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네 게스트하우스
일주일 같던 하루가 겨우 지났다. 적어도 기영에게는 그렇게 느껴 졌다. 어제 밤 그 노란 빛의 덩어리가 떠내려 온 꿈을 꾼 이후로는 한숨도 눈을 붙인 적이 없었다. 이상한 건, 아침부터 힘든 도배 일을 하고 새벽부터 다시 오늘 새벽이 될 때까지 깨어있었지만 어제보다도 개운했다.
이미 시계는 새벽 12시 47분을 가리키고 있다. 컴퓨터가 부팅 되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기영은 두 팔을 머리 위에 얹은 채 어제 불빛이 튀어 나왔던 천정을 응시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뚫어지게 천정을 보고 있으려니 마치 천정이 흔들리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아. 어지러워. 일찍 일어났더니 하루가 엄청 기네. 아~”
눈을 감아버린 기영은 두 팔을 쭉 뻗고 크게 기지개를 켰다. 오늘도 작업할 것들이 쌓여 있었지만 이미 새벽 시간이었다. 편곡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일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어제 빛이 튀어 나왔던 곳으로 힐끔 힐끔 눈이 갔다.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꿈을 떨쳐버리려는 듯 기영은 머리를 양쪽으로 흔들었다.
“아, 몰라 몰라. 꿈 한번 꾼 거 가지고. 내일 연습실에서 욕먹을 생각하면, 아, 이거 오늘까지는 끝내야 하는데 잠자기는 또 글렀네. 벌써 며칠째야.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아.”
두 시간이 넘게 편곡 작업을 하던 기영의 옆엔 커피 잔 두 개가 쌓여있었고, 눈을 비비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기영은 마침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디 한번 들어볼까?”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한 후 의자를 뒤쪽으로 멀찍이 밀며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컴퓨터와 기영 사이의 이어폰 줄이 최대한 팽팽해 지며 깍지 낀 양 팔을 머리 뒤로 올렸다.
몇시간째 집중하며 작업을 하다 보니 어지러웠다. 이어폰을 타고 흘러 나오는 음악에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움직임이 차츰 느려지더니 가끔씩 멈추기도 하며 음악과는 다른 박자를 찍는다. 그 때, 어제와 같은 위치에서 빛나는 먼지가 떠내려 오며 동시에 천정이 출렁거렸다. 어제와는 다르게 세가지 색의 빛의 덩어리가 보인다.
“아~ 예쁘네. 흐린 파랑, 노랑, 분홍..”
주변을 천천히 맴돌던 빛은 어느 순간 쏜살같이 다가와 기영의 몸에 박히듯 사라져 버린다. 무방비 상태로 누워있던 기영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그 반동으로 컴퓨터에 꽂혀있던 이어폰이 뽑혀버리고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커다란 음악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오며 당황한 기영은 급하게 프로그램을 멈췄다. 급하게 떠서 흔들리던 이어폰 잭을 붙잡아 다시 컴퓨터에 꽂았다. 음악을 재생하자 왼쪽 이어폰에서만 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른쪽은 어떻게 해도 먹통이다.
“아이씨, 이거 뭐야. 또 망가졌나 보네. 소리가 안 나잖아.”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몇번씩 눌러 보지만 오른쪽 이어폰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어폰 선을 따라가다 보니 중간 부분에서 안쪽이 끊어진 듯이 덜렁거렸다.
시계는 이미 오전 다섯 시를 가리켰다. 벌떡 일어나 자신의 몸에 떨어진 빛을 찾아 봤지만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뱅글뱅글 돌며 자신의 몸을 확인하던 기영은 불안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이틀째 나타나는 환영. 이것이 정상일까?
“도대체 이게 뭐지? 꿈이야? 아님, 나 이상해진 거야?”
마른 손으로 얼굴을 비비던 기영은 겉옷을 대충 걸쳐 입고 카페로 올라갔다. 불을 켜지 않은 상태에서 익숙하게 캡슐 커피를 담아 놓은 박스를 뒤져 특정 크기의 캡슐을 찾는다. 캡슐을 넣자 불빛이 깜박거리며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넓은 창문에서 희미한 빛이 들어와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물체의 실루엣 정도는 구분 할 수 있었다.
기영은 항상 기대던 벽에 등을 대고 서서 손가락으로 가볍게 벽을 두드렸다. 그의 머리 속에서 재생되고 있는 음악에 박자를 맞춰가며 향을 음미했다. 손 끝이 스위치에 닿았지만 굳이 켜려고 하지 않았다. 주변이 밝아지면 오히려 감각이 둔해지는 느낌 때문에 지금 같은 상태가 오히려 좋았다.
기기 소리가 멈추고 정적이 감돌자 어두운 공간에서 안개처럼 커피의 향이 다가왔다.
“휴~”
깊은 숨을 내쉬고는 지금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피 잔을 가득 채우다 넘쳐버린 향은 이미 기영을 지나쳐 온 카페에 가득 퍼져 있었다.
갑자기 콧물이 흘렀다.
‘이놈의 알러지!’
기영은 코를 훌쩍 들여 마셔 보지만 계속 흘러 내렸다. 결국 왼쪽 팔로 한번 쓱 닦아내고는 커피 잔을 집어 들었다.
“아, 향 좋네. 자꾸 왜 이상한 게 보이지? 작업할 것도 많은데 답답하게. 병원이라도 가봐야 되나? 에이씨. 이 지겨운 알러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왼쪽 팔로 연신 코를 닦아냈다. 고개를 위로 들고 있으려니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펜트하우스의 문이 열렸다.
문 앞에 얼음처럼 굳어있는 은정의 실루엣이 보였다. 펜트하우스 내부도 카페와 마찬가지로 불이 꺼져 있어서 서로의 실루엣만 간신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은정은 그 상황에서도 빠르게 기영을 알아챈다.
“어머! 아..안녕하세요?”
통창으로 흘러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은정의 웃는 얼굴이 비쳤다. 기영은 벽에서 등을 떼고 똑바로 서서 꾸벅 인사를 했다. 은정보다는 기영이 더 놀란 모습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은정에게 놀란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미소를 짓고 있는 은정이 놀랍고도 낯설게 느껴졌다.
“은정···씨?”
한두 발자국 거리를 두고 기영과 은정이 마주 서 있다. 서로의 실루엣만 보이는 어둠 속에서도 기영은 그녀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차이점을 읽을 수 있었다.
“은정···씨? 맞죠?”
“네. 왜요?”
“아뇨. 다른 분 같아서······”
기영은 분위기가 어색해 지자 급히 말을 돌린다.
“이 시간에 괜히 저 때문에 깨셨나 봐요. 죄송해요. 제가 워낙 밤에 돌아다니거든요.”
기영은 계속 콧물이 흘러 나와 연신 코를 닦아내고 훌쩍 거리며 말했다.
“아녜요. 좀 전에 이상한 음악 소리가 들려서 깼어요. 클럽 차가 지나갔나? 이 동네는 가끔씩 밤에 그런 차들이 지나다니거든요. 근데, 너무 어둡네요.”
은정이 바싹 다가오며 말했다.
“아. 그거. 제가 작업하다가 실수를 좀 했어요. 죄송해··· 요.”
은정이 닿을 듯 다가오자 기영은 바짝 긴장하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흐~웁.”
그녀를 둘러싼 향기의 덩어리가 부드럽게 기영을 밀쳐냈다. 이상하게도 얼마 되지 않는 벽까지의 공간이 바닥까지 쓰러지는 것처럼 멀었다. 어쩌면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은정은 기영의 뒤쪽 허리 춤으로 손을 넣어 스위치를 눌렀다. 카페 전체에 노란 간접 조명이 들어 왔다. 은정은 눈을 감고 벽에 기대어 있는 기영을 보며 놀란 듯, 뒤로 물러섰다.
“괜찮으세요?”
기영은 눈을 꼭 감고 얼굴을 한쪽으로 돌린 채 벽에 기대있다.
“아. 네에. 좀.. 어지러워서”
은정에게 고개를 돌린 기영의 얼굴 반쪽에 선명한 피가 묻어있다.
“어머! 싸웠어요? 피가!”
“피, 피요?”
“네, 피가 여기저기 다 묻어 있어요.”
기영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던 은정은 안심한 듯 말했다.
“아, 코피가 나는 것 같아요. 얼굴에 다 묻었네.”
기영이 급하게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아직도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팔로 얼굴을 계속 비빈 탓에 얼굴 전체와 옷 소매까지 붉게 번져 있었다.
“아. 그러네요. 몰랐어요. 알러지 인 줄 알았는데.”
“매니저님도 참, 사람을 계속 놀라게 하네요. 일단 이거 쓰시고요, 잠시만요.”
옆 테이블에 있던 휴지를 뽑아 기영에게 쥐어주고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동안 휴지로 코를 막고 얼굴을 닦아도 계속 피가 흘렀다. 은정이 물티슈를 통째로 가져오더니 기영의 얼굴과 옷을 급하게 닦아냈다. 그녀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보인다.
“요즘 많이 힘드신가 봐요. 여기 아저씨가 너무 악덕업자 아니에요?”
코를 막고 수습하는 중에도 기영은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지금 기영의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이틀 전 이곳으로 데리고 왔던 어둡고 무표정한 그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여기는 매니저 일이 좀 힘들죠? 예전에도 그랬었는데. 아저씨하고 웬만한 수리는 직접 한다고 들었어요.”
“네. 근데 사실 아저씨가 다 하시고요. 전 그냥 보조만 하는데.”
“예전 매니저님도 이런 일은 처음 이라서 많이 힘들어 했어요. 아마 이런 거 다른 곳에서는 못해보셨을걸요?”
“네. 전혀요.”
“다른 곳 같으면 사람 불러서 하는 것까지 직접 다 하시던데.”
“그렇더라고요. 아르바이트 이것저것 많이 해봤는데, 여기서 하는 건 대부분 처음이에요.”
“아저씨는 그렇게 계속 고집하시는 것 같던데요?”
“맞아요. 지출이 많아지면 방세 올려야 한다고.”
은정은 딱히 할 말이 없는지 중간 중간 끊겼지만 기영의 옷을 닦아주면서 계속 이런저런 말을 시켰다. 덕분에 기영의 놀랐던 마음이 점차 가라앉는다.
“오신지 얼마 안됐는데, 불편한 건 없어요?”
“네? 그건 제가 여쭤봐야 하는 말인데.”
“어머. 그러네요. 하하”
은정이 처음으로 소리를 내며 웃는다. 기영에게는 이 장면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낮에 일하고 밤에 음악 작업하느라 이런가 봐요. 괜찮아요. 고마워요.”
“아~, 그럼 방금 그 소리가?”
“네. 죄송해요.”
“괜찮아요. 어쩐지 좀 이상하긴 했어요. 뭐 워낙 짧긴 했지만.”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할게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코피가 멈춘 것을 확인하자 은정은 흩어진 휴지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었다. 기영은 아직까지도 은정이 이틀 전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이제야 좀 멈췄나 봐요.”
기영의 코에는 아직 휴지가 꽂혀 있었고 더 이상 코피가 밖으로 흘러 나오지 않았다.
“네. 그런가 봐요. 고마워요.”
“아니에요. 근데, 옷도 다 갈아입어야 할 것 같아요. 피가 너무 많이 흘러서.”
“그래야겠네요. 피가 이렇게 많이 났는지도 몰랐어요.”
“그럼 정리 잘 하시고요. 전 이만 가볼게요.”
은정이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낸다. 평소 그녀의 복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운동화였다.
“이 시간에 어디 가세요? 너무 이른 시간인데.”
이제서야 은정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침 운동을 나가는 것 같았다. 화려한 손톱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꽤 자연스러웠다.
“아, 벌써 외출 준비 다 하고 나오신 건가 봐요?”
“네, 운동 가려고요”
“원래 새벽 운동 다니셨어요?”
“몇 년 전까지는 그랬어요.”
은정은 운동화를 오랜만에 맞춰 신는 것처럼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있는 중이다.
“어제부터 컨디션이 좋아서 다시 조깅을 해볼까 하고 운동화까지 갖다 놨는데 오늘은 몸이 더 가볍네요. 제가 지금은 이렇게 통통하고 그래도 예전엔 안 그랬거든요. 역시 여기가 빛이 많이 들어서 그런가? 여기 진짜 펜트하우스 맞나 봐요. 그럼 나중에 봐요.”
은정이 나가고 난 후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는 말끔히 정리 돼 있었다. 놀랐던 기영의 마음도 어느새 편안했고, 어떻게 보면 은정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 같았다.
커피 향을 맡으려 잔을 들어 올리다가 아직 그 쪽 콧구멍이 휴지로 막혀있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반대쪽으로 컵을 옮긴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향이 올라왔다. 천천히 한 모금을 마시며 다시 벽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습관적으로 왼손을 뒤쪽 허리춤으로 넣고는 벽에서 만져 지는 스위치를 눌렀다. 조명들이 꺼지고 다시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