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ZARIFE ~ ASTORGA, 24th Day
팻 일행과 함께 길을 나선다. 아무도 언급한 사람은 없었지만, 이제는 나도 일행 중 하나가 되었나보다. 당연한 듯 기다리며 서로를 챙기기 시작했다.
옛날 기사들이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싸웠다는 오르비고의 다리가 있는 마을에 들어선다. 어느새 자갈이 아닌 커다란 돌을 박아놓은 돌길이 나타나고, 오르막길 옆으로 버티고 있던 큰 건물을 돌자 바로 긴 다리가 보인다. 온통 돌을 이어붙인 듯 만들어 놓은 힘차고 길게 뻗은 다리가 허공에 높이 떠 있고 아래로는 좁은 강이 졸졸 흐른다. 강의 양쪽으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공간들도 보이고, 건기라서 그런지 다리의 길이와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좁은 폭의 물이 벌판의 한가운데를 힘들게 흐르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디딜 때 마다 발에 느껴지는 매끄러운 돌의 느낌이 좋다. 각기 다른 모양과 색을 가진 돌들이 아기자기하다. 울퉁불퉁 하고 큼지막한 돌들이 박혀있는 다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길었다. 다리를 건너며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대다가, 그대로 다리를 지나쳐 버린 팻 일행을 놓쳐 버렸다. 늘상 있는 일이다 보니 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다리위를 배경으로 한 멋진 사진들을 채집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다리를 지나자 마자 바와 기념품점이 양쪽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다리보다 짧게 느껴진 마을을 통과하니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난다. 직진하는 길과 오른쪽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책자를 확인 할 필요도 없이 직진 길은 도로를 따라 가는 길이었고 오른쪽 길은 숲을 통해 다른 마을을 거치는 길이었다. 이젠 망설이지도 않고 당연히 오른쪽 숲길로 걷기 시작했다.
숲길을 지나 오늘의 목적지인 아스토르가(Astorga)에 다다를 무렵, 목적지의 바로 전 마을인 쌍트바네즈(santbanez)에 도착했다. 제법 커다란 도시인 아스토르가가 꽤 가까운데도 마을길은 작은 시골마을을 연상 시킨다. 쌍트바네즈 성당에서 세요를 받고 나오는데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수녀가 특별히 물맛이 좋다는 곳으로 직접 안내한다. 1932년에 발견됐다는 안내판이 붙어있는 것으로 봐서 꽤 유명한 곳인듯 깨끗하게 정리 돼 있었고 이미 순례자 대여섯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난 시원한 물을 양껏 들이키고 물통을 가득 채운 후 다시 화살표를 따라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비고 다리에서 잠시 주춤했을 뿐인데 아직 팻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저 앞 어디쯤에 있을 그들이 궁금해 지는 순간 산길 한가운데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인다. 마치 포장마차 같은 곳이었는데 그 주변으로 허름하고 낡은 의자와 소파등이 놓여 있었다.
물, 과일, 음료, 꿀과 갖가지 차들, 간식들이 손수레 위 선반에 놓여 있지만 따로 관리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수레 기둥에 붙여놓은 찢어진 박스 조각에 한국어를 포함한 여러 나라 언어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쓰여 있었다.
“이곳은 무료로 이용되는 곳이며 마음껏 음식을 먹고 쉬세요. 원하는 만큼의 기부금을 종이박스에 넣어 주시면 그 금액이 다음 순례자를 위한 음식이 됩니다.”
이곳운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무료 카페였다. 마음이 따뜻해 진다. 이미 주변의 낡은 소파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팻 일행이 쉬고 있었다. 난 준비돼 있는 허브차와 꿀차 한잔, 이름모를 과일 몇개를 집어먹고 주머니 속의 동전 몇 개를 꺼내 종이박스에 넣었다.
그늘에서 쉬고 있으려니 방금 내가 올라왔던 길에서 남루한 차림의 젊은이가 웃옷도 걸치지 않은 채로 물통을 지고 올라온다. 이 곳의 주인이다. 햇빛에 검게 그을린 피부에 굵고 긴 곱슬머리와 신경 쓰지 않은 짧은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산아래 수녀에게 소개받았던 그곳부터 물을 길어온다고 한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물과 과일을 정리하고 앉아 순례자들과 대화를 나눈다. 마치 오랜 친구 같다. 삶이 부끄러웠다. 여러 가지 방식의 삶이 있겠지만 현재의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은 것 같이 보인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고 흔히 이야기하는 밥벌이도 되지 않는 하찮은 일이지만 그에게는 가장 소중한 일인 듯 온몸을 바쳐 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삶의 허구에 대한 쓸데없는 동경이나 가식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의 ‘삶’을 살고 있었다.
아스토르가 진입 직전 산꼭대기에서 잠시 발이 멈췄다. 평평한 바닥에 달팽이집처럼 돌을 둥글게 말아놓은 곳이 시선을 잡는다. 어떤 상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미스테리서클같은 돌맹이의 규칙적인 배열과 바로 옆의 십자가상이 묘한 분위기를 일구어 낸다.
넓은 아스토르가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꽤 큰 규모의 도시다. 산을 내려와 산책로 같은 작은 길을 지나자 마자 바로 깨끗하고 널찍한 길이 나타났고, 한참을 걸어 도시를 통과하니 급격한 경사로가 나타났다. 그 위에 바로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구시가지가 있었다. 급경사를 오르자 마자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건축되었다는 산타마리아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ia)이 보이고 그곳으로부터 구시가지가 번지듯 시작 되었다. 바로 옆에 우리가 묵을 알베르게가 있었는데 숙소 대문 앞에 순례자를 상징하는 커다란 동상이 이곳이 알베르게 임을 알리고 있었다.
숙소는 지상 5층, 지하 2층 건물로 비탈면에 지어져서 건물 지하에서도 탁 트이는 넓은 경치를 볼 수 있다. 지하에는 직접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 및 빨래 공간과 햇빛에 빨래를 널 수 있도록 밖으로 통로가 이어져 있다. 그곳에서 이미 짐을 풀어놓은 아는 얼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걷고 있던 마첵트는 빨래를 하고 있었고, 일본인 조와 두 아들은 일본식 카레를 만든다고 들떠 있었다. 라이치는 아빠가 만드는 일본식 카레는 정말 맛있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보인다.
난 지하로 내려가 세탁기를 포기 하고 손으로 빨래를 해서 밖으로 들고 나갔다. 쨍쨍한 햇빛에 잠시 앉아 쉬다 보니 짧게 수염을 기른 한국인 아저씨가 계단에 앉아 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날카로운 눈빛과 목소리까지, 키는 작지만 단단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의 간단한 질문에 잠시 말을 섞었다. 이전이라면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도 역시 산티아고까지 간다고 했고 왠지 앞으로도 계속 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난 최소한으로 짧게 말을 자르고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갔다. 이 도시에 또다른 가우디의 건물이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본다는 설레임에 마음이 급했다.
밖으로 나갔다. 생각보다 많이 늦어져 부지런히 시내를 둘러봐야 했다. 세탁기를 사용했더라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하고 후회하고, 항상 똑같지만 모든 것이 하찮더라도 내 결정이었고 조금씩 나를 바꾸는 과정이었다. 숙소 앞에 버티고 있는 산타마리아 대성당을 둘러보고 있을 때 팻 일행이 나서는 것이 보인다. 시원하게 맥주 한잔 하고 시간이 되면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5시가 넘어은 시간이라서 난 순례자메뉴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가우디의 건물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팻 일행과 함께 구시가지 한복판의 오래된 돌길을 걸었다. 양쪽으로 유난히 많은 초콜릿과 기념품 상점이 보인다. 이곳은 스페인의 초콜릿 중심지라고 불릴만큼 초콜릿이 꽤나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많은 상점들의 진열장엔 음식 재료로나 쓰일듯한 커다란 초콜릿 덩어리들이 있어서 잠시 무리에서 빠져나와 초콜릿 한 덩어리를 구입했다.
정각 6시가 되자 종업원이 다가와 순례자 메뉴를 먹기 위해서는 지하로 이동해야 한다고 하며 우리를 인솔해 내려간다. 창문이 나있지 않은 지하 토굴 같은 곳이었지만 꽤 넓고 아늑하다. 우리가 주문한 순례자 메뉴는 지금까지 먹었던 어떤곳의 순례자 메뉴보다도 훌륭했다. 난 식사 후 방금 구입한 초콜릿 덩어리를 후식으로 내놓았고, 생각보다 맛도 좋고 양도 많아서 일행들의 반응도 좋았다. 우리 같은 성인 네 명이 먹기에도 충분하고도 남을 양이었다. 오늘도 음식의 반을 내어 주던 팻일행과 식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9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난 그제서야 가우디의 건물이 떠올랐다.
난 일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우디의 건물을 찾아 길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건물은 가우디가 직접 설계하고 건축했던 주교궁(에파스코펠 성당, Palacio episcopal)이라고 한다. 언제 또 이런 건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기대에 차 뛰어가고 있었는데 안내판을 보기도 전에 가우디의 건물임을 바로 알 수 있는 건물이 나타났다.
독수리의 얼굴을 한 기사가 넓은 정원을 지키고 있고 그 주변에는 방금 손질한 듯한 잘 정돈된 각진 정원이 보인다. 시간이 너무 늦어 안으로 들어 갈 수는 없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이 곳을 카메라의 줌렌즈를 통해서야 겨우 가까이 볼 수 있었다.
건물은 초현실적인 느낌과 함께 살짝 푸른 빛이 돌고 있다.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완벽한 느낌의 주교궁은 바늘이 들어갈 빈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커다란 틀을 만들고 녹인 플라스틱을 흘려 넣어 제작한 것 같은 완벽함이 있었으며, 자세히 뜯어봐도 어디 하나 다른 건물들과 같은 부분을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이곳에 철십자가의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건물 울타리를 따라 둘러 보는데 마당에 세워져 있는 독수리 기사의 눈이 낯선 이방인을 계속 응시하며 지키고 있다. 건물 주변의 많은 기념품 가게에서 진열장 안으로 이 건물의 미니어쳐들을 볼 수 있었지만 모두 문을 닫아버려 구입할 수는 없었다. 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몇 번씩 뒤를 돌아보며 숙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팻 일행에게 가우디의 건물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런 건축물을 접할 기회가 많아서 그런지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 혼자만 들떠서 입에 게거품을 물고 떠들어대고 있는 모습이었다. 결국 아무도 관심 없는 듯한 분위기에 슬쩍 이야기를 접어버렸다.
자리에 누워 오늘 하루를 생각했다. 기부금 카페와 가우디, 이 길에서 만난 삶들이 크건 작건 내게 속삭이는 것은 ‘자유’였다.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복잡해서, 혹은 간단하지만 정의되지 않는 무엇이 있었다. 단지 한가지, 마음 한쪽 구석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잔상이 철십자가와 교차되고 있고 그 부분에 생각이 닿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곳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야가 어두워지며 답답한 채로 또다시 오늘이 접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