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네 게스트하우스
아저씨는 기영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마치 굳은 결심을 말하듯, 결연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어울리지 않는 개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 꿈 맞네. 꿈 맞아. 개꿈이야. 난, 물이 새는 줄 알고 놀랐잖아!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물이 새는 건 힘들거든. 근데 잠을 못 자서 그러는 거면 일단 병원 가지 말고 오늘 그냥 좀 쉬는 게 좋겠다. 일하면서 밤에 음악까지 하느라 힘든가 보네. 이런 일 처음 해봐서 그래. 오늘은 좀 쉬지 뭐. 일하지 말고. 오늘 바쁜 일 없지?”
“네. 말씀하신 2층 일 이외에는 없어요. 연습실도 평소처럼 가면 되고요.”
“그래 알았어. 그럼 이거 먹고 처음으로 카페 가서 차나 한잔 하지 뭐. 2층은 나중에 하고, 좀 쉬었다가 펜트하우스 정리나 가볍게 하고 마치자.”
아저씨가 갑자기 일어서며 얼빠진 듯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국수 아직 남았냐?”
“네? 네.”
“오늘은 좀 천천히 먹네.”
“네? 아직 국수 한입 밖에 안 먹었는데.”
“그러네. 넌 여태 안 먹고 뭐했냐? 그거 얼마나 된다고. 다 불어 터지겠다. 어서 먹고 가자. 다 먹었냐?”
“국수 방금 나왔잖아요, 아저씨. 그리고 이거, 곱빼긴데요.”
아저씨는 당황해 하며 허둥지둥 아무 말이나 뱉어 내는 것 같았다.
“곱빼기였나? 어. 그래도 국수니까 빨리 먹어. 이거 뭐 이렇게 다 불으면 어떻게 먹으려고.”
“아저씨도 국수 많이 남으셨는데.”
“그래? 이거? 내꺼는, 봐봐, 얼마 안 남은 거야! 이 정도는 한 번에 먹을 수도 있어. 자 봐봐.”
“아저씨. 천천히 드셔도...”
아저씨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며 국수를 한 번에 들이켰다. 뜨겁고 양도 많은 곱빼기를 꾸역꾸역 밀어 넣는 것이 힘들어 보였지만 기영에게는 씩 웃어 보인다. 입 안 가득 국수가 찼다. 먹는다기 보다는 그냥 밀어 넣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았다.
“캬, 봤지? 넌 다 먹었냐?”
“아뇨, 저도 빨리 먹을 게요.”
아저씨는 두서도 없는 말들을 허둥지둥 뱉어냈다. 왜 갑자기 저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영이 한입을 먹자 다시 물었다.
“아직 남았냐?”
대답해 보려고 했지만 입을 벌릴 수 없었다. 결국 아저씨를 따라 국수를 마시듯 삼키고 일어났다.
카페로 들어가던 기영은 혹시나 은정이 있을까 봐 주저했지만 아저씨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신하는 듯 행동했다. 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기영에게 말했다.
“아 참! 기영씨. 내가 뭘 좀 가져와야 하는데 그냥 왔네.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기영은 펜트하우스 문을 지나쳐 곧바로 카페로 들어갔다. 내부의 정리되지 않은 책들이 거슬리는 지 뽑혀있는 책들을 모아 책꽂이에 가지런히 넣었다. 하지만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듯 모든 책들을 뽑아서 크기 별로 다시 꽂는다.
벽에 붙어있는 사진에도 눈이 갔다.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 보다가 몇 가지 사진을 번갈아 본다. 유난히 눈에 띄는 한 명의 남자가 여러 사진에 공통적으로 찍혀있었다. 기영은 손가락으로 그 사람을 짚은 후 다른 사진에서도 같은 사람을 찾았다. 옷은 달랐지만 역시 같은 사람이었다. 그것 이외에도 꽤 많은 사진에 그 남자의 웃는 얼굴이 있었다.
“누군데··· 여기도 있고, 여기도 있고, 어? 여기도 있네?”
그는 젊고 똑똑해 보였고, 운동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문이 열리며 아저씨가 작은 필름 통 하나를 꼭 쥐고 들어왔다.
“자 이거 받아. 열지는 말고.”
기영에게 쥐어준 통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어릴 때 갖고 놀던 필름통과 비슷했지만 자세히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안쪽에 얇은 코팅이 돼 있는 것처럼 빛에 비쳤을 때 무지개 색이 나타났다.
“어? 이거 필름 통이에요?”
“필름 통을 어떻게 알아? 요즘에는 이런 거 잘 모르던데. 필름 사진 찍어본 적은 있나?”
“아버지가 사진 찍는 거 좋아하시거든요.”
“그래?”
“그래서 어릴 때 종종 봤어요. 아버지하고 캠핑 가면 거기에 벌레 같은 거 잡아서 넣어 주시기도 하고, 그러면 제가 벌레 숨 못 쉰다고 뚜껑에 구멍도 막 뚫어주고 그랬는데.”
“어. 허허. 맞아, 필름 통. 뭐 그런 거야.”
“근데 이건 왜 가져오신 거예요?”
“실은 방향제 보관할 때 쓰는 통이야. 피곤할 때도 좋아. 이거 생각날 때 미리 줄 테니까 지금 있는 방에 갖다 놔. 2인실부터 기영씨 방까지 공사하고 정리 시작할거니까 그 때 되면 쓰려고.”
“네에.”
“빈 통 아니고, 기체로 된 약품이 들어있으니까 절대 뚜껑을 열거나 잃어버리지는 말고. 이거 비싼 거다.”
필름 통에 코를 가져다 대며 냄새를 맡아봤지만 플라스틱 냄새 이외에는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다.
“방향제요?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기체를 압축 한 거라서 아예 밀봉이 돼 있거든. 그런 통이 좋더라고. 떨어뜨려도 안 깨지고. 완전히 밀봉이 안되면 향이 금새 다 날아가거든.”
아저씨가 말을 가로채듯 급하게 커피 머신 쪽으로 멀어졌다.
“무슨 커피 마실래?”
“전 아무 거나요. 이건 잃어버리지 않게 방에 놓아 둘게요. 이거 때문에 기다리라고 하신 거예요?”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차 한 잔 마시고 은정씨 연락 오면 여기 간단히 청소나 하자고. 연락 없으면 오후에 하던가.”
주인 아저씨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괜히 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어때, 그 동안 일 해보니까 할만 해? 힘들지? 살도 좀 빠진 것 같은데?”
“네. 좀.”
“그 동안 하는 거 보니까 아르바이트 꽤 많이 해 봤던 것 같던데?”
“네. 이것저것 다 해봤어요. 얼마 전까지는 편의점에서 일했었고요.”
“집도 서울이라고 했잖아. 근데 통 안가는 것 같네?”
“가야죠. 언젠간.”
“그래. 뭐니 뭐니 해도 집이 최고지. 시간 나면 갔다 와.”
커피 한잔을 모두 비울 때까지 은정에게서 연락이 없자 주인 아저씨가 일어나며 말했다.
“에이, 연락이 없네? 그냥 막 들어갈 수도 없고, 오전엔 못하겠다. 피곤할텐데 편하게 가서 좀 쉬어. 난 다른 일이 있어서. 오늘 푹 쉬어보고 그래도 몸이 안 좋으면 내일 하루 빼 줄테니까 병원에 가던가 하자고.”
“네. 감사합니다.”
기영은 남아있는 커피를 들고 내려와 필름통을 꺼냈다. 특별할 것 없는 너무 흔한 디자인이다 보니 금방 흥미를 잃었다. 결국 커피 몇 모금을 마시고는 바로 누워 버렸다. 책상 위에는 이미 빈 커피컵 세 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모든 게 귀찮았다. 물에 적신 커다란 솜이불을 몸 위에 올려 놓은 것처럼 늘어졌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누워보는 기분이었다.
소음이 차차 멀어지며 잠이 들려던 순간 책상 쪽에서 전기 합선처럼 번쩍 하고 밝은 빛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있어도 뚜렷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밝은 빛이었다.
기영은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책상을 중심으로 두리번거렸다. 빛이 나올만한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스탠드도 꺼져 있었고 그 이외에는 잡동사니와 책들이었다.
“이상하네. 책상 쪽이었던 것 같은데. 이쪽이 제일 밝았는데? 스탠드가 켜졌었나?”
스위치는 확실히 꺼져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켰다가 꺼봤지만 정상적으로 불이 들어왔다가 꺼졌다. 스위치를 왔다 갔다 하며 켰다 끄기를 반복했다. 단 한번의 오작동도 없었고 스위치가 헐겁지도 않았다.
“잘되는데? 혹시 멀티탭에서? 어! 그럼 불 나는 거 아냐?”
멀티탭에 붙어있는 모든 스위치를 내렸다가 다시 켜 본다. 정상적으로 동작했고 어디에도 합선의 흔적은 없었다.
“이상하네? 합선된 흔적도 없는데. 꿈이었나? 잠든 것 같진 않았는데.”
기영은 침대로 돌아와 곰곰히 생각했지만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꿈이었던 것 같다.
“아, 놀라라. 잠 다 깨버렸네. 아직도 두근거려. 에이, 잠도 깼는데 작업한 거나 다시 들어봐야겠다.”
핸드폰에서 어제 작업했던 음원을 찾아 플레이하며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췄다. 시간이 흐르자 기영의 손가락이 서서히 느려졌다. 밀려오는 잠에서 벗어나 보려고 크게 움직이거나 머리를 흔들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박자를 맞추고 있는 기영의 손가락이 차츰 느려지다가 거의 움직이지 않을 때쯤 다시 번쩍 하며 불빛이 보였다. 깜짝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엇! 이번에는 확실히 꿈이 아닌 것 같았는데? 이쪽이 확실한데 진짜 불 나는 거 아냐?”
기영은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책상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하지만 역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눈이 감겼고 번쩍 하고 밝은 빛이 들어오는 순간에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동시에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필름통에서 점차 빛이 밝아졌다.
오토바이 소리가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1인 가구가 많은 이 주변은 식사 시간 전후로 항상 수많은 배달 오토바이들이 움직였다.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에 기영이 몸을 뒤척인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고 머리는 산발이 됐지만 기영은 미소를 짓고 있다. 몇 번 양쪽으로 움직이던 기영은 똑바로 누우며 기지개를 펴다가 눈을 떴다.
벽에 걸린 시계가 바로 보였다. 12시 1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놀란 기영은 스프링이 튕겨 나가듯 소리를 지르며 일어 났다.
“어엇! 시계! 시계! 핸드폰 핸드폰.”
기영은 온몸을 더듬거리고 사방을 훑어보며 핸드폰을 찾다가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는 폰을 꺼내 정확한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16분, 마음이 더 급해 졌다.
예진과 은진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테이블 위에는 추가로 한 명분의 식사가 뚜껑이 덮인 채 놓여 있었다. ‘쿵쿵쿵’하며 시끄러운 발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더니 산발을 한 기영이 급하게 문을 열었다. 예진과 은진의 눈 네 개가 한꺼번에 기영에게 향했다. 기영도 둘의 시선을 의식한 듯 잠시 동안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식당안에는 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기영의 평소 답지 않은 모습에 놀란 은진이 입을 열었다.
“놀라라! 뭐하세요 거기서? 이리 안 오고.”
예진은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한다.
“아, 네 안녕하세요.”
“혹시 지금 일어난 거에요?”
“네. 오전에 잠깐 쉰다는 게 잠이 들어버려서.”
기영이 양 손으로 머리를 쓱쓱 정리하고는 식탁으로 다가왔다. 빈 자리에 앉아서 숟가락을 들 때까지 모두가 동작을 멈추고 기영을 보고 있었다. 기영은 혹시라도 그들과 눈이 마주칠까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은진도 젓가락을 움직이며 물었다.
“매니저님, 요즘 밴드는 잘 돼가요?”
“네? 네. 얼마 전에 오디션 한군데 잡혔어요. 근데 제가 연습을 많이 못 가서 걱정이에요.”
“오~ 그래도 매니저님은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네요. 부러워라. 저도 학교 다닐 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노래 쬐끔 하는 일반인? 뭐 그렇게 돼 버렸어요. 이젠 꿈도 없고, 살고 싶은 대로도 못살고, 그렇다고 돈도 많이 못 벌고. 이게 도대체 뭐하러 사는 건지 모르겠다니까요.”
“맞아 맞아. 나도 매니저님 보면 되게 부러운 거 있죠? 꿈을 찾는 사람들은 참 낭만적이고 멋진 거 같아요”
듣고 있던 예진이 거든다. 기영이 어디서나 듣는 말이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산다는 말. 하지만 그에게는 하루 스물 네 시간 내내, 심지어는 잠을 자면서 까지도 진짜 이것을 하고 싶어하는 건지 확신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건지도 구분할 수 없었고, 하면 할수록 생활이 힘들다 보니 그가 원하던 것은 꿈이 아닌 단지 안정된 생활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저도 뭐, 꼭 좋은 건 아니에요. 다들 사정이 있죠.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그냥 파랑새 쫓는 기분이에요. 어렸을 때는 주변에서 다들 꿈을 가지라고 했는데 막상 자라면서 보면 오히려 꿈을 버리라고 강요 하는 것 같아요. 말하고는 다르게.“
“그러게요. 휴~, 저도 좋아하는 거 골라서 석사 4학기까지 왔는데, 지금은 졸업 논문 걱정하고 있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건지 잘 모르겠던데.”
“지금은 모르겠어요. 이게 맞는 건지. 일단은 아직 잘 모르니까 그냥 무모하게 해보는 거죠. 좋아한다는 확신도 사실 없는데.”
듣고 있던 은진이 젓가락을 들며 무심하게 말했다.
“이 양반들이! 아직 쓴맛을 못 보신 분들인가? 여러분, 꿈이니 희망이니 이런 거 없어요. 그냥 사는 거에요. 그냥.”
문이 열리며 마카롱 접시를 들고 들어오던 아저씨와 기영의 눈이 마주쳤다.
“기영씨 왔네? 자자, 오늘은 특별하게 후식으로 집에서 구운 마카롱 준비 했으니까 식사하고 드세요. 첫째가 심심하다고 방금 급하게 만든 거라 식품 첨가물 같은 거는 못 넣었어요. 그런 건 비싸서 못 사주겠더라고. 그러니 아쉽더라도 그냥 드세요. 기영씨는 어때? 몸은 좀 괜찮아?”
주인 아저씨의 쉰 웃음 소리가 들렸다.
“자고 났더니 많이 개운해요. 시간이 이렇게 갔는지도 몰랐어요. 죄송해요. 연락 주신다더니 왜 연락 안주셨어요?”
기영은 밥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며 물었다.
“전화를 몇 번 했는데 안 받길래 자나 보다 싶었지.”
“네?”
기영은 급하게 핸드폰을 확인했다. 부재 중 전화가 세 통이나 와 있었고 모두 아저씨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여은진이 기영의 전화기를 곁눈질로 확인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어머, 매니저님 엄청 깊이 잤나 보네. 좋은 꿈 꾸셨나 봐요?”
“아저씨 죄송해요. 제가 잠이 깊이 들었었나 봐요. 보통은 작은 소리만 나도 깨는데.”
“괜찮아. 아침에 많이 피곤해 보이던데 잘됐지 뭐. 몸도 안 좋은데 식사나 맛있게 해. 일이야 나중에 하면 되지.”
“그러면서 전화를 세 번이나 하셨네?”
은진이 놀리듯 말하고 예진은 놀라며 물었다.
“왜요? 매니저님 어디 아파요?”
기영이 눈치만 보고 있자 아저씨가 대신 끼어들며 말했다.
“매니저가 갑자기 이런 일을 하다 보니까 좀 아픈가 봐요. 처음이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에요.”
예진이 아저씨를 쏘아보며 말했다.
“아저씨, 지난번 매니저님도 아파서 그만뒀다면서 너무 혹사 시키는 거 아녜요?”
주인 아저씨는 민망한 듯 웃어 보였다.
“허허, 그런가 봐요. 요즘 각 호실 새로 정리하고 있어서 매니저가 고생이 많아요.”
여은진이 책상을 탁 치고 일어났다.
“악덕 고용주 맞네. 아저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딱 걸렸네. 기영씨, 은진씨 덕에 다행인 줄 알아. 오늘 3층 청소는 조금 있다가 내가 좀 더 빡 세게! 혼자 할 테니까.”
“아저씨 제가 지켜볼 거예요. 우리 매니저님 아픈가, 안 아픈가. 그리고 이거, 이런 선심성 뇌물은!”
여은진은 앞에 있는 마카롱 두 개를 집어 들고 흔든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은진은 꾸벅 허리까지 숙여가며 인사를 하더니 까르르 웃었다. 예진도 은진을 따라 하듯 마카롱을 집어 들고 꾸벅 인사를 했다. 은진과 예진이 나가자 기영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아저씨, 오전에 책상 위에서 엄청 밝은 빛이 보였거든요. 근데 혹시 불이라도 날까 봐 걱정이에요.”
“그래? 불 켜 뒀었어? 거기 책상 위면 별거 없는데?”
“아뇨. 불은 꺼져 있었고요, 책상 위에 스탠드가 있었는데, 그것도 꺼져 있었고 연결돼 있는 멀티탭까지 꺼 놨었어요.”
“책상 위에 그것 말고 뭐가 있었는데?”
“음. 노트, 볼펜하고 아침에 아저씨가 주셨던 필름통 놨었거든요. 방에 들어 가면 주머니에 있는 거 다 꺼내 놨다가 나올 때 다시 주머니에 넣는 버릇이 있어서 지금 제 주머니에 있는 게 다에요. 근데 그, 아침에 주셨던 필름통 쪽에서 밝은 빛 같은 게 보이는 것 같던데요?”
주인 아저씨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럴 리가. 아마 햇빛 같은 거에 반사돼서 비친 거 봤겠지. 지금 대낮이라 해 많이 들잖아. 필름통에서 확실히 빛이 나왔어?”
“확실히 거기서 나온 건지는 모르겠고요. 그쪽 방향에서 불빛이 반짝했거든요. 자기 전에 몇 번이나 굉장히 밝은 빛을 본 것 같은데, 잠이 들어버려서 꿈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뭐 개꿈일 수도 있고, 통에 빛이 비친 것일 수도 있고. 여기 이 동네가 아무래도 번화가라서 차가 많잖아. 밖에 차 지나가면 헤드라이트도 막 비치고 그래. 그게 플라스틱이다 보니 빛이 반사 됐었나 보네. 별거 아냐.”
얘기하는 중에 아저씨의 핸드폰이 울린다.
“잠시만.”
중얼거리듯 얘기하던 아저씨는 문의 전화를 받고는 바로 상담을 시작했다. 기영은 혹시라도 불이 날까 봐 불안했다. 밖에서 들어온 빛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원인을 찾지 않고는 위험할 수 있었다. 공짜로 내준 방에 불이 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통화가 길어지자 아저씨가 전화기를 한 손으로 막고 말했다.
“일 생기면 전화할 테니까 밥 다 먹었으면 그때까지는 올라가서 좀 쉬고 있어.”
방으로 들어온 기영은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필름통은 책상 위 책꽂이 앞에 세웠다. 의자에 앉으면 딱 눈높이가 되는 곳이었다. 기영은 필름통을 다시 집어 들고 여기저기 돌려 보더니 다시 책꽂이 위로 올렸다.
“어차피 금방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쩝. 지금 뭐 하기도 그러네.”
잠시 앉아있던 기영은 주머니에서 꺼내 놓은 물건들을 책상 위에 그대로 둔 채 나가 버렸다.
기영이 사라지자 필름통안에서 반짝하고 불이 들어오며 점차 밝아졌다. 그리고는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통 안에서 빛의 덩어리가 천천히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