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네 게스트하우스
아침부터 모니터 앞에서 부지런히 열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아저씨 앞에 따뜻한 커피가 한 잔 놓여 있다. 평화로운 아침이었지만 아저씨의 손가락은 다른 아침과는 다르게 바쁘게 움직였고 그의 눈은 잠시도 모니터를 떠나지 않는다.
기영이 들어오자 채 인사를 하기도 전에 아저씨가 물었다.
“기영씨, 마침 잘 왔어. 서울에서 무슨 큰 공연 같은 거 하는 것 같네. 갑자기 문의가 많아지는 거 보니.”
“아, 다음 달 말에 서울에서 케이팝 그룹 하나 공연한다고 했어요.”
“그렇구만, 기영씨는? 공연은 언제 하는 거야?”
“뭐··· 아직 멀었어요. 친구들끼리 몇 번 무대 공연이나 버스킹을 하긴 했었는데, 이렇게 딱 우리만 나선 게 처음 이라서 아직은 다들 서툴러요.”
기영은 아저씨의 질문에 풀이 죽은 것처럼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아저씨는 괜한 질문을 한 것 같다는 생각에 입을 닫아 버렸다.
“오늘은 뭐 하실 거에요?”
“오늘은 기영씨 쓰는 집 있잖아, 거기 2인실 좀 정리하려고. 이제야 거길 정리하게 되네. 아, 이제 다 됐다.”
아저씨는 작업이 끝난 듯 기영을 보고 돌아 앉았다.
“자, 이제 준비하고 가자.”
“네. 근데 아저씨. 여기 펜트하우스가 그렇게 좋아요?”
“펜트하우스? 그럼, 거기 좋지. 빛 잘 드는 독실이잖아. 내가 매일 직접 청소도 해주고. 그래서 호텔에서 지내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다른 곳보다는 훨씬 좋을 거야. 또 거기는 엄청 깨끗하게 관리가 돼. 내가 워낙 청소를 잘하잖아. 이거 일 년만 해보면 숙박 업소 관리는 졸업이거든.”
아저씨가 웃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은정씨 있잖아요? 지금 펜트하우스 계신분요.”
“어? 아, 그래, 그 친구 오늘까지지?”
“네. 그 분 새벽에 커피 가지러 갔다가 만났거든요. 근데 들어갈 때 하고는 완전 다른 사람이 돼 있던데요? 밝고, 상냥하고. 3층으로 안내할 때는 사실 좀 섬뜩하기까지 했는데 오늘은 너무 다른 사람 같아서 못 알아볼 정도였어요”
주인 아저씨는 별것 아닌 것처럼 반응하며 화재를 돌린다.
“그래? 뭐, 잘됐네. 거기가 밝고 깨끗하고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좋아져서 나와. 허허. 그 친구도 효과가 있다니 기분은 좋다. 근데 밥은 먹었어?”
“아뇨. 새벽까지 곡 작업하느라 커피 한잔 마셨어요.”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지금요? 배 안 고픈데. 저 원래 아침밥을···”
아저씨가 말을 끊으며 말했다.
“밥 먼저 먹고 하지 뭐. 나도 밥 안 먹었는데 일단 국수나 먹으러 가자. 선선해서 그런가 따듯한 국수가 먹고 싶네.”
아저씨는 입을 딱 벌리고 쉰 웃음을 웃으며 기영의 팔을 잡았다.
미용실 건너편에 고급 승용차가 서 있다. 기태의 차다. 직원들이 술렁이며 김원장에게 물었다.
“원장님. 저 차, 지난번 그 진상 차 아녜요?”
“어, 맞아. 그 차.”
“어머! 또 나타났네. 언제부터 있었지? 차에 사람이 있나?”
“온 지 얼마 안됐어.”
“원장님, 알고 계셨어요?”
“응, 어제 하루 종일 여기 안 나타났잖아? 근데 이 안에만 안 들어왔지 은정이 있는 시간에는 계속 있었어. 오늘도 방금 온 거고.”
“그래요? 저 인간 뭐지?”
직원들이 창문 주변으로 모여들며 수근거린다.
“은정이가 어제 일찍 나오더니 둘이 담판을 진 건가 모르겠는데 그 이후로 저렇던데?”
“언니 대단하네.”
“몰랐어? 원래 걔 예전부터 그런 건 좀 잘 했어.”
“그래요? 근데 언닌 오늘 쉬어요?”
김원장이 시계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제 들어올 거야. 저 진상 차 와있는 거 보면 알잖아.”
미용실 문이 열리며 은정이 들어왔다.
“저거 봐봐. 쟤는 시간도 항상 정확해.”
김선생은 놀란 듯 입을 벌리고 은정을 쳐다본다.
“안녕하세요.”
“은정아 너, 저기 밖에 그 진상이 와있는데 여기 올 때 별 일 없었지?”
은정이 창 밖을 내다보며 인상을 쓴다.
“어? 저 차 또 와있네?”
“근데 어떻게 했길래 어제부터 안 들어와?”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경찰이다! 원장님. 저것 좀 보세요.”
어디서 나타났는지 교통 경찰이 차로 다가갔다. 불법 단속을 하듯 호루라기를 불며 곤봉을 휘둘렀다. 짙은 선팅으로 차 내부는 보이지 않았지만 바로 시동이 걸렸다.
“어머, 안에 사람이 있었네? 여태 뭐하고 있었던 거야?”
김선생이 소름 끼친다는 듯 진저리를 친다.
“그러게. 야, 은정아 너 다닐 때 조심해야겠다. 저거 완전히 스토커네?”
아저씨는 당연한 듯 창가 바로 옆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길 고양이를 보고 있다. 기영은 앞에 있던 메뉴판을 슬쩍 밀어버렸다.
“아, 고 녀석 예쁘네. 아줌마 여기 꼽! 어?”
뜨거운 김이 오르는 국수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아저씨가 국수와 아주머니를 번갈아 쳐다본다.
“이쪽으로 오시길래 미리 넣어 놨어요. 맛있게 드세요.”
아저씨는 연신 감사하다고 말하며 쉰 웃음을 웃었다.
기영이 커다랗게 국수를 입에 넣었다. 주인 아저씨도 배가 고팠는지 크게 한입을 넣는다. 기영이 우물거리며 물었다.
“아저씨, 오늘 펜트하우스 정리는 언제 하실 거에요?”
“밥 먼저 먹고 2층 대충 끝나면 하려고. 기영씨가 2층 뒷정리하고 있을 때 내가 올라가서 할 테니까 끝나면 올라와서 한번 보든가. 이 참에 펜트하우스 구경도 좀 하고. 어차피 체크 아웃이 11시니까 오전에는 못해.”
“그냥 제가 오후에 올라가서 할까요? 오후에 특별히 다른 일도 없는데.”
웬만큼 일을 익힌 기영은 그깟 방 하나 정리하는 것 따위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보다 오늘은 오후 일까지 한꺼번에 몰아서 빠른 시간안에 마치고 병원을 방문해 볼 생각이다. 이틀째 꿈인지 아닌지도 구분이 가지 않는 헛것이 보이니 문득 두려워 진 탓이다. 그 동안은 충분치 않은 생활비에 병원도 가지 않고 버텼었지만, 요 며칠은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코피까지. 아저씨는 경계하듯 국수를 끊고 기영에게 물었다.
“왜?”
“아뇨, 그냥. 바쁘신 것 같아서요”
“됐어 그냥 하던 대로 해. 내가 2층 어느 정도 마무리하면, 기영씨가 치우는 동안 올라가서 금방 끝낼게.”
“저··· 그러면.”
“응?”
면치기 성공을 즐거워하며 우물우물 씹고 있는 아저씨의 표정이 밝다.
“요즘 잠을 통 못 자서 그런지 가끔 어지럽기도 하고, 이상한 게 보이더라고요. 오늘 아침에는 코피까지 났어요.”
“어지러워? 왜? 몸이 어디가 안 좋아?”
“원래 좀 튼튼해서 쉽게 어디가 아프거나 하진 않거든요. 근데 요즘은 평소 같지가 않아요, 이상하게 천정이 물 흐르는 것처럼···”
아저씨가 국수를 입에 문 상태로 젓가락 하나를 ‘뚝’ 떨어뜨렸다.
“아뇨, 뭐. 천정에 물이 샌다거나 제가 특별한 병이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피곤한 것 같아서 일 없으면 오후에 병원에 좀 가보려고요.”
“뭐라고? 다시 말해봐.”
“오후에 병원 좀.”
“아니 그거 말고, 천정에 물이 뭐?”
“네? 아, 천정에서 물이 샌다는 건 아니고요. 그냥 천정이 물 흐르는 것처럼 흔들 흔들 하면서 반짝거리는 것도 보이고, 오늘 새벽에는 코피도 나고 그래서 병원을 가볼까 생각 중이었어요. 오후에 특별한 일 없다고 하셔서.”
아저씨는 입안에 있던 국수를 급하게 삼켜 버리고는 허공에서 한쪽 손으로 공 모양을 만들며 떠다니는 것처럼 흉내를 냈다.
“뭐가 반짝거려? 막 이렇게 공중에 떠다니기도 하고 그래? 풍선처럼?”
“네, 뭐 비슷해요.”
“색깔도 있어?”
“네. 어제 처음 봤을 땐 노란색이었는데 오늘 새벽에는 세 가지나 됐어요. 그때 제가 비몽사몽하고 있어서··· 꿈이었던 것 같아요.”
당황 하듯 상기된 아저씨의 얼굴을 보니 물이 샌다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알 것 같았지만, 사람이 아픈 것 보다 더 걱정해야 할 일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저씨가 불안한 눈빛으로 물 한 컵을 모두 들이켰다. 그래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었다. 눈빛이 흔들리며 심지어는 주먹을 쥐고 있는 왼손마저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