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ANAL ~ MOLINASECA, 26th Day
새벽5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모두 이미 준비를 마쳤다. 철십자가(La Cruz de Ferro)가 있는 1,500미터의 산길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모두가 다른날보다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각자 손전등을 하나씩 빼 들고 새벽 길을 나선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하고 가파른 산길이 이어진다. 출발하면서 겹겹이 옷을 껴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움직일 때마다 한기와 축축한 습기가 스몄다. 걷고 있는데도 몸은 점점 차가워 졌다. 배낭에 어느새 작은 물방울들이 맺히기 시작하고, 수묵화 같은 검은 산의 실루엣아래로 손전등 불빛이 휘휘 젓고 있다. 어둠으로 산과 나무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단색의 묵으로 그려진 까만 하늘을 걸어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출발 할 때부터 다른 날처럼 농담도 섞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만 올라간다. 이 조용한 시간에 각자 바라던 소망을 곱씹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 때문에 그 분위기가 무거워 지는 것 같아 일행들에게 미안하다. 다른 날처럼 즐겁게 웃으며,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안고 이곳을 지날 수도 있었을 텐데 보통의 날과 다른 고요함이 부담스럽다.
발자국 소리만 들리던 길에서 미안한 마음에 팻에게 말을 붙여보려는 순간, 지평선 가까운 하늘에서 길게 반짝 하고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빛이 보인다. 별똥별 이었다. 태어나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 별똥별. 그 별똥별을 혼자만 본 것이 아닌가 싶던 차에 별안간 팻이 휙 뒤를 돌아보며 묻는다. 방금 하늘 봤냐고. 항상 그렇듯이 그의 얼굴에는 인자하고 장난끼 많아 보이는 미소가 남아 있었다. 별똥별을 이야기거리 삼아 떠들며 혹시 모를 다른 별똥별을 위해 소원을 준비 하려는 순간 다시 하나가 반짝거린다. 너무 빨랐다. 다음 것도, 그 다음 것도 역시 빠르게 지나간다. 총 네 개의 별똥별이 지나는 동안 미쳐 하나의 소원도 빌어보지 못했다. 그 짧은 시간에 소원을 빌려면 평소 깊이 소망하는 무엇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나 보다. 그래야만 그 소망이 희망이 되고, 현실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 같으면 각자 자기 페이스로 걷느라 서로 거리를 많이 두고 걸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항상 제일 선두에서 무리를 이끌던 팻이 나보다 겨우 두어 발자국 앞서 걸었다. 그의 뒤에 내가 있었고 새라와 클레어는 조금 떨어진 뒤쪽에서 따라왔다. 나를 가운데 두고 앞뒤로 감싼 모습이다. 이미 저 앞으로 사라져 버렸어야 할 팻은 종종 뒤를 돌아보며 거리를 의식적으로 맞춘다. 점점 거세 지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움츠려들 즈음 작은 마을이 하나 나타났다. 우리는 그 곳에서 바를 찾아 잠시 새벽 추위를 버티고 있는 몸을 추스르기로 했다.
핫초콜을 주문하며 차가운 겉옷을 벗었다. 바의 따뜻한 온기가 차가운 몸을 녹이며 온몸으로 퍼진다. 가방에 고인 습기를 털어내며 습관처럼 자리에 앉았다. 엉덩이가 의자에 닿기가 무섭게 나온 핫초콜릿을 두 손으로 받아 들며 뜨끈한 컵주위를 손으로 감쌌다. 따뜻함이 전해졌다. 난 기분좋은, 한없이 부드러운 달콤함을 상상하며 한 모금 들이켰다. 유럽 출장시 어느 바에서 맛봤던 그 진한 초코의 향과 맛을 기대했던 난 완벽한 인스턴트의 맛에 살짝 놀라 실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인스턴트 코코아의 열기가 얼어버린 몸을 타고 내려가며 내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있었다. 사실 뭐 지금은 그것이면 충분했다. 8월 중순, 한여름이지만 이곳은 가지고 있는 모든 옷을 껴 입고도 이가 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손과 발이 이미 얼어버린 상태였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따뜻한 음료수에 손을 녹이며 간단한 빵을 먹고 나니 긴장이 풀리며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우린 더 몸이 쳐지기 전에 복장을 다시 갖추고 출발했다. 언덕을 몇 개 더 넘으니 멀리 길다랗게 높은 나무처럼 뻗어 있는 것이 산등성이 너머로 보였다. 철십자가다.
벌써 이곳에는 스무 명 가량이 몰려 있었다. 삐죽이 올라간 철십자가는 전봇대 위 높이 솟은 푯대 같은 모습이었다. 넓은 운동장 같은 공간 한 가운데에 수많은 돌멩이들이 사람 키를 넘기도록 높게 쌓여있고 그 한가운데로부터 그다지 굵지 않은 나무기둥이 전봇대처럼 높게 솟아 있다. 세월이 느껴지듯 군데군데 갈라진 나무 기둥이었다.
위쪽으로 따라 올라가다보면 그 꼭대기에 철로 만든 십자가가 붙어 있었다. 화려하거나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골의 낡은 나무 전봇대처럼 여기저기 패여 있는 나무기둥은 허름해 보이기 짝이없다. 그 기둥으로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음의 짐을 내려 놓는다는 의미로 돌을 꺼내며 왁자지껄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난 키보다 높은 돌무더기를 한걸음씩 걸어 올라갔다. 지나치는 한명 한명의 표정이 그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었다. 십자가가 솟아 올라오는 중앙 지점에 다다르자 십자가 주변으로 여러 물건들이 보인다. 고인을 기리는 사진, 꽃과 함께 손으로 적어놓은 메시지같은 것들이 그곳에 있었다. 천천히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바퀴를 돌자 뭔가 울컥하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그 뒤를 따라 솟구쳐 올라왔다. 난 그 자리에 바로 무너지듯 엎어져 버렸다. 감기 걸린 아이처럼 훌쩍이다가 얼굴이 땅에 닿자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처음에도 그렇게 울어본 적은 없었다. 눈물이 계속 흐르고 멈출수 없는 통곡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머리 속에서는 지난 삶이 기록된 필름을 되감고 있다. 그 중 한 장면에서 잠시 필름이 느려졌다. 아버지가 죽기 전 당신의 인생이 억울하다며, 어딘가 가서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싶다고 하시던 모습에서 필름이 잠시 멈추는 듯 하더니 다시 빠르게 지나간다. 그 옆으로 다른 여러 장면들도 함께 돌아간다.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비행기로 12시간 떨어진 이곳에 800 킬로미터를 넘게 걸으면서까지 오려고 했던 여행의 목적이 마치 이곳이었던 것처럼,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 마치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영화들을 360도 화면에 수도 없이 한꺼번에 틀어놓은 것처럼 머릿속에서 한꺼번에 모든 기억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어릴적 놀이터에서 놀던 기억도, 사회인이 돼 버린 후 사무실에서의 힘들었던 일들도 한꺼번에 모든 것이 보였다. 동시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교차했다. 내 몸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온통 까맣고 넓은 공간에 엎드린 내 위로 수많은 화면들이 돌아가며 내 길지않은 삶을 곱씹어 내고 있었다.
폭발하듯 삶이 한꺼번에 머릿속에서 보이니 그 짧은 시간 동안 영원 같은 기억에 갇혀버린 듯 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동시 상영되던 기억들이 하나 하나 머리속에서 사라져 갔다. 화면으로 꽉 차있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운동장에서 하나 하나 화면이 꺼져갔고, 그제서야 비로소 코에 닿아있는 돌맹이와 흙의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필름이 돌아가는 동안 주변 순례자 들이 하나하나 어깨를 토닥이며 지나갔지만 아무도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몇 번이나 울음을 참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내 의지와는 무관했으며 내 안의 어떤 감정의 흐름도 멈출 수 없었다.
한기가 온몸을 타고 올라올 무렵 천천히 허리를 들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정신이 멍하고 둔탁한 소리만이 간간이 들리기 시작했지만 추스리지 않고 그대로 정신을 놓아두었다. 눈을 감든 뜨고있든 흐릿한 세상이 보인다.
내가 울음 소리를 조절할 수 있을 때쯤,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었다. 생장에서 처음 출발 할 때부터 끼고 있던 아버지의 장갑이다. 아직도 잘 맞았고, 뚫어진 곳도 없었다. 그 장갑을 잘 포개어 무릎 앞 십자가에 내리고 심한 바람에 날아가지 못하도록 커다란 돌맹이를 주워 그 위에 올렸다.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자꾸 눈물이 나서 일어날 수가 없다. 허벅지 밑으로는 이미 아무 감각이 없었다. 다시 한참을 훌쩍이다가 아직 20킬로그램짜리 가방을 메고 있다는 것과 아래서 기다리고 있을 일행들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몸을 일으켜 돌무더기 아래로 절뚝절뚝 내려왔다. 나를 기다리느라 모여있던 일행들 옆에 가방을 내리고 집에서 준비해 온 작업용 목장갑을 꺼냈다. 등산용 장갑이 아니다 보니 예전처럼 편안하고 깔끔한 느낌은 없었다. 투박하고 잘 맞지 않는 것이 마치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것 같다. 아버지의 보호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내 힘만으로 불편하고 미끄러지더라도 개척해가야 한다는, 이런 것이 삶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그 동안 스쳐가던 순례자 들이 날씨도 더운데 뭐 하러 장갑을 끼고 다니냐고 핀잔을 줄때마다 그냥 웃고 넘어갔던 일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빼고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