹을래?”
“어 그래 배고프다.”
영만이 대답하자 마자 영천은 갑자기 기타를 꺼내 들더니 평소 즐겨 앉던 자리로 움직이며 말했다.
“안 돼. 난 아까 그 표절이라는 곳 좀 바꿔야 해. 그 부분이 흠.. 악보가 어디 있지?”
“야야. 가위바위보 해야지 어딜 가?”
“아냐. 나 지금 갑자기 중요한 영감이 떠올라서.”
“야. 영감은 받는 거잖아. 내가 그거 줄게. 그게 말이지 일단···”
영천이 반대편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마련하고 앉자 서장연은 이영천을 따라가며 말했다. 결국 구석에서 영만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영만이 분위기를 보더니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내가 끓일게. 이 자식들아! 내가 오늘 실수도 하고 그랬으니까 특별히 끓여 주는 거다?”
서영만이 벌떡 일어나 싱크대로 향하자 영천과 장연은 다시 돌아와 서로를 보고 씩 웃으며 앉았다.
“아! 그래. 맞아. 영감은 항상 먹는 것에서 시작하지. 크크크.”
“뭐. 네가 준다니 그 영감, 어떤 영감인지 한번 받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